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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May 29. 2023

악몽-Ⅱ

[그림대화] 60

     ‘흐르는’ 그림이다. 뚜렷하지 않은 많은 선들이 아래로 흐르고, 좌우로 흐른다. 어떤 대상을 그렸는지 짐작이 어려울 정도로, 딱히 눈에 잡히는 윤곽도 안 보인다. 색채도 단조롭다. 갈색 바탕에 흰색과 초록색이 아주 엷은 농도로 칠해져있다. 특정 대상의 색을 표현하겠다는 의도 자체가 없어 보인다.

     그럼, 그냥 추상적 이미지인가? 그런데 상단에 사람 얼굴로 여겨지는 모습이 있다. 검정 펜으로 그려진, 45도 각도로 치올려다 보는 두상의 이미지다. ‘얼굴’을 단서 삼아 화면을 이해해보려는 마음으로 다시 살핀다. 그 얼굴의 팔, 몸체, 다리일 것 같은 선들이 어렴풋이 보이긴 한다. 하지만 명확하진 않아, 아니라고 해도 그만이다.      


     인체와 관련한 것이긴 한 거 같은데, 인체라고 하기엔 너무 불충분한 이미지다. 이쯤에서 생각한다. 여느 때처럼 그림을 보고 이해하면 안되겠구나,싶다. 작가에게 물어보았다.

- 40분 동안 무용수(퍼포머)가 움직임을 하고, 작가는 그걸 보면서 그림을 그렸단다. 서로 개입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3세트를 반복했다. 작가는 후반작업을 통해 색채라든가 일부 강조 등의 부분적인 보완을 해서 완성했다고 한다.      


     의문이 생겼다. 계속 움직이는 인체(대상)를 어떻게 그릴까? 통상, 대상에 대한 이미지가 망막에 계속 머물고 있거나, 아니면 망막에서 사라진 이미지라도 기억창고에 저장되어 있다가 기억을 통해 끄집어내어지거나, 이 둘 중 하나인 경우에 작가를 대상을 화면에 재현할 수 있다.

     전자는 정물을 그리거나 사생을 할 경우에 해당하고, 후자는 과거의 기억을 되새겨 올라오는 이미지를 화면에 그려내는 경우에 해당할 것이다. 보통은 두 가지(지각과 기억)가 함께 작용을 해서 그림을 그려낼 거다.      

     물론 이 작업의 경우에도 이 두 가지(지각작용과 기억작용)가 함께 작동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시간이 너무 짧다는 점이다. 대상이 계속 움직이므로 망막에 이미지가 남아있을 겨를이 없다. 더욱이 계속 새로운 시각정보가 밀고 들어오기 때문에, 화면에 옮길 수 있을 정도로 ‘머물지’ 않는다.

     따라서 지각된 시각 정보라 해도 안정적으로 온전히 저장되기 어렵고, 저장되고 끄집어낸다 하더라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새로운 시각정보와 충돌하게 된다. 한마디로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인데, 어떻게 그릴까?      


     인상파는 대상이 항상 똑같지 않고 빛의 작용에 따라 시시각각 다르게 보이고,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보이는 대로(주관적) 그려내려고 한다. 그래서 빛이 일으키는 변화를 관찰하되 화면에 옮길 수 있을 만큼의 최소한의 시간을 확보한다.

     즉, 흔들리는 나뭇잎과 빛의 교섭(충돌)이 일으키는 반짝임을 보고, 빛의 작용이 일으키는 패턴적 인상(이미지)를 포착할 수 있을 만큼의  응시(관찰)할 시간을 확보한다.(모네는 대성당이 잘 보이는 건물에 몇 개월 동안 여러 개의 이젤에 캔바스를 올려놓고 지속적으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 경우는 그 응시/관찰의 절대 ‘시간’이 허용되지 않는다. 결국을 대상을 대상화하고 그로부터 지각(기억)되는 시각정보를 조직하여 표현하는 방법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작가는 도대체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 것일까?


     가설이지만, 대상(인물)의 움직임에 ‘심리적, 시각적’으로 동승해서 함께(따라) 움직이면서 그 궤적의 흐름을 ‘단속적’으로 기록하는 것 아닐까? 이는 작가가 대상(인물)의 장(場)에 들어서서 대상이 움직이는 궤도에 올라타야 한다. 일종의 ‘내재화’랄까.. 세계(대상)을 지각하고 인식하는 또 다른 방식이고 태도다.  


#화가 #형 #류장복 #그림대화

악몽-Ⅱ_acrylic and oil pastel on linen_116.8x53cm_2023/ Jangbok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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