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창복 Jan 30. 2022

삼각형과 깔빼기

   뭐니 뭐니 해도 구슬 놀이에서 백미는 ‘삼각형’이다. 구슬 놓고 구슬 따먹기는 매한가지이지만, 주로 운빨이나 승부사적 심리가 승부를 좌우하는 홀짝이나 쌈치기와는 다르다. 고도의 신체 기술에 바탕을 둔 경기력을 겨루어 보상을 챙기는 놀이다.

   일단 땅바닥에 삼각형을 그려놓고 삼각형 좌우 양측 약 3, 4m 지점에 사선(射線)을 긋는다. 그럼 게임 준비 완료다. 게임 시작 전에 몇 개로 시작할지를 합의하여 정하고, 그 개수만큼의 구슬을 각자 삼각형 안에 놓는다. 그래야 비로소 게임 참여의 자격이 생긴다. ‘섰다’ 식 전문용어로 하면 ‘학교 가는’ 거다. 그리고 나면 게임의 순번을 정해야 하는데, 삼각형에 발뒤꿈치를 바짝 대고 서서 사선에 구슬을 던진다. 각자 던진 구슬이 사선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순서대로 게임의 순번이 결정된다. 드디어 게임 시작이다.

   정해진 차례로 사선에 서서 삼각형을 향해 엄지 구슬을 던져서 삼각형 밖으로 구슬을 하나라도 밀어내면 밀어낸 구슬을 따는 것이다. 그러면 또 엄지 구슬이 놓인 그 자리에서 다시 게임을 계속한다. 만일 구슬을 한 개도 밀쳐내질 못하면, 엄지 구슬이 놓인 그 자리에서 다음 순번을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이때가 위험하다. 구슬도 밀쳐내지도 못하고 엄지 구슬이 사선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삼각형 주변에 머물게 되면, 적진에 침투했다가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병사 꼴이 되는 것이다. 다음 순서의 애가 나의 엄지 구슬을 맞춰버리면, 나는 그 자리에서 죽는 거다. 게다가 그 게임에서 딴 구슬을 맞춘 애에게 다 토해 바쳐야 한다. 그래서 구슬을 밀쳐내 따던지, 못 따더라도 엄지 구슬이 사선 밖 안전지대로 잘 빠져나오도록 던져야 한다.

   게임 초기에는 따먹을 구슬들이 잔뜩 쌓여있어서 대충만 맞아도 몇 알은 딴다. 하지만 야금야금 빠져나가고 삼각형 안에 남은 게 몇 알 안 되면 맞추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래서 이럴 때, 작전상 일부러 삼각형 주변에 바짝 붙이는 경우도 있다. 삼각형에 가까이 붙이면 다른 애들도 사선에서 던져 내 엄지 구슬을 딱 맞춰 잡기에는 제법 먼 거리라서, 다음 순번까지 살아남아서 삼각형 가까운 위치에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게임 초반에는 특히 조심할 일이 있다. 맞추기 쉽다고 대충 던지면, 삼각형 안에서 스크럼을 짜듯 뭉쳐있는 구슬들의 힘에 막혀 내 엄지 구슬이 삼각형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생긴다. 그럼 바로 죽는 거다. 이걸 ‘찍 쌌다’고 한다. 찍 싸면, 싸기 전 그 게임에서 따낸 구슬들을 모조리 삼각형 안에 토해내고 죽어야 한다. 도로 아미타불이다. 그래서 던질 때 제법 속도를 주어서 세게 던져야 한다. 그러나 속도를 주면 정확도가 떨어진다. 결국 조준과 힘 조절의 기술이 필요하다.      


   삼각형에는 ‘깔빼기’라는 기술이 있다. 보통은 무릎과 허리 사이쯤에서 엄지 구슬을 던진다. 백스윙을 한달까, 팔을 뒤로 약간 물렸다가 앞으로 나오는 탄력을 이용해 던진다. 근데 깔빼기는 엄지 구슬을 들어 한쪽 눈에 바짝 가져가 대고, 몸을 최대한 앞으로 기울여 삼각형 낙하지점을 조준한 다음에 거기서 바로 내려찍듯 던진다. 그래서 깔빼기 기술은 파괴력이 있다. 조준만 잘되면 뭉쳐있던 구슬들이 방사형으로 쫙 흩어지면서 대박이 난다.

   내 또래 충현이는 깔빼기 도사였다. 게임 초반에 삼각형 안에 구슬이 가득 들어 있어서 대박을 노려볼만한 데다가, 설령 찍 싸더라도 게임 초반이라 딴 게 없으니 구슬을 토해내야 하는 부담이 적었다. 요런 날씬한 계산을 가진 충현이는 게임 초반에는 예외 없이 항상 깔빼기 기술을 사용했다. 충현이의 깔빼기 성공률은 매우 높아서 다들 충현이를 경계했다. 그러나 초반일수록 삼각형 안에 구슬들이 많아서 던지 엄지구슬이 삼각형을 미처 빠져나오지 못해 ‘찍 싸고’ 전사할 가능성도 크다. 이른바 ‘고수익 고위험’ 기술이었다. 충현이가 깔빼기 자세를 취하면 애들도 긴장하며 숨죽여 기다리다가, 충현이 손에서 구슬이 벗어나자마자 다 같이 합창으로       “찌이~익”을 외쳤다.

   모든 기술에는 장단점이 있다. 매번 사선에 서서 삼각형을 노려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한다. 작전과 기술을 결정하고 온몸의 감각과 신경을 집중한다. 그리고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몸에 힘이 없으면 균형을 잡을 수 없다.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작전과 기술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조준할 때는 경건해 보이기도 한다. 바야흐로 정중동(靜中動)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이다. 


#미아리의추억 #구슬 #삼각형 #깔빼기  #엄지구슬

류해윤


작가의 이전글 홀짝과 쌈치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