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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Sep 01. 2022

엄마의 겨울준비

   없는 집 살림으로는 여름보다 겨울이 버겁다. 무더위가 지나면 어느새 추석이 성큼 다가오고, 그러면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제법 쌀쌀해진다. 그때부터 엄마는 겨울을 나기 위한 준비를 한다. 문종이 바르기, 연탄 들여놓기, 김장하기가 그것인데 엄마의 겨울 준비 3종 세트다.


   우선 문종이를 개비한다. 우리 집 문이라고는 세탁소 가게방에 달린 문짝 두개가 전부다. 우선 문짝을 문틀에서 빼내서 문종이를 대충 뜯어낸 다음, 세탁소 분무기로 물을 고루 뿌리고 안집 마당에 한동안 세워 둔다. 물기로 문종이가 충분이 불면 붙어있는 종이를 마저 깨끗하게 뜯어내고 먼지까지 물로 말끔히 씻어낸 다음, 다시 세워두고 물기를 말린다. 그 사이에 엄마는 풀을 쑤어놓고, 다 마른 문짝을 다시 문지방에 끼운 다음 풀 바른 창호지를 위에서부터 붙여 나간다. 이때 마른 수건으로 창호지 위를 내리쓸며 창호지가 울지 않게 잘 펴준다. 그리고 나서 분무기로 다시 한 번 고르게 뿌려주면 끝이다. 

   물기가 날라 가면서 금방 팽팽해지는데 손가락으로 튕기면 소고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참, 이때 중요한 공정이 있다. 여닫는 문짝 아래쪽에 가로세로 20cm 정도 되는 정사각형 모양의 작은 유리를 붙이고 유리 테두리를 문종이로 잘 발라서 떨어지지 않게 한다. 가게방 안에서 가게를 내다볼 수 있는 창이다. 그래야 가게 문소리가 들리거나 인기척이 나면, 방문을 열지 않고도 사정을 살필 수 있다.

   그 다음은 연탄이다. 연탄은 미리미리 들여놔야 충분히 건조가 돼서 사용할 때 화력도 좋고 연탄가스가 나오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그래서 연탄을 본격적으로 때기 몇 달 전부터 일치감치 들여놓는다. 우리 집은 방은 한 칸이지만 가게에서도  다리미를 데우는 화덕이 있어서, 매년 겨울마다 4~500장 정도는 들여놨던 것 같다. 안집 마당 한켠에 광이 있는데, 그곳에 차곡차곡 쟁여두었다. 연탄집 아저씨가 아줌마하고 같이 리어카에 싣고 와서, 아저씨는 공사판 질통처럼 생긴 연탄 지게에 나누어 담아서 광으로 실어 날랐고, 아줌마는 한 번에 연탄 두 장이 잡히는 집개를 양손에 들고 연탄을 날랐다. 부부가 대략 20여 차례 정도 드나들고 나면 광이 꽉 찬다.     


   진짜 본격적인 겨울 준비는 김장이다. 김장은 너무 일찍 하면 쉬어버린다. 당시에는 반찬의 기본이 김치인데다 오래도록 김장독에서 김치를 꺼내 먹었어서, 버티다 버티다 아주 추워지기 시작할 때 바짝 서둘러 마무리했다. 그런데 참 많이도 했다. 매년 보통 2접 정도는 담갔다. 2접이면 200포기다. 요사이 20포기도 많다고 하는데, 거의 10배를 담근 셈이다. 다섯 식구에 기술자까지 총 여섯 식구가 먹어야 하고, 이듬해 김치가 다 쉬어 꼬부라질 늦봄까지 먹었으니, 200포기를 해도 남지 않았다. 그때는 웬만한 집들도 보통 1접반이나 2접씩은 다 했다. 

   김장 하는 날을 잡으면 우선 며칠 전에, 아버지는 안집 마당으로 나가자마자 바로 구석에 김장독을 묻을 땅을 판다. 200포기가 들어가야 하니 독이 키도 크고 뚱뚱해서 땅도 깊이 넉넉히 파야 한다. 그리고 김칫독과 동치미 독이 별개라 두 개가 나란히 묻히도록 팠다. 독을 다 묻으면 비닐로 내피를 두르고 뚜껑을 닫아둔다. 아버지 일은 여기까지다. 이제부터는 엄마 일이고, 내가 종횡무진 활약에 나설 차례다.     

   드디어 김장하는 날, 배추를 실은 트럭들이 아침 일찍부터 큰길가에 죽 늘어서고, 엄마는 트럭에 실린 배추들을 일일이 살피면서 돌아보다가 흥정을 한다. 결정이 나면 그 자리에서 배추를 운반한다. 트럭 위에서 배추를 아래로 던지면 아래에서 받아서 바로바로 리어카에 싣는다. 던질 때엔 우리더러 들으라는 뜻인지, 위에서 “하나요~” 하고 던지면 밑에서도 “하나요~” 하면서 받는다. 그런데 그 숫자를 가락에 얹어서 노동요처럼 부르는데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아저씨들이 부르는 숫자가 언제 건너뛸지도 몰라 나도 정신을 바짝 차리고 속으로 함께 따라 숫자를 센다. 그러고 있는 줄 아는 엄마는 내가 세던 수를 놓칠까봐 중간에 나에게 말도 안 건다. 아저씨가 다 됐다고 하면, 그제야 엄마는 나를 바라보고 ‘틀림없지?’ 눈으로 묻는다. 역시 내가 고개를 끄덕이면 엄마는 값을 치렀다. 그럴 때면 난 내가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했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대로 따로 세고 있었을 거다.

   실어 온 배추를 세탁소 앞에 부려놓고, 거기서 바로 작업에 들어간다. 우선은 배추 ‘쪼개기’를 한다. 보통 배추를 반 토막을 내는데, 배추통이 크면 4등분으로 쪼갠다. 이때 배추 꼬다리를 잘 따내야 한다. 반으로 쪼갠 배추 꽁지에 칼을 좌우로 비스듬히 집어넣어 V자로 칼집을 내고는 삼각형 모양으로 꼬다리를 따낸다. 너무 깊이 파내면 배추 속이 잘려 빠져나오기 때문에 적당한 깊이로 칼을 찔러 넣어야 한다. 

   쪼개기를 나랑 엄마가 같이 하지만, 엄마 속도가 훨씬 빨라서 쪼갠 배추가 쌓이기 시작한다. 그럼 난 쪼개기를 그만두고, ‘절이기’에 들어간다. 쪼갠 배추들을 광주리에 담아서 안집 마당으로 옮겨간다. 마당 수돗가엔 평소에 물을 담아 두는 네모난 욕조 같이 생긴 절임통이 있는데, 엄마가 미리 굵은 소금을 풀어 간을 해두었다. 거기에 배추가 푹 담기도록 차곡차곡 쌓는다. 욕조에 배추가 다 차면, 다라이며 솥이며 다 꺼내와 배추를 담가 소금물에 절였다.

   오후 내내 절임 통에 담갔다가 저녁 무렵부터는 ‘헹구기’로 들어간다. 일단 절임 통에서 풀죽은 배추들을 꺼내서 광주리에 담는데, 배추 꽁지가 바깥으로 향하게 방사형으로 빙 둘러서 담는다. 그리고 그 위로 계속 쌓는다. 10층도 넘게 쌓는데 배추 탑이 쓰러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광주리 밑으로 소금물이 얼추 빠져나가면, 절임통에 남아있는 소금기를 씻어내고 맑은 물을 담아, 거기서 배추를 하나하나 헹궈내고 다시 광주리에 쌓아둔다. 이렇게 두어 번 하면 헹구기도 끝이 나고 마지막에 비닐로 덮어둔다. 그럼 깜깜한 밤이 된다. 무지 춥고 손이 시리다. 고무장갑을 끼고 그 속에 면장갑도 끼었지만, 계속 찬물에 손을 담구니 손끝이 얼얼하다가 아파온다. 이걸 내가 엄마랑 다했다. 그렇지만 난 여기까지다.

   다음날은 절인 배추에 속을 넣는 일인데, 엄마가 동네 아줌마들을 불러다가 함께 한다. 속을 넣은 배추를 김장독에 옮기는 일은 아버지가, 그걸 다시 독에 차곡차곡 쌓는 일은 엄마가 한다. 난 나가 놀다가 가끔 들어와서 여린 노란 속을 뜯어 굴을 싸주면 입만 내밀어 받아먹고 나가면 된다. 김치를 독에 담고, 동치미까지 끝나면 엄마들은 돼지고기를 삶아서 김치랑 싸서 먹으며 막걸리 한 잔씩들 한다.     

   이렇게 왁자지껄 미아리의 골목은 겨울의 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간다. 엄마의 고단함으로 우리집 식구들은 아늑한 겨울을 맞이한다. 


#미아리의추억 #겨울준비 #김장 #연탄 #문창호지

류해윤_우물가 아낙네들_종이 위에 아크릴릭_2011_78.5*64.5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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