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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Sep 03. 2022

"뻥이요~"

   조용하던 골목을 아침부터 ‘펑~’ 하는 소리로 깨우더니, 잠시 후 고소한 냄새가 동네에 진동한다. 뻥 아저씨가 뻥튀기는 소리다. 아저씨는 뻥 터뜨리기 전에 “뻥이요~” 하고 경고를 날려준다. 동네 사람들은 저 소리가 오늘 온종일 주기적으로 계속 날 것을 알면서도 깜짝깜짝 놀란다. 근데 그 소리가 내 귀에는 그저 ‘뻥’하고 마는 소리가 아니고, ‘팟’ 하는 거 같은 소리가 그 안에 들어있었다. 아마도 튀겨진 알갱이들이 쇠통 아가리에서 한꺼번에 튀어나오면서 서로 몸을 부벼대느라 나는 소리가 아닐까 싶은데, 암튼 ‘뻥’과 ‘팟’이 섞인 오묘한 소리였다. 

   집집마다 애고 어른이고 바가지며 자루며 하나씩 들고나와 뻥 앞으로 모인다. 성한 건 없는지 죄다 찌그러지고 시커멓게 때 탄 깡통을 늘어놓고, 아저씨는 받아든 곡식들을 하나하나 따로 부어 담아 땅바닥에 줄을 세운다. 순식간에 깡통 줄은 구렁이처럼 구불구불 2중 3중의 겹줄이 된다. 튀밥이 되는 생쌀을 역시 가장 많이 가져 나온다. 강냉이가 되는 옥수수 알갱이를 말려 나오고, 언제 말려놨는지 누룽지나 가래떡 썰어 말린 것을 가지고 나오기도 한다. 누룽지도 가래떡도 이게 튀겨놓으면 양도 많아지지만, 빠삭빠삭 과자처럼 맛이 그만이다. 뻥 아저씨 올 때 맞춰 미리미리 다 말려둔 것이다. 아저씨는 깡통에 든 곡식의 종류와 양을 일일이 확인하며, 숟가락으로 하얀 가루를 떠 넣고 깡통을 흔들어 섞어준다. 아마도 단맛을 내기 위한 사카린이었을 거다.

   “엄마아~ 우리도 튀기자.”

   “야가 지금 무신 소리 하노? 오데 멀쩡한 쌀을 퍼다가 튀밥을 튀긴다 카노?”

   밥 되는 귀한 쌀을 주전부리로 튀겨 없애는 일이니 선뜻 쌀을 내줄 리가 없었다. 뻥아저씨가 골목에 자리 잡을 때부터 오전 내내 조르고, 계속 주기적으로 뻥 소리가 터져대고, 그때마다 퍼지는 고소한 냄새가 동네 골목을 다 뒤덮고 나서야, 엄마도 결국은 못 이기기고 쌀을 좀 퍼내 주었다.      


   이제 준비는 완료되었고 뻥튀기에 돌입한다. 임진왜란 때나 썼을 법한 대포 화통같이 생긴 시꺼먼 쇠통을 대각선 방향으로 일으켜 세우더니, 깡통을 집어 쇠통 아가리에 털어 넣는다. 덮개로 아가리를 닫은 뒤, 쇠 작대기 두 개를 덮개에 난 구멍에 걸어 X자로 교차시킨 다음 단단히 조인다. 쇠통을 수구려 다시 수평이 되게 하고, 아래에 쇠 받침대를 받쳐서 수평을 유지한다. 그리고는 쇠통 꽁무니 쪽의 휠과 손으로 돌리는 수동 휠을 연결하는 피댓줄을 끼운다. 쇠통 몸통의 불룩한 배 아래에 조그만 가스버너를 밀어 넣고 밸브를 열고 불을 댕기면, 버너는 몸집에 어울리지 않게 기세 차게 파란색 불꽃을 뿜어낸다. 이러면 모든 준비는 완료다. 

   마침내 조그만 접이식 낚시 의자에 간신히 엉덩이를 걸치고 자리를 잡은 뻥 아저씨는 손잡이 달린 휠을 서서히 돌린다. 그러면 쇠통도 따라서 돌아간다. 마치 커피 볶는 통 돌듯이 빙글빙글 느리지도 서둘지도 않고 돌아간다. 튀기는 내용물에 따라 시간은 조금씩 다르지만 20여 분 정도 이렇게 버너 불로 쇠통을 달구다가, 제일 먼저 버너를 쇠통 밑에서 빼내 옆으로 치우고 쇠통과 연결된 피댓줄을 벗겨낸다. 다시 쇠통을 먼 산 바라보듯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세우고, 굵은 철사 망으로 만들어진 길쭉한 자루 망으로 쇠통 입구를 덮듯 씌운다. 그리고 다시 쇠 작대기 두 개를 조일 때와 마찬가지로 건다. 

   “자, 뻥이요~ 뻥이요~”

   아저씨는 골목 양쪽에 대고 큰소리로 두 번 외치고 나서, 한 박자 쉬고 쇠 작대기를 쥔 두 손을 비튼다. ‘뻥~~’ 소리와 함께, 전투기가 산등성이를 폭격할 때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고소한 연기가 올라오고 순식간에 골목으로 퍼져나간다. 자루 망을 쳐들고 탈탈 털어서 한쪽으로 몰리게 하고는 커다란 비닐봉지나 광목으로 된 밀가루 포대에 바가지로 퍼 담는다. 그리고 다시 자루 통 안으로 빗자루를 넣어 남아있는 것들을 남김없이 싹싹 쓸어내 마저 담아준다. 들어갈 때는 깡통 하나도 채우지 못한 양인데, 나올 때는 몇 배로 부풀어 비닐봉지 한가득이다.     


   동네는 항상 시끌시끌 바쁘게 돌아가는 것 같지만, 비슷한 일상이 그저 그렇게 반복되는 곳이다. 종일 놀아도 놀이가 고프고, 똑같은 놀이를 하면서도 항상 새로운 것에 갈증을 느끼는 아이들에게 뻥 아저씨의 출현은 사건이고,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게다가 고소한 주전부리까지 잔뜩 만들어 주고 가니, 항상 반가운 동네 손님일 수밖에 없었다.


#미아리의추억 #뻥튀기 #강냉이 #주전부리

류해윤_절구_종이 위에 아크릴릭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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