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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Jan 30. 2022

홀짝과 쌈치기

   딱지와 쌍벽을 이루는 구슬 놀이에서 기본 종목은 ‘홀짝’이다. 어린애들도 쉽게 따라 하는 그야말로 기초에 해당한다. 홀짝은 상대 손에 쥔 구슬 개수가 홀수인지 짝수인지 맞히면 따는 아주 간명하고 명쾌한 게임이다. 마치 칵테일 빠텐더가 그러듯이, 두 손을 맞대어 볼록하게 부풀려 그 안에 들어있는 구슬들을 허공에 대고 위아래로 마구 흔들다가, 한 손으로 채듯 구슬 일부를 잡아 쥔다. 그리고 곧바로 쥔 손을 앞으로 쑥 내민다. “가~!” 접었으니 맞추라는 신호다. 그럼, 애들은 각자 게임에 거는 구슬들을 손에 쥐고 쑥 내밀면서 외친다. “나는 홀~!”, “난 짝~!” 상대가 맞추면 접은 사람은 그 숫자만큼 내주고, 못 맞추면 건 구슬을 거둬들인다. 게임의 회전도 빠르고 매회 잃고 따는 수지(收支)가 생겨서 게임이 재밌었다. 보통은 서너 명이 하지만 진검승부를 볼 때는 단둘이 하는 홀짝이 제격이다. 게임 속도도 빠르고 룰이 간명하므로 매 순간 긴박하고 박진감 넘친다.

   딱지는 물론이고 구슬도 재벌급인 나는 밀가루가 담겨있던 조그만 광목 자루에 구슬을 잔뜩 담아서 잘그락 소리를 내며 골목에 나타난다. 애들은 일단 그 양에  기가 죽지만, 따 먹어보겠다는 욕심에 내 주변으로 몰린다. 홀짝은 싱거워서 바로 쌈치기로 들어간다.

   원리는 홀짝과 같은데 게임 규칙만 조금 복잡하다. 즉, 2진법에서 3진법으로 진화한다. 규칙이 ‘홀, 짝’ 대신 ‘으찌, 니, 쌈’으로 바뀐다. 일본어 숫자 1, 2, 3을 뜻하는 이치(いち), 니(に), 싼(さん)에서 온 말이다. 니는 일본 발음 니(に) 그대로고, 쌈은 싼(さん)을 세게 발음하다 보니 변형되었을 거다. 근데 ‘1’을 뜻하는 ‘이치(いち)’를 ‘으찌’로 발음하는 것이 재밌다. “으찌” 할 땐 배에 힘이 들어간다. 손을 쑥 내밀며 “으찌” 하면, 나름 기합 소리 같기도 하고 게임의 의지와 패기가 느껴진다.

   판돈을 걸 때는 홀이나 짝을 외치는 대신 ‘으찌-쌈’ ‘쌈-니’ .. 이렇게 숫자 두 개를 나란히 외친다. ‘으찌-쌈’이란 호스트가 접은 구슬이 으찌 즉 [3배수+1]가 나오면 건 사람이 이기는 거고, 쌈 즉 3의 배수로 떨어지면 접은 사람이 이긴다는 뜻이다. 중학교 수학에 나오나? ‘잉여류’ 개념이다. 그러나 실전에서는 이렇게 숫자만 외치지 않는다. 그럼 재미가 없지 않나. 보통은 “으찌 먹고, 쌈 떠” 이렇게 말한다. ‘으찌 나오면 내가 먹고, 쌈 나오면 네가 먹어라.’라는 주문(注文)이다.     

   엄지와 검지 손가락이 갈리는, 체했을 때 눌러주는 합곡(合谷) 혈 자리에 해당하는 골에 모양이 좀 특이한 ‘엄지’구슬을 끼고 구슬을 접는다. 엄지구슬은 구슬의 크기도 좀 크고, 그 안에는 날렵한 [~] 형상의 알록달록한 물결무늬가 여러 개 들어가 있어서 특별한데, 각자의 취향에 맞는 구슬을 정한다. 엄지구슬은 각자의 시그니처(signature)가 되는 셈이다. 또 애들마다 엄지구슬에 대한 주술이 있다. 입에 대고 입김을 불어준다든지 콧등에 대고 비빈다든지, 중요한 대결을 앞두거나 판세를 전환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순간에 각자의 방법으로 마법을 건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만, 그때 그 애들에게는 나름 신성한  의례였다.

   접은 손을 펴고 구슬의 숫자를 셀 때, 엄지구슬을 포함하고 따지는지 빼고 따지는지를 사전에 정하고 시작한다. 손을 펴면 엄지구슬은 여전히 엄지와 검지에 끼어있어, 손바닥 위는 아니면서 손바닥 위가 아니라 할 수도 없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이걸 분명히 해놓지 않아서 분쟁이 생기는 일도 많았다. 좀 어리거나 어리숙한 애들과 할 땐 엄지구슬을 슬쩍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흘려, 순간 손바닥의 구슬들과 섞이게 하여 승부를 속이는 형들도 가끔 있었다. 이른바 ‘밑장빼기’ 같은 기술을 쓰는 거였다. 그러나 눈썰미 있는 애한테 걸리면 ‘손모가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엄청난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건 애들에게 건 만큼 다 물어주는 처벌을 받기도 한다. 이른바 ‘몰수 패’를 당하는 거다. 지금 생각해봐도, 놀이 규칙이 참 찰지고 재밌었다. 정교하고 세련된 놀이다.   

  

   게임이 과열되다 보면 ‘다 거는’ 경우가 생긴다. 가지고 있는 구슬을 모조리 다 내놓고 거는 거다. 당시 전문용어로는 ‘아도 친다’고 했다. 승부수를 던지는 건데, 게임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왔다리 갔다리 할 때 빨리 승부를 보고 끝장낼 때 쓰는 방법이다. 또는 패색이 짙어 한방에 만회하고 싶을 때 남은 구슬을 다 거는 ‘all or nothing’ 작전이다. 가진 구슬이 동이 난 애들도 마지막 승부를 관전하려고 자리를 뜨지 않고 남아서 지켜본다. 다들 긴장하며 최후의 게임을 결정할 마지막 ‘접은 손’에 긴장한다. 접은 손의 모양과 크기에 대한 평소의 경험 데이터를 종합해서 나름 예측을 내 놓는다

   “쌈 잡은 것 같다” 

   “아니다, 이번엔 틀림없이 니다”

   당사자 보다 더 흥분들을 하면서, 그때마다 접은 애의 표정을 흘끔흘끔 살핀다. 접은 애 역시 지가 접어도 긴간민가 하긴 마찬가지라, 접은 손을 펼치기 전에 허공에 대고 잡은 손을 두어 번 느슨하게 열었다 잡았다 해본다. 그때 나는 ‘짤그락 짤그락’ 소리와 손바닥에 전해지는 볼륨감과 그립감을 종합하여 스스로 가늠을 해본다. 그리고 마침내 접은 손이 펼쳐지고 숫자가 판명이 나면 훈수꾼들은 “거 봐~” 하며 환호를 지르기도 하고, “아 ~~!!” 비명을 지르며 패배자보다 더 아쉬워한다.

   쌈치기란 구슬 놓고 구슬 따먹는 승부라서 치열하게 치달을 수밖에 없지만 훈훈한 상황도 있다. 이른바 ‘개평’이라는 것이 있다. 가진 구슬 다 잃고도 자리를 뜨지 못하고 남아 있는 애들은 게임의 최종 승부가 궁금하기도 하지만, 최후의 승자가 베푸는 개평의 은덕을 받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최종 승부가 나기 전인데도 중간에 개평을 집어주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그걸 또 밑천 삼아 끼워달라는 애들도 가끔 있는데, 애들 사이에서도 허접스러운 일이라 드문 일이다.

   다 잃고 빈털터리가 되었더라도 얼마간의 개평을 얻었으니 마음을 달랠 수 있었고, 최종 승자도 자신에게 쏠리는 부러움을 넘어서는 ‘원한’(?)의 씨앗도 미리 제거하는 효과가 있어서 좋았다. 개평을 줄 때 보면, 애들 성격이 고스란히 다 드러난다. 흔쾌히 푹 집어주는 애, 생색만 ‘드럽게’ 내고 찔끔 집어주는 애 ……, 여기도 엄연히 사회라서 별의별 애들이 다 있었던 거다. 나는 골목 계에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한참 전부터 일찌감치 작은형에게 보고 배운 바가 있어서 개평은 후하게 집어주었다.

   애들에게 골목은 세계였고 사회였다. 골목에서 다양한 애들이 섞여 무리를 짓고 겨루고 다투고 화해하며 함께 살아가는 방법과 태도를 배워갔다. 나도 이런 ‘애들 사회’에서 사회생활을 배웠다.


#미아리의추억 #홀짝 #쌈치기 #구슬 #엄지 #개평

류해윤_노루 쫏는 호라이_종이에 아크릴릭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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