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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Feb 03. 2022

"께끼나 하드, 석빙고"

추억의 주전부리 (3)

   어느 더운 여름날, 슈퍼가게에서 하드를 사서 물고 나오는 친구를 발견한 아이는 너무 먹고 싶은 간절한 표정을 지으며 ‘딱, 한 입만’을 간청한다. 간절한 애원을 차마 외면하지 못한 마음 약한 친구는, ‘빨기만’을 조건으로 붙이고 마지못해 하드를 내밀었다.

   “깨물면 죽어~!”

   알았다고 대답은 했으니 마음이야 어떻게든 그 약속을 지키려 하지만, 몸이 어디 마음을 따라주던가. 하드를 입 안에 넣고 입술을 오므려 한번 빨고 놓으려는데, 그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 위아래 앞니는, 이미 혀와 입술이 탐색해놓은 하드의 끝부분을 깨물어버린다. 낌새를 눈치챈 하드 주인, 바로 잡아당겨 하드를 친구 입에서 빼냈지만, 하드는 이미 동강이 나 눈에 띄게 줄어버렸다. 그 애는 하드 주인의 다짐대로, 그날 죽었다.     


   학교에서는 꾸준하게 ‘불량식품’ 퇴치 캠페인을 했다. 가정통신문을 보내기도 하고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잔소리하고, 심지어는 교문 앞에 나서서 단속 비슷한 것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길거리나 골목 말고 가게에서 정식(?)으로 사 먹을 수 있는 과자나 군것질거리가 그리 많지 않았다. 학교 주변 불량식품이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점차 사라지고 제과 회사가 만들어내는 품목들이 그 수를 늘려갔다. 이들은 대부분 슈퍼에서 팔았고, 문방구에서 파는 것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빙과(氷菓), 말 그대로 얼음과자다. 초기에는 아이스께끼와 석빙고가 유일한 얼음과자였다. 아이스께끼는 빨강, 노란, 파랑 등의 색소가 들어간 단물을 얼려 만든 가장 기본적인 얼음과자다. 전체가 얼음덩어리라 더울 때 시원했고, 무엇보다 값이 쌌다. 10원이면 다섯 개는 주었다. 석빙고는 고급형에 해당하는데, 색소는 빼고 팥물을 얼려 만들어서 훨씬 맛이 부드럽고 가끔 팥 알갱이도 씹히는 게 괜찮았다. 조금 나중에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얼음과자인 ‘하드’가 나왔다. 우유를 일정 비율로 넣어 얼린 것으로 일단 색깔이 하얗고, 생 얼음으로 된 다른 빙과들과는 확연하게 구분되는 점이, 우유가 들어가서 보실보실 부드럽다는 점이다. 얼음과 눈 사이의 그 어디쯤이었다.

   이 얼음과자들은 슈퍼 같은 가게에서 팔았지만, 초기에는 주로 하드통에 넣고 돌아다니면서 팔았다. 가로세로와 높이 30~40cm 정도 되는 정육면체 함석통 안에 간단한 보냉장치를 해서 어깨에 매거나 팔에 걸고 외치고 다니면서 팔았다. 

   “께끼나 하~드, 석빙고..” 

   어른뿐만 아니라 애들도 알바로 많이 팔고 다녔다. 길음시장 내려가다가 개천 지나면 바로 얼음을 파는 얼음창고(氷庫)가 있었고, 그 옆에 아이스께끼 ‘본부’가 있었다. 작은형이 4학년쯤 되었을까, 여름방학 때 용돈 벌겠다고 시장 쪽으로 내려가더니 하드통을 매고 나타났다. 우리 동네에서는 창피했는지 딴 동네로 가서 외치고 다니며 팔았다. 물론 나도 형 뒤에 붙어서 “께끼나 하~드, 석빙고 …”를 합창으로 외치며 쫓아다녔다. 잘 팔리면 팔리는 대로 기분 좋다고 꺼내 먹고, 안 팔리면 녹기 전에 먹어 치운다고 꺼내 먹고, 이래저래 많이 얻어먹었다.

   그러다가 제과회사에서 만든 얼음과자가 나오면서 동네 슈퍼들은 높이가 1m 좀 넘는 길쭉한 전용 하드통을 가게 앞에 내놓고, 그 안에 갖가지 하드를 종류별로 쟁여놓고 팔았다. 하드통 안에는 고무로 된 튼튼한 주머니가 있는데, 그 안에 얼음을 덩어리 채 넣고 굵은 왕소금을 듬뿍 집어넣고는, 주머니의 모가지 부분을 꼭꼭 동여매 얼음이 녹아도 세지 않도록 단단히 단속했다. 하드통 바닥에서부터 하드가 부러지지 않도록 세워서 차곡차곡 쌓고, 얼음주머니를 제일 위에 얹어 냉기가 위에서 아래로 흘러 하드 전체에 골고루 전달되도록 했다. 그래서 하드 꺼낸다고 하드통 뚜껑을 열고 한참을 고르고 있으면, 빨리 닫으라고 슈퍼 아줌마에게 타박을 듣기 일쑤였다.


   하드 계의 역사적인 사건은 아무래도 ‘초코’ 하드의 출현이었다. 하드의 끝부분 1/3 정도가 까만 초콜렛으로 덮혀있는 획기적인 하드가 새로 나왔다. 초콜렛도 귀한 시절인데 그걸 하드에 발라놓다니. 초콜렛이 발려있는 부분을 조심스럽게 깨물면, ‘빠직~’ 하는 소리와 함께 초콜렛 조각들이 입안으로 떨어진다. 잘린 하드와 조각난 초콜렛을 함께 씹으면 특유의 단맛이 난다. 초콜렛이 하드의 차가운 냉기로 인하여 입 안에서 바로 녹지 않고, 밀랍처럼 약간 텁텁한 느낌으로 잠시 씹히다가 초콜렛 단맛을 남기고 사라지는데, 그 잠깐의 식감이 최고의 별미였다. 초코하드는 다른 하드에 비해 값도 2배였다. ‘삼강’이라는 회사가 만든 것인데, 그래서 우리는 이 초코하드를 ‘삼강하드’라고 불렀고, 삼강하드는 고급 하드의 상징이 되었다. 


#미아리의추억 #주전부리 #아이스케키 #불량식품 #석빙고 #삼강하드 #쵸코하드

류해윤_폭포_종이에 수채와 아크릴릭_65.5*89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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