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창복 Feb 02. 2023

목욕탕 참사

   “아니, 다 큰 남자애를 여탕에 데리고 오면 어떡해욧?”

   내 나이 여덟 살 어느 날, 치욕의 사달이 벌어지고 말았다. 엄마 따라간 목욕탕에서 우리 반 여자애를 마주쳐버렸다. 


   국민학교 입학하고 얼마 되지 않았던 때였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목욕탕을 가는 엄마를 따라 그날도 여느 때처럼 따라나섰다. 사실 엄마와 함께 목욕탕을 가는 걸 좋아할 리는 없었다. 축축한 탕 안에 들어가는 것도 답답했지만, 거의 한 껍데기를 벗겨내고서야 풀어주는 엄마의 때밀이가 너무 아프고 싫었기 때문이다.

   탕에 들어서자마자 엄마는, 내가 “앗 뜨거” 폴짝폴짝 촐랑대거나 말거나, 내 몸에 탕에서 떠낸 물 한두 바가지를 붓고는 바로 나를 안고 탕 안으로 빠져들어 간다. 처음에는 델 것처럼 뜨겁지만 잠시만 있으며 괜찮아졌다. 엄마가 나를 껴안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했다. 때가 좀 불었다 싶으면 나를 탕에서 꺼내 본격적으로 때를 밀었다. 얼마나 박박 미는지 비명을 질러도 괜찮다며 계속 밀어댔다. 이러다가 살 껍질이 벗겨지고 말 것 같았다. 다 밀고 나서도 한참이나 살이 벌겠다.

   그래도 이건 참을 만했다. 때를 다 밀고 나면 머리를 감기는데, 그때가 최악이었다. 일단 나를 얼굴이 위로 향하게 뒤집어서 무릎에 눕힌다. 그리고 엄마 허벅지와 배 사이에 나를 꼭 끼워 넣고 힘을 준다. 목욕탕 천장에 무수한 물방울이 맺혀 있다가 떨어지는 게 보인다. 곧 머리 위로 물세례가 떨어진다. 물이 떨어지는 순간 기겁을 한다. 두어 번 물을 끼얹고 나면 비누를 머리에 비벼 거품을 낸다. 이때는 눈을 필사적으로 감아야 한다. 비눗물이 눈에 들어가면 눈에 불이 나도록 따갑다. 뒤집혀서 완전 무방비로 꼼짝 못 하는 그 자세가 그렇게 불안하고 무서울 수가 없었다. 아마도 물고문 받을 때 이런 비슷한 공포 아닐까 싶다. 그나마 목욕 마치고 사주는 우유가 아니었더라면 견디기 어려웠다.

   엄마는 나를 다 씻겨 탕 밖으로 내보내고 나서부터 엄마 목욕을 시작했다. 먼저 옷을 갈아입고 우유를 먹으며 엄마 목욕 끝나기를 기다렸다. 엄마 목욕은 한참을 기다려야 끝이 났다. 목욕이 끝나도 속옷이나 수건들을 빨아서 가져간 세숫대야에 수북하게 담아 나왔다. 목욕탕에는 나보다 어린 너덧 살 정도의 애들로 복작거렸다. 엄마들이 덤으로 애를 씻길 수 있으니, 웬만하면 다 데리고 왔다. 꼬맹이들은 일단 엄마 손에 풀려나면 덥고 숨도 잘 쉬기 어려운 탕을 빠져나와 옷장 앞에서 엄마가 나올 때까지 지들끼리 장난치며 놀았다. 그러다가 할머니나 살찐 아줌마들 때를 밀어주느라 들락거리는 아줌마한테 야단을 맞기도 했다.     

   마침 엄마가 나오고, 엄마가 옷 다 입을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때 우리 반 여자애가 목욕탕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눈이 마주친 나는 아는 애라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척을 하려는데, 그 애는 소리를 지르고 기겁하며 뒤따라 들어온 자기 엄마 뒤로 숨어버렸다. 그 애의 예기치 않은 행동에 놀라서 나는 그저 멀뚱하게 서있을 수밖에 없었다. 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그 애 엄마는 금방 상황을 알아차리고는 나를 노려보았다.

   “얘, 너 지금 몇 살인데 여길 와~ 너 여기 오면 고추 떨어져.”

   혼내는 건지 놀리는 건지 애매한 그 애 엄마의 말투에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어버리고 싶을 만큼 창피했다. 엄마 따라 목욕탕 오는 게 싫긴 했지만, 그게 그렇게까지 잘못된 거라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애도 기겁을 하고 그 애 엄마는 애꿎은 ‘고추’까지 들먹이는 상황이 되어서야 별안간 그 심각성을 깨달았다. 옷 입다 말고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엄마는, 그 애 엄마에게 겸연쩍게 웃으며 앞으로는 데려오지 않을 거라고 말했다.

   그때 이후로 다시는 엄마 따라 목욕탕에 가지 않았다. 여탕과는 영원히 발을 끊었다. 덕분에 엄마의 때밀이를 당하지 않아도 되었고, 무엇보다 그 공포의 머리 감기에서도 놓여나게 되었다. 그래도 그때 그 여자애를 탕 안에서 만난 게 아니고, 옷을 갈아입는 휴게공간에서 마주쳐 서로 알몸을 들킨 것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랐다. 그야말로 불행 중 다행이었다.

   그 사건이 있고 난 뒤론 나는 어엿하게 남탕을 드나들며 남자가 되어갔다. 애들 때나 가는 여탕이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내 뇌리에서 싹 사라져버렸다. 아니, 지워버렸다. 엄마 대신 세탁소 기술자 아저씨와 작은형이 목욕탕 파트너가 되었다.       


#미아리의추억 #국민학교  #목욕탕 #여탕 #때밀이

류해윤_대나무와 연못(竹淵)_종이에 아크릴릭_79*108.5cm_2007


작가의 이전글 주전부리 세대교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