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대화] 98
아이들만 보인다. 하늘도 땅도, 그 사이에 있어야 할 모든 것들이 사라졌다. 3월 하순의 짱짱한 봄볕이 그림자조차 증발시켜 버렸나보다.
그네에 앉아 타는 애, 감질 나는지 발판을 밟고 일어서 발로 지치는 애, 그 옆에서 차례를 기다리는지 키 작은 철봉에 기대선 채 바라보는 애.
균질하게 비어있는 대기(大氣)도 진공인 듯, 아이들의 움직임조차 평면의 흔적으로 수축시킨다.
비스듬한 구도인데다 뜬금없이 중간쯤 과하게 넓은 허공에 떠있는 아이들, 어딘가 어색하고 안정감이 없다. 그 순간 마음의 시선이 아이들에서 허공으로 미끄러진다. 하늘에서 내린 줄에 매달린 아이들이 텅 빈 허공을 평온하게 유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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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 14:59_acrylic on linen_116.8x91cm_2022/ Jangbok Ry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