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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수 Mar 12. 2024

국회의원 후보가 되시겠어요?(상)


원양상선을 타고 바다에 나온지 겨우 백 일이 되었는데, 벌써 육지에서의 삶은 마치 전생 혹은 꿈처럼 느껴진다. 지금부터의 이야기는 작년 11월 초의 일이다.


전세사기에 대한 사회적 이슈에 편승하여 나와 내 책‘전세지옥’은 꽤 많은 관심을 받았다. 유튜브, 라디오, 뉴스, 신문, 북토크 그리고 예능까지 출판사를 통해 섭외를 받았다.


그 한 통의 연락은 출판사가 아닌 내 개인 연락처로 문의가 왔다. 어째서인지 그 연락은 귓속말을 하는 것처럼 조심스러웠다.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라면 손가락 하나쯤은 자를 각오… 까지는 아니고 손톱정도야 뽑아버릴 각오로 무어든 할 생각이었던 나는 다음날 홍대입구역의 스타벅스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였다.


자신은 어느 정치인의 요청으로 이 자리에 왔으며 그 정치인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전세사기 대책에 관해 나를 만나고 싶어한다고 이야기했다.


맨살이 들어나게 손톱을 물어뜯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으며 쓴 책의 궁극적인 목표에 도달하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치인의 정책에 내 의견이 귓속말처럼 가깝게 피력될 수 있게 되었다.


그 정치인은 내 책을 정책의 기조로 삼겠다고 말한 한동훈 법무부장관일까? 직접적인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원희룡 국토부장관? 그것도 아니라면… 혹시 용산?


나는 그에게 물었다.


‘그 정치인이 누굽니까?’


그는 양 옆을 두리번거리며 눈치를 보고는 자세를 낮추고 내 눈을 바라보며 자세보다 더 낮은 목소리로 내게 이야기했다.


‘이재명 대표’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다시 생각을 해보니 정부와 여당은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단 한 번도 들어준 적이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정부와 여당을 제외한 가장 힘이 센 야당의 대표가 나를 부른 것이다.


그 한 마디에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 날 자극했다. 새찬 바람에 하늘로 빨려 올라가 구름으로 만들어진 의자에 앉은 기분이었다.

나는 승낙을 했고 그와 악수를 하며 헤어졌다.


어느정도 이름이 알려진 그는 대외적으로는 전혀 다른 일을 하면서 뒤에서는 조용히 민주당의 일을 하는게 마치 브루스웨인과 배트맨처럼 느껴졌다.


정신을 차리러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얼굴이 새빨갛다. 과거에 실수로 반 친구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었을 때, 전 여자친구가 내 고백을 받아줬을 때, 선크림을 바르지 않고 후지산에 올랐을 때보다 더 빨겠다.



이틀 후, 양복에 파란 넥타이를 메고 국회의사당에 갔다. 국회의사당 정문 앞에서 홍대에서 만났던 배트맨을 기다렸다.

세살 터울의 누나와 또래로 보이는 여성이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해 달라며 1인 시위를 하고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유튜브에 나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절망에 대해 간절히 토로하던 내 표정과 닮아 있었다.

국회의사당 입구에서 배트카를 타고 의원회관앞에 주차하였다. 배트맨은 사이드브레이크를 올리며 내게 말했다.


‘사정상 이재명 대표는 만날 수 없고 박찬대 의원을 만나게 될 겁니다. 지수 작가를 국회의원 후보로 염두하고 있으니 너무 놀라지 마세요.’


그는 내게 아프지 말라며 예방주사를 놓은 것인데 그 예방주사에 나는 넋이 나가버렸다. 어떻게 검문검색대를 통과하고 의원실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국회의원을 본 적도 없는데 내 맞은편에 앉아있다.  어려워하는 내게 박찬대의원은 본인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난 그의 눈빛과 말과 얼굴 표정 중 어느 하나만 봤어도 그의 진실됨을 믿을 수 있었을 정도로 순식간에 존경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국회의원 금뱃지의 벽에 얼어있던 내게 국회의원이 되면 비싼 양주 많이 마시게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며 술 이야기를 하였고 하이볼 얘기를 하는 순간 Ice Breaking이 되었다.


나는 준비해간 정책 제안서와 내 책을 건네며 전세사기에 대한 심각성과 피해자들의 아픔을 그에게 공감시키려 했다.


의원은 내 긴 이야기를 끊지 않고 천천히 들어주었다. 하고싶은 말을 꾹꾹 눌러담아 요약한 내 말이(여전히 길었다) 다 끝나서야 그는 말했다.


’책을 꼭 읽어볼게요. 사태에 대해 당이 좀 더 책임감을 갖고 임하겠습니다. 저희가 좀 더 잘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네요. 지수 작가와 피해자 분들께 미안합니다.‘


나는 그가 사과를 한 것에 감사를 느끼며 대답했다.

’정치인 분들께서 모든 사태를 다 예방하는게 불가능하다는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계기로 전세로 고통받는 사람이 줄고 고통이 작아졌으면 합니다. 누군가는 정치인들이 놀고먹으며 맨날 싸움만 하는 사람들이라 비하하지만, 저는 정치인분들이 있기에 세상은 조금씩 더 나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남의 본론이 나올 때가 되었다.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최고의원은 내게 물었다.


’정치에 도전해 볼 생각이 있나요?‘


나는 마치 슈퍼마켙에서 맥주를 훔친적 있냐고 경찰관에게 추궁당하는 것 처럼 빠르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없습니다.’


‘흠, 이재명 대표가 인재 리스트에서 지수 작가를 제일 먼저 만나보라고 이야기했어요. 천안(이곳에서 전세사기를 당했다.)에 공천할 후보로 염두하고 있으니 잘 생각해 보시고 다음주에 한 번 더 보기로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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