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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Feb 02. 2023

   “아저씨, 이거요. 엿 많이 주세요.”

   “너 이거, 엄마한테 얘기하고 가져온 거 맞냐?”

   “그럼요, 엄마가 가져가도 된다고 했어요.”

   아저씨가 보기에도 어디 찌그러진 데 하나 없는 멀쩡한 냄비라 의심이 들어 묻는다. 애는 자신 있게 얘기는 하지만, 표정만큼은 거짓말을 못 한다.     


   엿장수 아저씨가 엿판이 얹힌 리어커를 끌고 골목에 들어서면, 애들은 모두 집으로 뛰어 들어가서 뭐라도 손에 들고나온다. 소주병이 주로 많이 나온다. 2홉짜리는 여러 개를 가지고 와야 하고, 4홉짜리 정도는 되어야 엿가락 한두 개라도 얻을 수 있었다. 자잘한 활명수 병이나 박카스 병을 잔뜩 끌어안고 나와 아저씨를 애처롭게 쳐다보는 꼬맹이들도 있는데, 아저씨는 차마 내칠 수가 없어 호박엿을 대패로 두어 번 밀어서 나온 엿을 조금 쥐어주기도 했다. 병 중에서 최고는 단연 백화수복 됫병이었다. 이 정도는 되어야 아저씨도 좋아하고 엿가락도 너덧 개 집어준다. 사실 병보다는 냄비나 솥 같은 금속으로 된 것들이 대환영이었고, 엿도 많이 주었다.

   엿이 먹고 싶어죽겠는데 집에 변변한 빈 병도 없는 애들이 멀쩡한 들고나오는 바람에 엿장수 아저씨를 곤란하게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거다. 잠시 후 애 엄마가 나와 엿장수 리어카 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온다. 엿장수 아저씨는 안 그래도 엄마를 기다렸다는 듯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어 보이며 냄비를 내민다. 애는 엄마의 혼구녕을 각오했는지 찍소리 못하고, 엄마 손에 잡힌 채 고개를 숙이고 마지못해 따라 들어갔다.    

 

   애들이 사족을 못 쓰고 달려드는 달콤함으로는 엿을 따라잡을 만한 것이 있을까? 엿장수 아저씨가 파는 엿은 호박엿과 엿치기용 자루엿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호박엿은 엿 색깔이 짙은 벽돌색이고, 엿판 위에 통째로 펑퍼짐하게 퍼져있다. 손님이 오면 엿장수는, 목수들이 쓰는 대패를 꺼내 퍼져있는 엿의 표면을 슥슥 깎아낸다. 당기는 족족 대팻날 구멍 사이로 얇게 저며진 종잇장 같은 엿이 미어져 나온다. 꾸역꾸역 밀려 나온 엿을 주섬주섬 대충 모아놓고 그 가운데를 이쑤시개로 쿡 찔러 손잡이를 만들어 준다.

   얇게 깎아낸 엿이라 부드럽고 먹기는 편한데 양이 감질났다. 그래서 덩어리로 잘라서 팔기도 한다. 이번에는 대팻날을 끌 삼아 엿판 가장자리에 비스듬히 대고 망치로 톡톡 치면 적당한 두께로 툭툭 떨어지면서 엿 조각이 잘려 나온다. 손가락만 한 엿 조각 하나를 물면, 쭉쭉 늘어지면서 찐덕찐덕 입안에 꽤 오래 남아있었다. 게다가 엿 안에 땅콩이 드문드문 박혀있어서 가끔 씹히면, 고소하게 부서지는 땅콩의 식감과 질척한 엿의 단맛이 서로 어울려 기가 막혔다. 

   자루엿은 아예 처음부터 먹기 좋게 막대기 모양으로 엿가락을 굳혀서 적당한 크기로 잘려서 나온다. 길이는 대략 20cm를 넘지 않는데, 호박엿과는 색깔부터 다르다. 하얗다. 옅은 미색 같기도 하지만 서로 붙지 말라고 밀가루를 묻혀놓기 때문에 더 하얗다. 이 엿을 뭐라고 불렀는지 기억은 희미한데, 항상 엿치기를 했다. 엿가락 중간을 뚝 부러뜨려 단면에 나타난 구멍 중에서 그 크기가 제일 큰 놈을 서로 견주어 구멍이 조금이라도 크면 이기는 거다. 진 애는 이긴 애의 엿 값까지 무는 걸로 진 값을 한다.

   우선 엿을 잘 골라야 한다. 엿가락 외관에 잡힌 주름이 굵고 불규칙한 놈을 부러뜨리면 단면에 생기는 구멍이 대체로 크다. 또 얌전히 부러뜨리면 안 되고, 슬쩍 비틀어 부러뜨려서 구멍의 단면이 반듯하게 나오지 않고 빗겨 잘리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드러난 구멍이 타원 모양이 돼서, 언뜻 보면 커 보이므로 우겨볼 만했기 때문이다. 단 게 귀했던 시절, 엿은 호사였다.


#미아리의추억 #호박엿 #엿치기 

류해윤_초가집_종이에 아크릴릭_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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