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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수 Mar 13. 2024

국회의원 후보가 되시겠어요?(하)

국회를 빠져나와 국회의사당역에서 9호선을 타고 신논현역으로 갔다. 용인 집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 강남대로를 걷는데 그곳은 내 머릿속 만큼이나 복잡했다.


오늘 받은 제의는 내게 독이 든 성배처럼 느껴졌다. 성배를 받아마시고 독을 버티지 못하면 내 인생도 꿈도 망가지리라.


버스를 타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10차선 도로는 수많은 인터체인지가 있었다. 그곳에서 어느 방향을 선택하는지에따라 나는 전혀 다른 곳으로 도착할 것이다.


당의 제안에 나는 완전한 거절도 승낙도 하지 않았다. 배는 도중에 내릴 수 있으니 책의 진정성을 위해 일단 타야한다고말했다. 배 위에서 제의를 기다릴 것이라 했다.(지금 생각하니 많이 건방졌다.)

물론 당에서도 나를 검증하고 싶어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난 국회의원 후보의 후보였다.


내 적극적인 의지 표명이나 당의 확실한 제안 없이 시간은 흘러갔다. 배를 타기 전 부산에서 열리는 전세사기 대책 회의에서 내게 모두발언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분명 내 시험 무대였을 것이다.


당의 시험과 상관 없이 나는 피해자들을 위해 이를 갈아가며 그 어느때보다 열심히 스피치를 준비하였는데, 대책회의가 승선일 이후로 연기되었다.


연락을 기다리라는 말만 듣고 기약없이 승선하였다. 승선 후에도 배트맨에게 종종 연락이 왔다. 배에서 영상 편지를 찍어 부산에서 열린 전세사기 대책회의에 사용하기도 했고, 정책제안서를 요청받기도 했다.



배에서의 생활은 상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휴일도 없이 매일 10시간의 육체 노동을 하는 것은 두툼한 월급을 받으며 빛나는 미래를 상상하면 문제될게 없었다.

다만, 일을 마치고 방에 누워 각각 1500명의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있는 두 개의 오픈채팅방을 훑으며 그들의 절규를 방관만 하는게 너무 힘들었다.


내가 배에 있는 동안 민주당(+정의당)은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주었으며, 야당과 정부의 견제를 뚫고(총선 앞이라 반대는하지 않고 불참만 할 뿐이다.) 전세피해대책 구제책 개정안을 힘겹게 진행시켜 나가고 있었다.

그 과정은 자전거 페달을 한쪽 발로만 밟아 나아가는 것 처럼 느리고 힘겹워 보였다.


인도양을 밟고 서 있는 원양상선 속에서 독을 품은 두꺼비처럼 분노에 차있던 나는 구제책 개정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의 의지를 누구보다 잘 짊어나갈 자신이 있었다.


그때부터 노골적으로 배트맨을 통해 당에 출산율 관련 정책 제안서를 내보기도 했고, 한겨레 신문에 칼럼을 투고하며 내 의지를 간접적으로 보였다.


하지만, 배트맨의 관심과 연락 빈도는 줄어갔다. 카카오톡 채팅방에서 그의 회색 말풍선보다 내 노란색 말풍선의 비중이 커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로부터 배를 갈아타야 하니 육지에서 10일 정도 대기하라는 지시가 왔다. 나는 이 기회를 운명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당에 직접적으로 나를 받아들여달라고 할 계획이었다. 배 타기 전에 불쌍한 표정을 짓고 피해자들의 슬픔을 알렸다면, 이번에는 인상을 찌푸리고 화를 내며 이야기 하기 위해 다섯 개 정도의 대본을 짰었다.


대본의 핵심은 이 두가지였다.

정부와 여당은 나쁘다.

지지하는 당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재난은 올 수 있다. 재난을 당한 국민의 목소리를 들어주는건 민주당이다.


하선 후 후보지원서를 작성하여 당에 제출하였지만 아무 답이 없었다. 박찬대 의원의 명함에 적혀있는 메일로 연락을 해보니, 배트맨에게서 다음 기회를 기약하라는 언질을 받았다.


그제서야 원양을 향해 떠나간 배는 나를 실으러 돌아오지 않을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기회를 걷어차 버린 것을 나는 지금은 후회하지 않는다.(뻥이다. 미치도록 후회중이다. 구제책과 전셋법 개정을 직접적으로 도와보고 싶었다. 정말로…)


이번에 임명될 국회의원들이 임기를 마칠 사년 후 나는 국회의원보다 더 멋있어지도록 열심히 살아야지.

이제부터 내 집은 국회도 용인도 아닌 태평양이다. 마음 다잡고 이곳에서 높은 뜻을 세워야지. 내 이름 최지수(높을崔뜻志물洙)처럼.


Ps. 1

배의 식당 앞 게시판에 선상 투표 참여 의사를 묻는 종이가 게제되어 한 번 적어봤다.


Ps. 2

민주당과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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