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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수 Oct 30. 2023

[전세지옥 B컷]그녀를 떠나오며

오늘 체헐리즘(체험+저널리즘)으로 유명한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님과 '전세지옥'관련 인터뷰 시간을 가졌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된 인터뷰 동안 세 번 눈시울이 붉어졌는데 그중 옛 연인에 대해 조금 이야기해보고 싶다.

'전세지옥' 100p에는 이런 글이 있다.

우리는 해외 취업 프로그램에서 만났고, 헝가리에 간지 3일 만에 인연이 되었다. 일 년 넘는 시간을 함께하며 막연하였지만, 함께 유럽에서의 동화 같은 미래를 그려보기도 하였다. 


하지만 한국 전셋집의 경매 상황이 좋지 않게 흘러갔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에 돌아가겠다고 그녀에게 이야기하였다. 물론 그녀에게는 내 꿈인 파일럿이 되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정성이 담긴 요리를 자주 해주었는데, 하루는 밥을 먹으며 이제 내가 가면 누가 요리를 해주냐며 울먹였다.


나는 사랑했던 그녀를 헝가리에 놓고 돌아왔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아직 경매 상황이 모호했다. 

정말 잘 풀려 전세금을 전부 돌려받는다면 조종사 훈련을 시작할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경매는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고, 2차 경매까지 낙찰자가 한 명도 없었다. 

이미 내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하였고, 나는 그녀에게 전화로 이별을 통보하였다.


아직도 그녀는 어떤 이유로 우리가 헤어졌는지 모를 것이다. 그냥 나만 나쁜 놈이면 된다. 그녀가 상처를 받을 필요는 없다. 멀리서 그녀가 행복하길 기도한다.


아래는 편집장님께 잘린 원고이다. 전세사기와 전혀 연관성이 없었기에 잘릴 만했다.

그녀와 함께 해서 가장 행복한 날들 중 하루였다. 오늘 밤은 그녀가 너무 보고 싶다...



제목은 '강 건너 그녀가 있는 곳까지 수영을 했다.' 


22년, 검붉은 체리가 맛있게 익은 헝가리의 여름이었다. 회사 복지로 일과 관련되지 않더라도 노력과 성과가 있으면 작은 상금을 주는 복지가 있었다. 참고 버티는 근성만큼은 자신 있어 이전에도 수영, 철인 등의 대회에 참가한 경험이 있었다. 지금껏 돈을 내고 대회에 참여를 했는데, 완주만 하면 상금을 준다고? 신인 프로 선수가 된 것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수영 대회에 참가하였다.


수영 대회는 발라톤 호수를 북쪽에서 남쪽까지 5.3km를 종단하는 코스이다. 발라톤 호수는 면적 596km2, 길이 80km의 중부유럽에서 가장 큰 호수로, 헝가리 사람들은 ‘헝가리의 바다’라고 일컫는다.


21년 크리스마스를 여자친구와 발라톤 호숫가에서 함께 했는데 드넓은 강을 바라보며 '난 저기를 헤엄쳐서 건널 수 있을 만큼 수영을 잘해'라고 말했더니 여자친구가 웃으며 자기는 사실 날개를 숨기고 있는 백조여서 내가 싫어지면 하늘로 날아가버릴 거라 대답했다.


경기 당일, 중부유럽의 여름 햇빛에 체리의 높은 당도가 이해 가는 뜨거운 날씨였다. 결승점이 있는 남쪽 항구에서 경기를 시작하는 북쪽 항구까지는 배를 타고 올라간다. 남쪽 항구에서 그녀와 인사를 하는데 헤어지는 수 시간이 너무 아득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내게 조심하라 했다. 나는 그녀에게 남쪽 항구 앞의 카페에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켜 마시고 있으면 얼음이 다 녹기 전에 오겠다고 대답했다.


북쪽 항구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물속에 다이빙하는 순간 내 생각과는 다른 물의 온도가 나를 감싼다. 시원한 정도로 1~2도만 더 따듯하면 좋겠다 생각했지만 이내 내 몸이 뜨거워져 완벽한 온도의 강물이 나를 감쌌다. 완벽한 컨디션이었다. 호흡은 아주 잘되어 산소가 폐 끝까지 잘 전달되었고 6비트 킥은 실크처럼 부드러웠다. 손은 물의 저항에 싸운다는 느낌보다는 악수하는 것처럼 아주 잘 잡아나갔다. 직장 상사에 대한 스트레스 덕분에 분노의 질주를 할 수 있었다. 잠을 잘못자 목이 아파 걱정이었는데 물속에 들어가니 부력 때문에 오히려 편해졌다. 가끔씩 있는 다른 선수와의 몸싸움 마저 내겐 즐거움이었다. 일반 수영장의 왕복 길이가 50m인데 5.3km는 일반 수영장 106번 왕복, 212번 편도의 거리이다. 마침 50m마다 배가 있어 5.3km를 간다기보다는 한바뀌씩만 계속 수영장을 돈다는 생각을 했다. 수영을 어느 정도만 하면, 몸에 힘을 빼고 지상에서 걷는 것처럼 쉽게 수영을 이어나갈 수 있다.


수영이 너무 잘 되다 보면 정신이 다른 세계로 갈 때가 있다. 2015년 중국 연태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했었는데 그곳은 학교 동문에서부터 무호흡으로도 바닷가까지 갈 수 있을 만큼 서해가 가까웠다. 그 당시 교환학생을 오기 전 짝사랑하는 친구가 있었다. 거절도 안 당했는데 혼자 실패해 놓고는 중국으로 떠나는 날 인천공항에서 목소리가 듣고 싶어 공중전화로 전화를 건 다음 '여보세요' 한마디를 듣고 끊었다. 연락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기만 했었는데 서해바다를 보며 짝사랑을 했던 친구가 사귀어 준다면 저기도 헤엄쳐갈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2022년 헝가리에서는 오로지 나를 기다려주는 이가 결승점에 있었다. 여섯 살 연하의 영국식 억양의 영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할 줄 아는 보조개가 있는 그녀가 나만을 위해 기다린다. 이런 로맨틱한 상황이 현실이 되니 몸이 각성되기 시작하고 심장에서 피를 마구마구 펌핑해 준다. 터질 거 같지만 심장은 그리 쉽게 터지지 않는다. 중간에 한 번쯤은 쉬면서 보급도 받아보고 있지만, 그녀가 시킨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이 다 녹아버릴 거 같아 난 쉬지 않고 계속 헤엄쳤다. 4km쯤 갔을 때 결승점이 보였고 러너스 하이가 왔다. 엔도르핀이 분비되고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 아니 고통이 즐거워진다. 내 신체적 한계에 다다르니 죽을 거 같고 좋다. 그렇게 러너스 하이가 끝나기 전 다리에 경련기가 올 때 즈음 뭍에 발이 닿았다. 결승전 50m 전부터는 뻘같은 느낌의 기분 좋은 진흙을 밟으며 들어갔다.


결승점에서 나를 기다리는 그녀를 만났고 더웠던 그녀와 추웠던 나는 포옹을 해서 서로의 온도를 맞춰주었다. 기다리는 동안 아이스 아메리카노의 얼음은 다 녹아버렸고 맥주도 한 잔 마셨다고 했다. 그녀와 함께 강을 바라보며 이젠 내가 크리스마스때 한 말을 믿어줄 수 있냐고 물어봤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그녀가 크리스마스에 답한 말처럼 백조도 아니었고 내가 싫어져서 날아간 것도 아니지만, 나는 23년 초 겨울의 끝자락에 한국으로 날아갔고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수영대회도 끝이 있듯이 우리의 사랑도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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