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만나다.

- 어둠을 딛고 다시 서다 -

by 세우는

이 땅에 온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어린 시절임에도 이 땅은 늘 낯설게만 느껴졌다. 밤마다 잠자리에 들어도 도무지 잠이 오지 않았다. ‘나는 왜 이곳에 있을까? 누가 보낸 걸까? 왜 태어난 걸까?’ 끝없이 되뇌며 잠 못 이루던 밤이 이어졌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보잘것없는 아이였다.




일곱 살 무렵, 입학 통지서가 날아왔다. 엄마의 계획은 1년간 유치원에 다닌 뒤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는 것이었다.


나는 상상놀이를 좋아했고, 책 읽기를 즐기는 아이였다. 머릿속에는 언제나 끝없는 상상의 세계가 펼쳐졌다. 이야기를 지어 대본 삼아 연기하고, 어른들과 나누는 대화 또한 즐거웠다. 말을 곧잘 해서인지, 어른들은 나를 ‘촉새’라 불렀다. 어린아이에게 붙은 별명이지만, 그 안에는 귀엽지만 수다스러운 내 성격이 담겨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변 어른들이 엄마에게 우려 섞인 말을 건넸다. “유치원에 보내면 애가 어른들 머리 꼭대기에 앉을 거야.” 그 한마디에 엄마는 유치원 입학을 포기했다. 그리하여 나는 타의로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계획에 없던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마주한 엄마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생일이 빠르고, 말도 잘하며, 키도 남들보다 큰 나였다. 엄마는 ‘학교에 가도 곧잘 적응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빠른 결정을 내렸다. 그렇게 유치원 한 번 다녀보지 못한 나는 곧장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엄마의 기대가 무너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공동체 생활의 경험이 전무했던 내게 학교는 그야말로 공포의 공간이었다. 낯선 교실, 낯선 얼굴, 낯선 규칙들. 모든 것이 두렵고, 매 순간이 낯설었다. 가만히 앉아 있질 못했고, 엄마가 보고 싶어 울기만 했다. 수업 내용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연세 많으신 담임 선생님은 할머니 품처럼 따스하지 않았다. 그분에게 나는 그저 다루기 힘든 아이, 문제아이자 피곤한 부적응아로만 보였을 것이다. 품어주기보다 훈계가 먼저였고, 그 사이 나는 점점 작아져 갔다.


선생님의 질책은 곧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바뀌었다. 입학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엄마는 학교로 불려 갔다. ‘부적응아, 학습부진아, 아무도 놀고 싶어 하지 않는 아이.’ 그 낙인은 내 이름처럼 따라다녔다. 부모님의 시선도, 기대도 식었다. 나를 향한 사랑과 관심의 온도는 점점 싸늘해졌다.


마냥 어리기만 했던 그 시절, 타인의 시선은 곧 나의 존재 가치라 여겼다. 자존감도, 자신감도, 스스로를 믿는 힘도 사라졌다. 그렇게 아무도 기대하지 않는 인생, 스스로도 기대하지 않는 삶이 시작되었다.




나는 스스로 무가치한 존재라 여겼다. 세상과 사람들, 그리고 가족에게조차 나는 불행의 씨앗처럼 느껴졌다. 매일 밤,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라며 수많은 날을 보내며 잠자리에 들곤 했다. 이 낯선 곳에서 언제까지 살아야 할지, 막막함과 무력감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텼다. 학교에서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은 ‘눈을 감는 것’뿐이었다. 졸리지 않아도, 외로움과 고독을 견디기 위해 그저 눈을 감았다. 알아듣지 못하는 수업 속에서, 바보 같은 나를 들키지 않기 위해 잠든 척했다.




나는 그렇게 열다섯이 되었다. 인생의 시계는 여전히 느리게 흘렀다. 중학교를 마치고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다. 남은 3년은 또 어떻게 버텨야 할까. 막막함과 두려움이 나를 삼켰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게 빛이 찾아왔다.


엄마를 따라나선 3박 4일의 수련회. 그곳에서 나는 거부할 수 없는 빛을 만났다. 어둠의 장막 속에 갇혀 있던 내게 한 줄기 빛이 스며들었다. 그 순간, 오래도록 쌓여 있던 고통과 외로움, 억울함과 절망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몸의 수문이 열리듯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온몸이 기억하고 있던 시간들이 눈물과 함께 흘러내렸다. 땀과 눈물이 뒤섞여 흐르던 그 긴 시간, 나는 마침내 내 안의 모든 슬픔과 비통을 쏟아내듯 울고 또 울었다.


다시 살아야 할 이유를 만났다. 아무도 없던 인생, 아무것도 할 수 없던 나를 한 줄기 따스한 손길이 감싸 안았다. 그제야 알았다. 그 빛은 언제나 내 곁에 있었다는 것을. 다만 너무 깊은 절망 속에 갇혀 그 빛을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차디찬 현실 속에 얼어붙어 그 온기를 느끼지 못했을 뿐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시 살아나듯, 희망의 온기가 내 온몸과 영혼을 감쌌다. 눈이 부시도록 환한 그 빛은 내 안의 모든 어둠을 조용히 물러가게 했다.




세상적으로 화려하지도, 유명하지도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유능하지도, 많은 것을 소유하지도 않았다. 성품적으로도 인내도 사랑도 여전히 한없이 부족하다. 그렇게 나는 지금도 부족하고, 실수와 실패를 반복하며 살아간다. 그래도 괜찮다. 이제는 더 이상 무언가의 성과나 결과로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내 존재 자체로 이미 존귀하고, 보배로운 가치의 사람이라 불림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어찌 한낱 인간이 완전과 완벽을 이룰 수 있겠는가. 완성의 기준이란 결국 각자가 정한 주관일 뿐. 나는 끝까지 내 힘으로 완성형 인간을 구현해 낼 자신이 없다. 다만 오늘도 넘어지고 또 넘어지더라도, 한 번 더 이해하고, 용서를 구하고 또 용서받으며, 그렇게 사랑하며 내게 주어진 삶을 최선의 성실로 살아가려 할 뿐이다.




삶의 마지막이 언제일지 알 수 없다.

다만 그 부르심의 날까지, 하늘의 빛을 받아 나 자신을 사랑하고, 곁에 있는 이들을 품으며 살고 싶다.


다시 눈을 감는다. 내일의 시간은 더 이상 어둠이 아니다. 희망의 빛과 함께 오늘을 살고, 그 빛을 따라 내일을 연다. 나는 더 이상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내 안에 이미, 그 영원한 빛이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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