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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May 30. 2023

춤 '원형하는 몸' 중에서

[그림대화] 61

     문양인가? 얼핏 보면 규칙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360도 전 방위로 발산하는 선들에서 동일하고 반복적인 패턴은 전혀 없다.

     작가는 독립적으로 춤을 추는 무용수를 보면서 그렸다. 사방으로 허공을 지르듯이 비죽비죽 삐져나온 것 같은 손과 발 모양이 보인다. 여러 명의 무용수가 일렬로 서서 마치 한 사람처럼 일사불란하게 손과 팔을 움직이는 인도 군무 같기도 하다.      


     영상의 지각(촬영)-재현(상영) 원리는, 움직이는 피사체를 프레임으로 잘게 쪼개어 기록(촬영)하고, 쪼개진 장면(프레임)들은 직전 프레임의 잔상(殘像)효과에 힘입어 단절을 극복하고 이어짐으로써, 자연스런 동작의 움직임으로 재현(상영)된다.

     여기서는 ‘흐르는’ 시간을 매순간 붓질로 붙잡아 평면에 쌓듯이 모아둔다. 춤추는 무용수가 존재한 40분 동안의 ‘시간과 공간’, 즉 ‘존재의 역사’를 평면에 기록하고 재현한 것이다.

     ‘잔상’ 효과는 이제 감상자의 몫이 된다. 대상이 움직인 궤적의 흔적을 되살리고(regenerate) 연결하면서, 대상의 움직임을 재구성하여 재현해본다.(represent) 대상의 움직임에 동승하며 느꼈을, 작가의 몸-마음의 각성된 진동을 어렴풋이 느껴본다.


     자유분방한 궤적 같지만, 화면 속에서 다빈치의 <비트루비우스적 인간> (Vitruvian Man)의 모습이 언뜻 보이는 것도 같다. 수많은 인체를 중첩시켜, 인체의 비례(canon)를 통계적으로 구현했을 르네상스 화가들이 오버랩 된다.

     검은 바탕 위에 하얀 선으로 그어진 존재의 궤적들 ……, 태초의 어둠 속에서 고귀한 생명이 출현한 듯, 숭고한 장면에 걸 맞는 강렬함이다. 뿜어나오는 빛이 신비롭고 화려하다.       


#화가 #형 #류장복 #그림대화

춤 '원형하는 몸' 중에서_oil and oil pastel on linen_180x145cm_2022-23/ Jangbok R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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