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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창복 Feb 02. 2023

주전부리 세대교체

   쌀이 주식인 나라답게 주전부리 역시 쌀로 만든 것들이 많다. 이른바 병과(餠菓)는 떡과 과자를 말하는 것으로, 떡은 대표급 주전부리다. 아기가 태어나면 삼칠일과 백일에 하얀 백설기를 쪄 돌렸고, 돌에는 수수팥떡을 나누어 먹었다. 명절에도 떡이 빠지지 않았다. 설에는 가래떡을 뽑아 떡국을 끓였고, 삼월 삼짇날에는 진달래화전을 지져 먹었다. 단오에는 쑥떡을 했고, 동짓날에는 동그란 찹쌀 새알이 들어간 팥죽을 끓여 먹었다.

   과자라면 역시 쌀을 튀긴 튀밥이 많았고, 달콤한 조청에 버무려 입에 넣기 좋게 조각낸 튀밥강정이 최고였다. 고구마, 곶감, 대추 등 과일이나 고구마, 감자, 콩,  옥수수 등의 구황작물(救荒作物)을 쟁여두고 먹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도시에서 살기 바쁜 사람들에게는 그저 언감생심이었다. 시골처럼 텃밭이나 들에 나간다고 있는 것도 아니라, 다 돈을 주고 사 먹어야 하니 말이다. 게다가 쌀이 귀해서 국가가 나서서 10년도 넘게 혼분식을 장려했으니, 더더욱 쌀로 주전부리 거리를 장만하는 일은 있는 집 말고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혼분식 장려의 흐름을 타고 원조로 흔해진 밀가루를 이용한 빵이나 과자가 대세를 잡아갔다. 이렇게 주전부리는 쌀로 만드는 떡과 한과에서 밀가루로 만드는 빵과 과자로 빠르게 대체되어갔다.     


   음료라면 단연 숭늉을 꼽아야겠으나, 어른들이나 구수하네 시원하네 했지, 나는 그게 왜 구수하고 시원한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밥 퍼내고 눌어붙은 누룽지 위에 물 부어 끓이는 게 도무지 별스러워 보일 리 없었다. 그래도 명색이 음료라고 부르려면 일단 단맛이 나야 하므로 식혜와 수정과 정도는 되어야 했다. 밥알이 동동 뜨는 식혜는 달콤해서 단술이라고도 불렀다. 보드랍기는 하지만 씹을 때 그 푸석한 밥알의 식감이 단맛을 방해해서 싫었다. 그릇에 입을 대고 후후 불어 가며 마셨다. 마지막까지 밥알은 그릇 한구석에 밀어내 국물만 찧어 마셨다. 수정과는 쌉싸름하면서도 달콤한 계피의 향과 맛이 아주 색달랐다. 가끔 물러진 곶감이 들어가 있기도 한데, 이건 잔치 때나 되어야 먹어볼 수 있었다. 단술만 해도 집에 할아버지나 할머니 정도는 오셔야 맛볼 수 있었다.

   어느 날 가게슈퍼에 커다란 냉장고가 들어오고 그 안에 사이다니 콜라니 하는  병에 든 음료수로 꽉 채워졌다. 냉장고 안에서 차갑게 시아시된 음료수병을 꺼내 마개를 뻥 따서 마시면 몸이 다 얼어붙을 것처럼 차가왔다. 게다가 코에서 머리 속까지 찌릿해지는 탄산의 자극은 그야말로 사건이었다. 집집이 냉장고를 가지고 있던 시절이 아니어서, 가게슈퍼 냉장고가 주는 차가운 냉기와 탄산의 짜릿함이 어우러진 ‘사 먹는’ 음료의 매력은 한번 맛을 본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집에서 만들어 먹던 음료 역시 빠르게 공산품 병 음료로 대체되어 갔다.      


   뽑기와 달고나, 번데기와 소라, 떡꼬치처럼 공산품으로 제조하기가 어렵거나 번거로운 주전부리들만, 그나마 불량식품의 딱지 아래였지만 학교 앞과 골목에서 버텨내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못했다. 해태, 롯데, 동양 등 3대 제과회사가 승승장구를 하면서 슈퍼에서 파는 과자의 종류를 다 외우지도 못할 정도로 다양하게 쏟아내자, 이들 불량식품들도 어느 순간 모조리 자취를 감춰버렸다. 주전부리는 이제 순전히 사 먹을 수 있는 돈, 용돈의 문제로 되어버렸다. 


* 일본말인데, 바른말은 히야시(ひやし)다. 차게 한다는 뜻이다.


#미아리의추억 #주전부리 #혼분식장려 #병과 #숭늉 #식혜 #수정과 

류해윤_조선시대에 진사댁 혼례잔치_종이에 아크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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