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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Feb 01. 2023

마을백수

   우리 세탁소에 매일 도장 찍듯 드나드는 사람이 있었다. 우체부 아저씨다. 아저씨는 매일 오후 정해진 시간에 커다란 소가죽 가방이 터질 만큼 우편물을 잔뜩 담아서 땀을 뻘뻘 흘리며 비탈을 올라온다. 한숨 돌리고 나면, 당연하다는 듯이 세탁소 구석에 놓인 탁자 위에 우편물을 다 쏟아놓고 그냥 가버린다. 그다음은 내 차지다. 내가 그 우편물을 모조리 순식간에 집집이 다 나누어주었다. 나 어릴 적에는 제법 총기가 있었는지, 학교 들어가기도 전부터 형들 틈에서 이미 한글을 깨우쳤던 터라 동네 집 주소를 일일이 다 외우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때 되면 날아오는 적십자회비 고지서며, 예비군훈련 통지서 역시도 모두 내 몫이었다. 아버지가 통장이어서 그랬다. 통장 전에 반장을 맡은 기간까지 합치면, 50년 가까이 통반장을 한 셈이다.

   낯선 사람이 골목에 들어서면, 아버지는 다림질하다 말고 그 사람이 어느 대문으로 들어가는지 끝까지 눈으로 좇는다. 나중에 그 집에서 누가 나오면 아까 들어간 사람이 누구냐고 꼭 확인한다. 또 아버지는 동네 애들이 겨울에 양말 안 신고 다니는 꼴을 못 보고, 잘 놀고 있는 애들 가게로 불러들여 잔소리한다. 동네 할머니가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엔 꼭 세탁소 앞 평상에서 쉬어간다. 그러면 엄마는 재빨리 수돗물을 그릇에 떠다 바친다. 저녁엔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를 하는 아이들이 세탁소 앞을 차지한다. 밤이 좀 더 깊으면 동네 엄마들이 역시 세탁소 앞 평상에 모여, 가운데 조그만 라디오 하나 앉혀 놓고 연속극에 집중한다.

   우리 세탁소는 시골의 마을회관 같은 구실을 한 셈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엄마 아버지는 요즘의 마을활동가 같은 분이지 않았나 싶다. 하기야 ‘마을은 백수가 지킨다’ 했고, 백수란 ‘낮에도 동네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고 보면, 대표 백수가 바로 아버지처럼 동네에서 가게 하는 사람 아닌가. 내가 나이 40줄에 들고부터 마을살이를 그렇게 재미나게 했던 걸 보면, 그것도 다 내력인가 보다.


   언제가 내가 동네에 마을극장을 짓고 개관기념 행사를 한 달 내내 할 때, 마지막 공연으로 내가 창단 멤버인 마을 극단 <무말랭이>의 공연이 있었다. 그때 무대에 올린 작품이 <오아시스 세탁소 습격사건>이었는데, ‘당연’ 내가 주인공인 세탁소 주인 역할을 맡았다. 평생 세탁소 막내아들로 살아온 내가 세탁소 주인 역을 맡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기도 했지만, 그만한 연기력이 바탕이 되었음이 틀림없다 …… 고, 믿고 있다. 이때 아버지에게 다림대 위의 여러 부품과 도구들을 다 쓸다시피 걷어와 소품으로 사용했다. 마지막 공연 날 막내가 나오는 연극공연 보러 오신 아버지, 아마도 평생 처음으로 연극을 보셨을 텐데, 한 시간 반이나 되는 시간 동안 앞줄에서 꼼짝하지 않고 다 보셨다. 예상대로 별말씀은 없었다. 그러다 “가자~!!” 하며 할아버지 모시느라 동행한 조카들을 부르는가 싶더니, 아버지 앞을 얼쩡대는 나를 보며 겨우 한마디, 뜬금없이 던진다.

   “고맙다!!”

   순간, 나는 얼어붙었고 뭉클하다가 콧등이 시큰해졌다.

아마도 아버지는 평생 세탁소란 직업에 대해 그리 자랑스럽게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막내가 당신의 코앞에서 너무도 그럴싸하게 세탁소 주인으로 당신의 모습을 하고 있고, 극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이 환호하고 손뼉을 치고 있으니 뭔가 인정받고 위로받는 기분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미아리의추억 #마을백수 #무말랭이 #마을극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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