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스 게임.
몇 달 전 한참 유행했던 밸런스 게임. 온갖 매체에서 전부 이 게임 이야기뿐이라 웃긴 질문이 있을 때 엄마한테도 몇 번 물어봤었다. 예를 들어 똥맛카레 먹기 vs카레맛 똥 먹기. 하나 둘 셋! 하면 엄마는 짜증부터 내셨다. 이런 걸 대체 왜 하냐고. 간단히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보니 고민은 꽤 길어졌다. 이런 형태의 질문 자체를 싫어하시지만 결국엔 답을 고르긴 하신다. 똥을 먹는 것보다는 똥맛이어도 카레를 먹는 게 낫지 않겠냐면서.
툴툴 대시지만 결국엔 답을 고르는 이런 문제와 달리 몇 번을 물어도 답을 피한 문제도 있었다.
저번 글에 올린 사진과 같이 어렸을 때 나는 꽤 머리숱이 많았다. 여자애인데 왜 짧게 잘라 놓았냐고 물으니 두피에 자꾸 뭔가 생기길래 짧은 단발로 해줬다고 한다. 그런데 반곱슬에 숱 많음이 겹쳐 위로 치솟은 머리가 됐다는 후문. 그렇게 풍성한 시절이 있었지만 그 시절은 참 짧았다. 중 고등학교에 진학한 이후로 스트레스 때문이지 머리카락이 점점 가늘어졌다. 설상가상 모근의 힘이 약해져 잘 뽑히는 바람에 정수리가 허옇게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살 빼겠다고 새 모이만큼씩 먹어서 영양 불균형 온 거면 억울하지라도 않지.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아니고. (너무 제멋대로 먹어서도 숱이 사라질 수가 있나?) 대학생 때는 빈 정수리가 휑한 게 신경 쓰여서 버스 뒷자리를 사수하곤 했었다.
반면, 우리 엄마는 머리숱이 정말 많다. 나와는 달리 머리카락이 빽빽해서 두피가 안 보일 정도다. 예를 들어 나는 머리끈을 세 번을 돌려 묶어야 안정감이 있는데 엄마는 두 번 돌리면 충분하다. 하. 세상 불공평해. 머리 때문에 스트레스받을 때마다 엄마를 흔들면서 매달렸다. 내가 딸인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아빠가 숱이 없다고 쳐도 한 명만 닮을게 아니라 섞어서 낳아줬으면 좀 좋냐고.
밸런스 게임을 안게 된 후로는 엄마한테 질문을 했다.
"엄마. 엄마 머리에서 동그랗게 머리를 뽑아서 나한테 심어 줄 수 있어. 그런데 조건이 땜빵을 절대 가릴 수가 없는 거야. 심어준다 vs 그냥 지금처럼 나만 머리숱 없이 살기. 뭐 선택할 거야?"
"......."
"응? 뭐 선택할 거예요?"
엄마는 처음엔 대답을 안 하셨고 다음에 물을 땐 소리를 지르셨다. 왜 가릴 수가 없느냐고. 그러고는 화제를 돌리셨다. 몇 번을 물어도 대답을 안 해주시길래 생각이 날 때마다 다시 물었다. 아니 엄마가 이렇게 낳아놨으니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건데, 땜빵 좀 생기고 나한테 심어줄 수 있는데 그걸 못해주냐고.
결국 그냥 없는 채로 살라고 하셨다. 본인도 사회적 체면이 있으니 땜빵 보인채로 살 수 없다고.
아니 엄마 그냥 주겠다고 말해도 누가 엄마 머리카락 뽑으러 안 온다고요. 땜빵 안 생기다고요.
배신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