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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Jan 26. 2022

말타기

   골목에서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가면서, 아이들의 놀이 연차도 착착 쌓여간다. 몸도 커지고 마음도 대범해지면서 사내아이들은 점차 격렬한 놀이를 찾아 몰입하게 된다. 날이 많이 추워지기라도 하면, 손이 곱아 딱지든 구슬이든 손에 쥐고서 정밀하게 다루는 게 불편해지고, 골목들이 콘크리트나 아스팔트로 포장되면서 흙바닥이 급격히 사라져갔다. 삼각형이며 팽이며, 흙 위에서 하는 놀이들은 설자리가 좁아졌다.      

   세탁소 앞 미장원 골목에서 댓 명의 사내놈들이 담벼락을 향해 앞사람 꽁무니에 줄줄이 대가리를 처박고 있다. 그 뒤에는 역시 동수의 머스매들이 시끌벅적 떠들어 대며 담벼락을 향해 달려갈 자세를 취한다. 

   “야, 뭐해 얼른 박어.”

   “아씨, 알았어. 지금 박고 있잖아.”

   ‘말타기’를 하는 거다. 규칙은 단순하다. 모인 애들을 일단 두 편으로 나누고 가위바위보로 선공을 정한 뒤, 진 팀이 먼저 담벼락에 붙어서 말을 만들어 대기한다. 이긴 팀은 차례로 말에 올라탄다. 전원이 다 올라타야 하니 앞에서부터 차곡차곡 탄다. 다 타면, 역시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가리고 진 팀이 말을 만들고 이긴 팀이 올라타게 된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는 거다.

   그러니 팀의 명운을 결정하는 가위바위보 대결에 나서는 양 팀 주장 격의 주자가 중요하다. 공격 때는 제일 먼저 올라타는 아이가 주장 역할을 맡는다. 수비할 때는 팀원 중 한 명을 따로 빼내서, 담벼락에 등 대고 서서 첫째 말이 머리를 처박을 사타구니를 제공하도록 한다. 멀리서 보면 길쭉한 말대가리에 해당하는 역할인데, 이 아이가 주장 역할을 맡아 제일 먼저 올라타는 상태 팀 주장과 가위바위보 대결로 승부를 본다.

   주장은 가위바위보를 잘하는 애가 되는 것이 마땅하겠지만, 그렇다고 따로 잘하는 애가 특별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라서 연패하지 않는 한 공수 전력을 고려해 배치를 한다. 즉 공격의 경우는 주장이 제일 먼저 올라타서 제일 오래 동안 말 등에 머무는 선공자이므로 체중이 좀 나가거나 점프력이 좋아서 파괴력이 큰 아이가 맡는다. 수비의 경우는 공격 때와는 반대로 체격과 체력이 좋은 애들이 엎드려 말 등을 만들도록 하고, 상대적으로 약해서 힘에 부치거나 조금이라도 어린 애에게 맡기곤 했다.

   승부가 이어지면서 몇 차례 연패를 당하다 보면, 힘도 빠지고 약도 바짝 오른다. 그래서 가위바위보 승부에 온갖 공을 다 들인다. 대표적인 것이 점괘를 보는 것인데, 가위바위보 셋 중에 무엇을 내면 좋을 지를 사전에 점괘로 타진해보는 거다. 가장 자주 사용하는 방법이 손등의 피부를 밀어 올려 주름을 잡은 다음, 그 주름의 수를 세어 점괘를 얻는 거다. 

   “야 뭐해~ 다 올라탔는데 빨리 안 하고 뭐 해. 힘들어 죽겠어.”

   “아이~ 조금만 있어봐, 지금 …….”

   그런데 손등에 잡히는 주름이 굵기도 들쭉날쭉한 데다가 가로로 길게 선명하게 딱 잡히는 것도 아니라서, 매번 주름 수를 판명하기가 간단치 않다. 한 번의 가위바위보로 공수가 결판나고 말기 때문에, 시간을 좀 끌어 말들이 힘들어하더라도 어떻게든 이겨야 했다. 손등 주름 점괘가 시원찮으면 양손을 꽈배기처럼 X자로 교차시켜 깍지를 낀 다음, 깍지를 낀 채로 아래로 돌려 안쪽으로 감아서, 소라의 형상으로 겹친 손바닥 사이를 한쪽 눈을 감고 들여다본다. 그 안에서 간신히 새어 나오는 빛줄기 구멍의 수를 세서 점괘를 얻는다. 이 역시 빛이 나오는 구멍이 안 보일 때도 있고, 구멍의 형상이나 크기가 명쾌하지 않아 두 번 세 번 반복하기는 손등 주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일단 본격적인 말타기에 돌입하면, 다양한 변수가 개입하고 복잡다단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 복잡한 상황은 대부분은 공격수들이 올라타는 과정에서 구사하는 다양한 작전행태에서 비롯된다. 첫째는 시간 끌기다. 공격수들이 차례로 올라타는데 다 올라타고 나서야 승부를 결정하므로, 공격팀은 시간을 길게 끌어 말들이 힘에 부쳐 제풀에 무너지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럼 가위바위보 할 것도 없이 다시 시작이다. 그러니 수비팀은 빨리빨리 타라고 성화고, 공격팀은 무슨 이유를 대든 꼬투리를 잡아서 시간을 끈다. 그러다 보니 첫 번째 말이 제일 오랫동안 무게를 견디고 있어야 하므로, 앞자리 말일수록 튼튼한 애로 배치하는 것이 기본이다.

   일단 이렇게 올라타고 나면 가위바위보로 승부가 나기 전까지는 공격수들은 계속 흔들어댄다. 자세를 바로잡는다는 이유로 말 등 위에서 부산하게 움직여대면, 밑에 깔린 말들은 힘이 배로 더 들고 그러다 주저앉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반대로 수비들도 아래에서 흔든다. 그러면 위에서 중심을 잃고 말에서 떨어지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럼 즉시 공수가 전환된다. 아래는 아래대로 위는 위대로 상대의 중심을 무너뜨리려고 크고 작은 요동을 치는 과정에서 민망한 사고가 나기도 한다.

   1번 말은 담벼락을 등지고 서 있는 주장의 사타구니에 머리를 박고 있는데, 사타구니 언저리에는 작은 충격에도 통증을 느끼는 소중한 물건이 들어있어서 여간 조심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래서 무조건 머리를 처박지 않고, 서 있는 아이의 엉덩이 양쪽 바지춤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적당한 밀착 압력과 밀착 거리를 유지하며 버틴다. 그런데 위에서 흔들어대고 무너지지 않으려고 이리저리 버티다 보면, 서 있는 아이의 바지를 잡은 채 자세가 내려앉으면서 바지를 아래로 잡아, 확 벗겨버리는 형국이 된다. 

   어떻게든 연패에서 벗어나겠다고 온갖 심혈을 기울이며 점괘를 쪼고 있다가, 별안간 바지가 벗겨지는 황당한 상황을 맞이한 주장은 점괘고 승부고 뭐고 혼비백산해서 박차고 나온다. 엎드린 말들은 앞에서부터 도미노처럼 우르르 무너지고 쓰러져버린다. 그럼 게임은 끝, 다시 시작이다. 어떻게든 버티면 위에서 이겨주겠지 하는 절박한 희망 하나로 안간힘을 쓰느라 낑낑대던 애들은 기가 막혀 하면서 남아있던 전의마저 내려놓는다.     

   놀이가 중반에 접어들면, 애들은 다들 힘은 빠지지만, 독이 슬슬 오른다. 승부 근성이 발동하며 좀 더 파괴력이 큰 작전이 들어간다. 시간 끌기와 흔들기가 초보 단계의 작전이라면, 약한 고리 집중 공략은 중급단계의 공격법이다. 약한 고리란 하체가 약하거나 게임을 진행하면서 유독 부실해진 말을 말하는데, 여기를 표적으로 집중해서 올라타는 것이다. 그 말이 중간이 있더라도 일부러 그 말의 위치에 떨어져서 부담을 주고, 다음 사람도 역시 그 말에 연속으로 떨어지는 공격이다. 서너 명이 연속해서 계속 떨어지다 보면 힘이 좋은 애도 주저앉고 만다.

   이때 공격 부위는 정공법으로 등을 겨냥할 수도 있고, 앞놈 말의 꽁무니와 뒷놈 말의 목덜미가 맞닿는 바로 그 연결부위를 정확히 겨냥하여 공격하기도 한다. 연결부위가 떨어져도 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비 할 때 이 연결부위가 틈이 생기지 않도록 처박은 머리를 꽁무니 쪽으로 밀면서 잘 밀착되도록 신경을 쓴다. 그런데 이 연결부위를 정확하게 공격하면, 연결부위가 살짝 어긋나기만 해도 뒤에서 미는 힘이 오히려 옆으로 삐끗 새면서 대번에 뒷놈 말이 고꾸라지기 일쑤다.

   막판으로 가면 독이 오르다 못해, 악이 바치기 시작한다. 이른바 복수(復讎)를 위한 기술이 동원되는데, 고급기술이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고, ‘살수(殺手)’로 분류되는 치명적인 기술이 튀어나온다. 이른바 찍기다. 보통의 경우에도 말들에게 중력의 부담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대한 높이 솟아올라 떨어지는 점프가 필수적인 기술이지만, 여기 찍기에서는 말 등에 떨어질 때 엉덩이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무릎으로 떨어지는 기술이다. 최대한 높이 점프한 다음, 내려올 때 무릎을 꿇는 자세로 다리를 접어서 떨어진다. 공격수의 엉덩이에 살이 없어 엉치뼈를 그대로 등으로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난감하지만, 무릎과 정강이뼈가 등짝을 찍으면 찍히는 말은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더욱이 재수 없이 옆구리 쪽을 잘못 찍히기라도 하면, 순간 숨이 멎고 바로 주저앉아버린다. 권투경기를 하다가 옆구리 맞고 윽, 하면서 쓰러지는 바로 그 상황이 그대로 나온다. 이쯤 되면, 말타기는 그야말로 살벌해진다. 애들의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표정도 비장해진다. 타격에 집중하여 공격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만을 찾아내려 골몰하느라 그렇다.     


   말타기는 종국에는 이렇게 살벌한 상황으로 치닫기 마련이지만, 흐뭇한 대목도 있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깍두기가 있다. 상대적으로 어린애들이거나 몸집이 작고 약한 애들은 깍두기로 끼워준다. 말타기처럼 공수가 교대하는 방식으로 편싸움을 할 때면 ‘뒤짚어라 엎어라’ 같은 방식을 써서 공평하게 편을 나누는데, 모인 애들이 홀수라서 짝이 맞지 않고 남을 때 깍두기를 지명해서 해결했다. 물론 짝이 맞아떨어지더라도 챙겨야하는 애들이 있으면, 양 팀에 한둘씩 공평하게 섞이게 해 함께 놀게 했다. 또 이편이든 저편이든 깍두기가 원하는 편에 끼도록 배려를 해주었는데, 어느 편에 가든 전력상 큰 영향이 없어서 양팀 모두 불만이 없었다. 

   수비 할 때는 깍두기를 맨 끝단에 자리 잡게 하고, 공격수들 역시 그 깍두기 말을 건너뛰고 탔다. 공격 시에도 제대로 올라타지 못하거나 올라타다가 아래로 떨어져도 그냥 진행하는 식으로 깍두기를 배려했다. 살벌한 와중에서도 어린애들이 형들의 놀이를 안전하게 실전으로 경험하고 훈련하는 절호의 기회를 얻는 셈이다. 애들 노는데 웬 깍두기일까? 김치깍두기도, 조폭 양아치 행동대원의 머리 모양도 아니고 그 이름이 좀 뜬금없기는 했지만, 이렇게 골목에서는 하는 놀이마다 어린 후배들을 훈련하고 양성하는 ‘재생산’의 메커니즘이 확고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미아리의추억 #팽이 #찍기 #박치기 

류해윤_백두산 대호와 백호_종이에 아크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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