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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Feb 02. 2022

뽑기와 달고나

 

   물자가 풍족하지 않고 여전히 ‘보릿고개’ 넘기는 일이 중대했던 시대였지만, 미아리 시절 난 끼니를 건너뛰거나 엄마가 끼니 이을 걱정을 하는 걸 본 적은 없었다. 그래도 밥 먹고 돌아서면 금방 또 출출했던, 한창 클 나이의 먹성은 삼시세 때 밥 먹는 것으로는 감당이 안 됐다. 또한 출출한 배를 채운들 ‘단 것’에 대한 허기는 여전했다. 끼니 사이의 허전함을 채워줄 주전부리가 항시 궁금했다.     

   뽑기 아저씨는 한겨울과 한여름을 빼고는 한두 달에 한 번꼴은 동네에 왔다. 한번 오면 하루 이틀 정도 있기도 하고 일주일 넘게 계속 있기도 했다. 아저씨는 우리 세탁소 건너편 성광교회 담벼락 앞에다 짐을 푼다. 담벼락에 기대듯 자리를 잡고는 사과 궤짝처럼 생긴 나무상자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국자와 설탕통, 달고나 통, 나무젓가락 통, 소다 종지, 한군데 담겨 있느라 엉킨 채 들려 나온 여러 가지 모양의  뽑기 틀들 ……. 그 나무상자는 마술 상자라도 되는지, 밤새도록 꺼내도 끝없이 나올 것처럼 별의별 것들이 다 집혀 나온다. 상자에서 나온 그 많은 물건이 용케도 상자 위와 주변에 제자리를 다 잡으면, 아저씨는 연탄 한 장짜리 화덕 두 개를 땅에 내려놓고는 불을 붙인다.


   “뽑기다~”

   아저씨가 골목에 나타나면 아이들은 다 같이 반색한다. 놀던 일을 작파하고 너나 할 것 없이 일제히 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아저씨가 채비할 동안 애들은 어떻게든 엄마를 졸라 동전 몇 닢이라도 타낸다. 엄마가 집에 없는 애들은 별도리가 없다. 조바심 난 애들이 쑤셔대는 쇠젓가락에 애꿎은 빨간 돼지들이 봉변당하는 수밖에. 각자 나름의 방법으로 의기양양해진 애들은 아저씨 앞으로 하나둘 속속 모여들어 연탄불이 얼른 타오르기만을 기다린다. 

   연탄불이 얼추 살아나고 화력이 적당하다 싶으면, 아저씨는 굵은 철사를 달팽이 모양으로 둥그렇게 구부려 만든 망을 연탄 위에 던지듯 하나씩 올려놓는다. 국자가 연탄에 직접 닿지 않도록 해서, 국자에 연탄이 묻는 것을 방지하고 무엇보다 국자와 연탄 사이에 적절한 간격을 만들어주어 화력을 제대로 받게 해주는 도구였다. 철사망이 연탄 위에 올라가면, 애들은 말 안 해도 영업개시의 신호로 알아듣는다. 이미 대기 중이던 국자들이 일제히 연탄불 위에 올라가고, 대나무 젓가락 한 개씩 쥔 능숙한 손들이 분주해진다. 

   뽑기에는 두 가지가 있다. 드라마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그 뽑기와 ‘경품을 뽑는’ 뽑기가 있다. 이 둘은 전혀 다른 것임에도 그냥 뽑기로 통칭했다. 우선 첫 번째 뽑기는 설탕 두어 스푼을 국자에 담아 불에 녹여 소다로 부풀린 다음, 쇠판에 탁 쳐서 동그란 누름 판으로 지그시 눌러 납작하게 주저앉힌 다음, 갖가지 모양의 뽑기틀 중에 하나를 올려놓고 다시 한번 꾹 눌러서 틀 자국을 선명하게 만들어준다. 요것이 입에 들어가면 탄내가 밴 달콤한 맛을 입안에 가득 남기며, 혀 위에서 그야말로 눈 녹듯이 순식간에 녹아 사라져버린다. 너무도 달콤하여 황홀한 지경에 다다르나 싶다가도 그게 너무 순식간이라 참으로 감질나고 애가 탄다. 뽑기 아저씨는 그 절박한 소망에 명쾌한 상술로 응답한다. 자국이 난 뽑기틀의 테두리를 다 따서 알맹이를 가져오는 조건으로 ‘하나 더!’를 건다. 그래서 이 뽑기를 ‘또 뽑기’라고 부르기도 했는데, 여하튼 애들은 그 ‘하나 더’를 얻기 위해 사생결단의 자세로 임한다.


   여기서 <오징어게임>의 흥행 바람에 파묻힌 진실 하나를 드러내 바로 잡아야겠다. 바늘을 사용하거나 침을 묻혀 떼는 것은 반칙이다. 최소한 ‘라떼는 그랬다.’ 바늘로 경계를 긁어 파거나 바늘 끝에 침을 발라 살살 긁으면 좀 더 신속하고 안전하게 다듬을 수는 있다. 하지만 뽑기 아저씨가 용납하지 않는다. 바늘이나 옷핀을 가지고 있다가 들키면 바로 아웃이다. 그렇다고 고객님을 쫓아낼 리야 없지만, 합격을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집에 가서 아저씨가 못 보는 상황에서 바늘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아저씨는 귀신같이 알아챈다. 사실 귀신이 아닌 나도 구별할 수 있다. 손으로 툭 부러뜨리듯 자르면 잘리는 면이 날카로운 직선으로 나오지만, 바늘로 긁거나 침을 사용하면, 자세히 보면 잘린 면에 미세한 군더더기가 붙어있어서 예리하지 않고 지저분하게 나온다. 이러면 아저씨는 앞뒤를 번갈아 살피다가 퇴짜를 놓는다.

   “진짜 이번 한 번이다, 다음엔 안 돼!”

   퇴짜를 놓기가 애매하면, 다짐을 받고 나서 하나 더 만들어준다. 아저씨의 처분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아이는 조건부 합격이 떨어지자 가슴을 쓸고 안도하며 금세 얼굴에 화색이 돈다. 재수 좋게도 자국이 선명하게 찍히는 바람에 쉽게 따 가져와 내미는 경우도 종종 있다. 뽑기 틀을 좀 강하게 눌러서 그런 것인데, 살짝만 힘을 줘도 한 번에 깔끔하게 원형이 나온다. 뽑기 틀은 네모, 세모, 동그라미, 자동차, 나비 등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별과 우산이 최고 난이도였다. 별은 골짜기 부분을 따내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특히 우산은 우산 자루가 가늘어서 주요 형상을 다 따내고도 막판에 자루가 부러져서 실패하기 일쑤다. 부러진 대목을 침 발라 붙여 손바닥에 얹어 와서는 우기는 애, 까불다 동강 난 걸 가지고 와서 애원하는 애, 이유도 사연도 가지가지 간절한 아이들이 벌써 몇 번째인지 알 수도 없는 ‘이번만’을 간청한다. 뽑기 아저씨는 갖가지 구구절절한 사연을 일일이 챙겨가며 엄정한 심판관이 되어 민원에 대응하지만, 때론 봐주기도 하고 때론 속아주기도 한다. 이게 의외로 다른 애들한테 합격의 동기를 자극하는 효과가 있어서 아저씨는 영업상 일부러 그러기도 했다. 참, <오징어게임>에서 뒤판을 혀로 핥아 얇게 녹인 다음 도려내는 장면이 나오는데, 일단 더럽기도 하고 구차해서 애들도 이러지 않았다.

   뽑기를 두고 ‘달고나’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건 틀린 말이다. 달고나는 설탕이 아니라 하얀색의 육면체 모양의 포도당 덩어리인데, 국자에 녹인 다음 소다를 넣어 부풀려 먹는 방식은 뽑기와 같다. 뽑기는 아저씨가 만들어 주지만, 달고나는 애들이 직접 국자에 녹여 부풀려 먹는 점이 다르다. 그래서 연탄불 앞에 붙어서 열심히 저어대는 애들은 달고나를 해 먹는 거였다.

   달고나 한두 개를 국자에 넣고 연탄불에 녹이다가 얼추 다 녹으면, 국자를 연탄불 가장자리로 이동시켜 직접 닿는 화력을 줄인 다음, 소다 가루를 대나무 젓가락 끝에 조금만 묻혀 섞는다. 이때 젓가락을 빠른 속도록 휘휘 저어서 소다가 골고루 섞이도록 하여 최대치로 부풀려야 한다. 더 이상 부풀지 않으면 다 된 거다. 휘젓던 나무젓가락이나 물이 담긴 작은 컵에 꽂혀있는 커피스푼으로 한 입 한 입 떠먹으면 된다. 맛이 기가 막힌다. 서둘러 먹다가 입을 데는 애들도 많다. 다 먹고 나면 주전자를 집어 들어 빈 국자에 물을 부어 연탄불에 다시 올린다. 젓가락을 저어가면서 국자 바닥에 눌어붙은 찌꺼기를 떼어낸다. 설거지를 하는 거다. 근데 설거지가 끝나면 설거지한 그 물을 식혀가며 또 다 떠먹는다. 싱겁지만 그래도 단맛이 좀 남아있다. 일종의 달고나 숭늉이랄까?     


   두 번째 뽑기는 뭘 녹이고 부풀리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돈을 내고 경품을 뽑는 게임이다. 뽑기 아저씨의 상자 위에는 1에서 50까지 숫자가 차례로 쓰인 숫자판이 깔려있다. 그리고 경품의 종류를 표시한 여러 개의 말들이 숫자판 위에 흩어져있다. 숫자판에 말들을 올려놓고, 아저씨가 꼭 쥐고 있는 주머니에 손을 쑥 집어넣어 칩을 꺼낸다. 꺼낸 칩에 적힌 숫자를 숫자판에 가서 확인한다. 그 숫자 위에 경품 말이 올라가 있으면, 그것을 경품으로 타는 것이다. 아니면, 이걸로... 통조림통 같은 양철 원통 안에는, 3단으로 각을 잡아, 접힌 종이들이 잔뜩 꽂혀있다. 종이의 재질은 포대종이처럼 두껍고 누런색인데, 길이가 15cm 정도는 되고 접은 상태로 폭은 대략 2cm 정도다. 종이를 뽑아서 펼치면 경품의 종류가 쓰여 있다. 물론 꽝도 있다. 많다. 소소한 경품의 제법 자주 걸리는데, 몸집이 큰 사탕은 가물에 콩 나듯 아주 드물게 나온다. 없으면 꽝이다.

   자잘하고 소소한 경품을 탈 수 있는 경품 말은 여러 개가 있어서 확률이 좀 되지만, 덩치 크고 값이 나가는 경품은 몇 개 안 되어 뽑힐 확률이 낮다. 경품으로 주는 물건은 설탕을 녹여 만든 주물 사탕이다. 마치 주물 틀에 쇳물을 붓듯이, 설탕 가루를 녹인 말간 원액을 은색의 주형틀에 부어 굳힌 다음, 틀을 벌려 떼어내면 갖가지 형상의 노랗게 투명한 사탕 덩어리가 떨어져 나온다.

   뽑을 확률이 높은 경품은 3~4cm 정도의 납작한 모양으로 토끼, 강아지, 자동차 등의 형상을 하고 있고, 한입에 들어가니 잠시 오물거리다 한두 번 씹으면 사라진다. 크기가 좀 큰 것들은 호랑이, 코끼리 등 동물 형상이 많았다. 이들은 모두 납작한 2차원 주물이지만, 유일하게 3차원 입체형 경품인 비행기가 있었다. 모양이 실제 비행기처럼 그럴듯하고 제법 정교해서 경품으로 받는다 해도 그냥 먹어버리기는 아까울 정도였다. 입체형이라 크기는 작아도 설탕이 꽤 많이 들어갔을 거다. 그런데 이 비행기를 경품으로 타간 경우는 거의 없었다. 비행기 경품 말은 단 하나였으니, 수학적으로 보면 1/50 즉 2%의 당첨 확률이었다. 그러니 ‘돼지가 용 승천하는 거 보고 놀라서 똥 밟는’ 꿈 정도는 꾼 애들이나 욕심을 내 볼 만했다. 간혹 비행기를 뽑은 애는 아저씨로부터 되팔라는 제안을 받는다. 아저씨는 비행기를 다시 만드는 수고를 더니 좋고, 뽑은 애도 몇 곱절의 돈을 받으니 좋은 거다. 그리고 맛보라고 소소한 경품도 집어준다.     

   없는 돈에 시도한 여러 차례의 도전에도 불구하고 매번 기본 경품을 넘어서지 못해 속 타는 애들이 결국 집에서 수제품 제작으로 원풀이를 시도한다. 집집마다 국자와 설탕은 다 있으니, 밥그릇 바닥에 둥근 테두리 받침이 있는 밥그릇을 챙긴다. 이놈을 엎어놓고 들기름을 고르게 잘 발라 옆에 두고, 석유곤로를 켜서 설탕을 듬뿍 부은 국자를 올려놓는다. 금세 투명하고 끈적한 원액이 만들어지는데, 국자 안에서 굳기 전에 서둘러 엎어둔 밥그릇에 부어준다. 모양은 기껏해야 동그라미 이상 나올 도리가 없으나, 맛과 손수 제작의 보람만큼은 충만했다.

   참, 뽑기 아저씨가 가진 아이템에는 뽑기와 달고나 말고도 한 가지가 더 있었는데, 바로 쨈이다. 깊이도 깊고 폭도 넓은 제법 커다란 국자에 하얀 녹말가루와 물엿 같은 것을 몇 숟갈 퍼 담아주고 물을 적당히 부어 연탄불에 올린다. 국자 바닥에 눋지 않도록 서서히 저어주면서 기다리면 물과 가루가 엉기면서 어느새 죽처럼 변한다. 그러다 보면 기포 방울이 수줍게 뽀글대며 올라오기 시작하는데, 그럼 완성이다. 검은색을 띤 죽인데 달달하니 맛도 있고 간단한 요기도 된다. 그러나 뽑기나 달고나처럼 자극적인 맛이 나지는 않아 별로였다.

   그러다 보니 국자도 여러 가지다. 아저씨가 전용으로 사용하는 뽑기 국자는 지름 3~4cm 정도로 작고 깊이는 1cm도 채 안 될 정도로 얕다. 설탕을 녹이고 소다를 섞고, 탁 털어내서 모형 틀을 찍기까지 매우 짧은 시간에 이루어져야 하므로 민첩한 움직임에 적합하도록 작고 가볍다. 달고나에 사용하는 국자는 보통 집에서 국 뜰 때 쓰는 그 국자와 같다. 입도 크고 깊이도 가마솥처럼 둥글고 깊이는 2~3cm 정도 된다. 쨈은 용량이 일단 크고 깊이도 7~8cm는 족히 되는 원통형 국자였다. 이들 국자의 재질은 아마도 전부 양은이었다.  


#미아리의추억 #주전부리 #달고나 #뽑기 #쨈 #오징어게임

류해윤_수박농장_종이에 아크릴릭_75*60cm_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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