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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Feb 02. 2022

뻔데기와 소라  

추억의 주전부리 (2)

   학교가 파하면 어김없이 교문 앞에서는 번데기 아저씨가 한참 전부터 와있었다는 듯 반갑게 웃으며 우리를 반긴다. 신신문방구 아줌마가 문 쪽으로 너무 가까이 오지 말라고 타박했는지 문방구에서 좀 떨어진 위치에 조그만 리어카를 대고 자리를 잡고 있었다. 리어카 한 가운데 얹혀있는 커다란 스텐 다라이(대야)에는 번데기가 가득 들어있고 맛있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강력하게 자극하는 그 콤콤한 냄새를 맡고도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아저씨에게 다가가자마자 난 익숙한 듯 번데기 대야 옆에 걸린 원판을 잡고 힘껏 돌린다.

   “준비하시고... 쏘세욧!”

   아저씨의 기합 소리에 맞춰 고무줄로 칭칭 감아 도톰해진 송곳 살을 힘껏 내리꽂는다. “아~! 꽝!” 탄식하는 나를 아저씨는 웃으며 바라보며 ‘당연히 한 번 더 해야지?’ 눈으로 묻는다. “한 번 더요~!” 호기롭게 원판을 다시 세게 잡아 돌린다. 나는 돌아가던 원판을 잡아 세우고선 “아저씨가 돌려주세요” 한다. 아저씨는 씨익 웃고는 원판을 힘껏 돌린다. 아저씨는 아까보다 흥을 더 돋우며 응원의 기운을 담아 다시 한번 기합 소리를 낸다.

   “준비하시고... 쏘세욧!”

   이번에는 나도 일부러 반 박자 쉬고 또 힘껏 내려 꼽는다. 원판의 회전이 잦아들 무렵 꼽힌 자리가 아른아른 보일락 말락 한다. “와~, 앗?, 아아!” 함성인 듯 신음인 듯한 소리가 연이어 터지는데, 가늘다 못해 뾰족한 ‘대박’ 칸을 아슬아슬하게 비켜나 꼽힌 게 보인다. 물론 꽝은 아니지만, 꽝이나 다름없는 칸을 찍고 말았다. 대박을 놓쳐 실망이 큰 내 심사를 헤아리면서도 내 주머니 사정을 눈치챘는지, 할래말래 내 의사도 묻지 않는다. ‘이제 고만하지?’라고 못을 박듯, 신문지를 말아 만든 고깔 컵 신문지를 접고 칼로 오린 후, 말아서 고깔 모양의 그릇을 만들어, 크기가 같은 것들끼리 겹겹이 겹쳐 쌓아둔다. 크기가 같은 것들끼리 겹겹이 쌓다 보면 활처럼 휘어지는데, 이런 활처럼 휘어진 고깔 컵 더미가 서너 개 꽂혀있었다.

   하나를 꺼내 들더니 다라이 쪽으로 가져가서 번데기를 퍼 담는다. 대박을 놓친 게 너무 아깝다, 번데기라도 많이 담아줄 테니 맘 풀어라 하는 거 같은데, 아무리 담고 담아도 이미 정해진 크기의 고깔 컵에는 담겨보지도 못하고 바로 다라이로 떨어지고 만다. 아저씨는 마치 안 보이기라도 하듯 능청스럽게 담고 또 담는다.

   “됐어요, 그냥 주세요.”

   약 올리나 싶어 퉁명스럽게 던지자, 아저씨는 민망한 듯 이번엔 국물을 두어 차례 더 떠 담은 후 마침내 고깔 컵을 건네준다. 고깔 컵을 받아드는 순간, 비로소 그 콤콤한 냄새가 다시 코를 찌른다. 입으로 가져가 컵 위에 올라온 번데기들을 흡입하듯 한입에 가득 물고 우적우적 씹는다. 짭조름한 비린내에 콤콤하면서 고소한 향이 입안에서 마구 뒤섞이며, 좀 전 간발의 차이로 빗겨 난 대박의 아쉬움은 잊힌다. 번데기를 먹다 보면 사래에 자주 들린다. 고깔 컵을 거꾸로 들고 입에 대면 국물이 쪼르르 흘러드는데, 중간중간 번데기 국물을 적당하게 섞어가며 먹어야 한다.


   번데기 아저씨는 보통 삶은 소라(고동인가?)도 같이 팔았다. 번데기와 소라 각각 한가지씩만 가져와 팔기도 하지만, 애들의 취향을 고려해 두 가지를 다 파는 것이다. 스텐 다라이에 담아 불에 올려놓고 파는 거나, 원판을 돌려 찍는 거나, 신문지 고깔 컵에 담아주는 거나 모든 것이 번데기와 같았다. 소라 입구를 두 입술 사이에 물리고 쪽 빨아먹는 건데, 요게 잘 안 빨리면 힘만 빼고 허당이라, 소라의 끝은 미리 뺀치로 일일이 다 끊어내고 삶는다. 그렇게 공기의 흡입구를 확보해야 입에 대고 빨면 바로 쇽, 하고 내용물이 쉽게 빨려 들어온다. 그래도 잘 안 빠진다며 쉭쉭 소리 내며 빨아대다가 에이~ 하며 던져버리기도 한다.     

   번데기 소라 말고도 찹쌀떡 꼬치가 또 인기 품목 축에 들었다. 콩고물 묻힌 찹쌀떡 꼬치는 먹고 돌아서면 바로 배고프던 애들에게는 참으로 맛난 간식이었다. 조그만 찹쌀떡 조각을 나무 꼬치에 10여 개 꼽아서 콩고물을 잔뜩 묻혀 떡판에 가지런히 눕혀놓는다. 이 떡을 따는 방법은 역시 뽑기다. 금은방에서 반지 사면 넣어주는 복조리 모양의 주머니 같은 걸 아저씨가 내민다. 주머니 입구를 여미고 있던 줄을 풀면 이쑤시개 같은 얇은 나무 봉들이 머리를 맞댄 채 정수리를 내민다. 그럼 그중에 하나를 집어 빼면, 나무 봉 끝에 점이 찍혀있는데, 하나부터 다섯 개까지 있다. 그 점의 개수만큼 떡꼬치를 집어주었다. 꼬치에 꼽힌 주사위 모양의 떡 조각 크기는 가로세로가 고작 0.5cm 정도 되었는데, 꼬치에 달린 떡을 한 번에 훑어서 한입에 넣어도 입 안에서 헐렁하게 돌아다니는가 싶다가 금세 사라져버리니 감질났다. 어쩌다 다섯 개짜리를 뽑으면, 꼬치 자루 다섯 개를 한꺼번에 쥐고 입으로 쓱 훑어 먹으면 입 안이 꽉 차는 것이 흐뭇하고 뿌듯했다.


#미아리의추억 #주전부리  #번데기 #소라 #찹쌀떡꼬치

류해유_조와 수수밭의 참새 뙤_ 종이에 아크릴릭_45.2*78.5cm_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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