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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Feb 02. 2023

라면땅과 자야

   뭐니 뭐니 해도 애들이 가게에서 가장 자주 사 먹었던 과자는 단연 ‘라면땅’이었다. 값도 한 봉지 10원이었다. 라면을 튀겨서 잘게 부쉈는지, 라면 만들다가 부서진 것들을 모아다가 튀겼는지가 궁금했었는데, 여기에 약간의 감미를 해서 손바닥만 한 봉투에 담아 팔았다. 무척 고소한 과자였다. 나중에는 별사탕을 몇 개 넣은 것도 팔았는데, 씹을 때 퍽퍽하지 않고 달콤해서 좋았다. 아무튼 당시 애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던 과자였다. 밥은 안 먹어도 라면땅은 먹어야 할 정도였으며, 골목에 애들이 모이면 너도나도 라면땅 봉지를 들고 있었다. 

   라면땅이 히트를 치자 황금박쥐, 아톰, 타이거마스크 같은 유명한 만화영화 캐릭터가 라면땅 포장지에 나타났다. 아마도 과자회사들이 과자 이름과 포장을 달리해서 경쟁적으로 유사품을 만들어 팔던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뽀빠이’가 제일 유명했다. 

   라면땅이 처음 나올 때는 봉지가 크진 않아도 불룩했는데, 갈수록 홀쭉해진다고 투덜대기도 했다. 그러자 때 마침 ‘자야’가 나왔는데, 라면땅보다 면발이 조금 더 가늘고, 좀 길쭉한 봉지에 양도 2배 가까이 많이 담겨있었다. 물론 비쌌다. 라면땅이 10원 할 때 자야는 20원으로 2배였다. 당시 유행하던 가요의 가사에 라면땅과 자야를 바꿔 넣은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을 정도로 인기 만점이었다. 

   “뽀빠이를 알고부터 뽀빠이를 알고부터 라면땅을 알았습니다.

   라면땅을 알고부터 라면땅을 알고부터 자야를 알았습니다~”

   라면땅을 얼마나 좋아했으면 이런 노래를 다 불렀을까 싶다.      


   언젠가 라면땅 과자가 북한의 남침 음모와 관련되어 있다는 무시무시한 루머가 돌았다. 바로 그 라면땅 봉지에 해군 복장을 한 뽀빠이가 그려져 있었는데, 주먹을 불끈 쥐고 있는 모습이 남침야욕을 나타내고 팔뚝에 그려진 문양이 소련을 상징한다는 것이었다. 더욱이 뽀빠이가 매고 있는 머플러인지 넥타인지가 화살표 모양을 하고는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북한의 남침 의도, 아니 틀림없는 남침계획을 나타내는 암호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그 과자를 만든 회사 이름이 ‘덕산’인데, 글쎄 덕산이 북한에 있는 어떤 곳의 지명이라며, 이게 바로 북한의 남침음모를 나타내는 꼼짝없는 증거라고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웃픈’ 이야기지만, 당시 우리 애들 사이에서는 꽤나 심각하게 떠돌던 이야기였다. 그도 그럴 것이 국민학교 3학년에 불과했던 이승복 어린이가 북한의 무장공비들에게 무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순간에도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쳤음을 기리던 때였으니 말이다.

   그때 선생님들은 우리 또래였던 승복이를 본받아야 한다고 했고, 교과서에도 승복이 이야기가 나왔다. 해마다 6월이 되면, 6.25를 기념하여 반공(反共), 방첩(防諜) 포스터와 표어를 공모해서 상을 주었고, 이승복 어린이의 투철한 반공정신을 기리는 웅변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6.25주간에는 교실이나 학교 곳곳에 “신고하여 부자되고 자수하여 광명찾자” ‘무찌르자 공산당’, ‘공산당은 싫어요’ 같은 표어들이 붙어있었다. 하기야 그때는 학교만이 아니라 동네 골목골목 담벼락이나 전봇대 같은 곳에, ‘자연보호’ ‘산불 조심’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딸 아들 구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이런 표어들과 함께 붙어있었다. 

   또 전교생이 ‘반공방첩’이라는 글자가 써진 리본을 가슴에 달고 다녔는데, 안 달면 교문에서 주번 형들에게 걸려서 혼나기도 했다. 그래서 문방구에 가서 사서 달고서야 교문을 통과할 수 있었다. 나중에는 반공이 ‘승공’(勝共)으로 바뀌더니 ‘멸공’(滅共)으로 되었다. 

   이런 시절이었으니, 애들 먹는 과자 하나 가지고도 간첩소동이 벌어지곤 했던 거다. 그래도 라면땅은 진심으로 맛있었다. 


#미아리의추억 #주전부리 #라면땅 #뽀빠이 #자야 #이승복

류해윤_6.25동란에 피난민덜_종이에 아크릴릭_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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