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은 층고에 매우 큰 규모의 서고, 빈틈없이 꽂힌 수많은 책들, 탁자 위에 놓인 동양적인 자태의 화병, 그 화병에 꽂힌 장미꽃.
많지 않은 일곱 송이의 장미꽃이 황금색이다. 튄다. 뒷배경 장서들에서 모래처럼 반짝이는 황금색과 마룻바닥의 노란 색이 받쳐주어 그나마 누그러들었을 텐데도, 황금색이 여전히 ‘튄다’.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그림을 본다. 왠지 ‘비현실적’인 느낌이 훅, 몰려온다. 화병과 배경 사이의 원근감도 현실적이지 않지만, 무엇보다 황금색의 장미꽃이 화면의 비현실적인 느낌을 주도한다. 마치 중세의 미술작품을 보고 있는 듯하다고나 할까.
여인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토르소 사내의 모습도 심상치 않은데, 꼬리와 등을 곧추 세운 채 아래로 뛰어내리는 찰나에 굳어버린 고양이도 예사롭지 않다.
심해(深海)를 연상케 하는 화병에 古생명체가 느리게 유영한다. 서고의 흑벽에 걸린 시계는 지금 오후 2시를 가리킨다.
아래를 향해 미끄러지는, 날카롭게 접힌 종이비행기만이 뭔가 ‘우주적’ 시간이 엉켜있는 시공(時空)을 유일하게 꿰뚫으며 관통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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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오후 2시_oil on linen_53x45.5cm_2014-17-20/ Jangbok R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