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지수 May 06. 2024

[선상일기] 쉬는 날 없이 일한다는 것

 5월 1일 근로자의 날, 당신은 8시간을 일해야 한다면 기쁘겠습니까?   


 4월 30일 화요일, 여느 때처럼 별이 잠에 들고 해가 뜨기 전인 5시에 일어나 8시까지 아침 일을 하고 퇴근한다. 9시 반에 출근하여 13시까지 점심 일을 하고 퇴근한다. 잠깐의 오침 후 15시에 출근하여 19시까지 저녁 일을 한다. 언제 호출당할지 모르는 불안한 마음(악어 떼가 있는 강가에서 물을 마시는 누우)을 가지며 점심과 저녁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하루에 9시간 반에서 10시간 정도 일한다. 달력을 보니 아직 화요일밖에 되지 않았다. 저녁에 설거지하며 내일도 5시에 일어나야 한다는 두려움이 아직 퇴근 전인데도 나를 휘감았다. 


 수저를 씻는 중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니 휴무라고 한다. 물론 매일 밥을 준비해야 하는 조리부에 주말이나 휴일은 없다. 다만, 이날은 아침을 하지 않아도 된다. 9시에 출근 하여 8시간만 일하면 된다. 아, 내일 아침에 늦잠을 잘 수 있다니 존나 기쁘다. (기쁜 정도를 짧은 비유로 나타내고 싶어 오랫동안 생각했지만 존나 라는 비속어보다 더 나은 비유를 찾을 수 없어 부득이하게 사용하게 된 점 양해 바랍니다.)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은 주말을 반납하고 쉬는 날 없이 일해 봤을거다. 나 또한 천안에서 회사DP 다닐 때, 일본에서 골든위크에 한 번 주말 없이 일해봤는데 삶이 흑색으로 보일 정도로 처절했다.   

 

 배를 타기 전 조리부는 쉬는 날이 없다는 걸 익히 들었는데 설마 진짜 쉬는 날이 없겠어? 하고 들어왔다. 근데 진짜 쉬는 날이 없다. 진짜 주말에도 출근해야 했다. 첫 항차는 기관장이 아침밥을 안 먹으면 죽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주말에도 아침에 출근하여 기관장 아침밥을 차려줬다. 주말이 쉬는 날이 아니라는 건 정말 끔찍하다. 군대 보충대에 입소하여 2박 3일 후 탄 버스가 집이 아닌 훈련소에 날 내려줬을 때, 7주간의 훈련을 끝내고 탄 버스가 집이 아닌 자대에 나를 내려준 느낌이다.   


 주말이 없다는 것은 육체도 마음도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다. 복서들이 체중감량 시 수분 커팅까지 하면 가장 섭취하고 싶은 건 참치 대뱃살도 라면도 채끝등심도 맥주도 아닌 물이라고 한다. 

 지금 내게 하루의 자유가 주어진다고 하면 비행기를 타는 것도 아니고 미지의 세상을 여행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방에 갇혀 하루 종일 누워 뒹굴고 싶다.    


 가끔은 정말 미치도록 쉬고 싶을 때가 있다. 아프다고 거짓말할까, 일을 그만둔다고 할까 여러 궁리를 해보지만 결국 일을 나가기 위해 준비해야 하는 시각을 알리는 알람이 켜지면 몸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방문 고리를 잡고 한숨을 깊게 쉰 뒤 일터로 향한다. 그럼, 그만이다. 대신 그날은 일을 마치면 운동이나 글쓰기는 가급적 삼가고 좀 더 일찍 자거나 술을 좀 더 마신다.    


 기댈 곳 없는 멘탈을 바로 세우기 위해 나만의 방법을 강구했다. 

 영화 [쇼생크탈출]의 한 장면이다. 아래의 대화는 주인공 앤디가 2주간 독방에 갇히고 나와 수감 동료들과 나눈 이야기다.   


"독방이 쉬울 리 있나, 일주일이 일 년 같을 텐데."   


"모차르트 씨가 친구가 되어 주었지."   


"독방에 축음기를 갖고 들어갔단 말이야?"   


"이 안에 음악이 있었어. (머리)   


이 안에도.... (마음속)"


 앤디와 비슷하게 내겐 34년산 은행나무의 이파리처럼 많은 기억이 있다. 외롭고 답답하고 힘들 땐 그냥 일 끝나고 바로 침대에 누워 이파리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라 삼인칭으로 하는 관찰이 아닌 일인칭으로 과거에 들어간 느낌을 받는다. 추억 속에서 나는 치유 받는다. 다음날 기분 좋게 일어나 주말 동안 푹 쉰 사람처럼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역시 인간에게 불가능은 없다. 과거에 주 6일 근무가 당연하던 시절 부모님 세대는 군말없이 일했다. 나 또한 초등학교 때 토요일날 등교했었고 중학생이 되어서야 격주로 토요일을 쉬는 놀토가 생겼다. 분명 어느 시대의 어느 사회에서는 모두가 쉬는 날 없이 일했을 것이고 그게 당연했을 것이다. 배 위의 모든 조리장은 10년 이상 쉬지 않고 일한 사람들이다. 나 또한 조금씩 적응되어 가고 있다.   


 쉬는 날 없이 일한 게 대단한 건 아니지만, 나 혼자라면 절대 못 했을 것이다. 조리부가 함께 한다. 또한, 항상 밥이 차려지는 것처럼 상선이 쉬지 않고 나아가게 하는 항해사들도 쉬는날이 없다. 그들은 8시간을 항해하고도 세 시간 서류 업무를 한다. 남은 시간에는 공부도 하고 시험도 본다. 사관들끼리 의무적으로 술도 마셔야 하고 어울리고 밥도 오랫동안 먹어야 한다. 이들은 잠을 언제 자는지 모르겠다. 나보다 힘들면 힘들었지 절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멋진 동료들이 있기에 나도 함께 이끌려갈 수 있는 것 같다.   


 7개월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일한 경험이 있다는 것은 분명 미래의 내게 엄청나게 큰 자산이 될 것이다. 그 속에서 전자책을 낸 것만 해도 무척 자랑스럽다. 

 언젠가 배에서 완전히 하선하여 사회로 돌아가면 나는 일주일에 하루만 쉬어야겠다.   

   

PS.

[선상일기] 전자책이 출판되었는데 아무도 사주지 않아서 슬픕니다. 베스킨라빈스 싱글이 3900원인데 [선상일기]가 3800원이에요. 제 책이 엄마는외계인보다는 맛이 없겠지만, 민트초코봉봉보다는 맛있습니다. 한 권만 사주세요. 제발.   

교보문고 링크: https://ebook-product.kyobobook.co.kr/dig/epd/ebook/480D240472810?LINK=NVE


작가의 이전글 힘든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은 기뻐해야 할 일인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