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살 보험설계사 그리고 소득 1천만원
2025. 1. 14. 72살 보험설계 할머니
퇴근 후 저녁을 먹고 추운 겨울 날씨에 나갈까 말까 심적 갈등 때문에 망설이던 찰라, 띵똥 콜이 뜨고 나도 모르고 바로 수락을 눌렀다. 초보 대리 기사들의 특징이 원래 그렇다. 좋은 콜(거리 대비 요금이 많거나, 도착지에도 콜이 많은 콜밭인 곳을 의미)을 대리기사를 전업으로 분들이 다 가져가고 나한테 오는 콜은 대부분 똥콜(대리 업계에서 사용되는 은어적 표인인데, 거리 대비 금액이 낮거나 아님 도착지가 주택지에서 다음 콜을 받으려면 번화가로 한참 나와야 하는 곳)이다. 고객에서 찾아가는 길이 생각보다 어려웠다. 큰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어디서 건너야 할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지 않아, 한참 이리저기 뛰기를 반복, 15분이 흘렀나? 카카오 대리 고객센터에서 전화가 온다. "기사님, 죄송한데 시간이 좀 지났는데 손님에게 먼저 양해 전화 좀 해 주실래요?" 사실 이때가 제일 긴장된다. 이번에는 어떤 손님일까? 전화를 받은 분은 딱 봐도 중년 여성분이었다. 길 찾기가 힘들어서 좀 늦겠다고 양해를 구하니 1초의 고민도 없이 "잘됐어요. 안그래도 얘기를 좀 더 해야해요" 라고 말한다. 숨 헐떡이며 뛰고 있었는데 이 말을 듣는 순간 걸었다. 사소한 행복이랄까? 도착을 하니 우리 어머니 나이 또래로 보이는 분이 차로 안내를 하는데, 대형세단이 아닌 구형 SUV였다.
차에 타자마자 눈길을 끈 것은 24만 키로 계기판. 그리고 너저분한 서류 더미와 뭔가 누구에게 주다만 선물 세트..이 할머니는 뭐지? 라는 생각이 떠 오를 찰라, 빨간불 신호에 걸렸다.
둘 사이에 흐르는 적막...이걸 꺠야한다는 의무감에 "제가 몰아본 차중에 가장 킬로수가 많은거 같아요" 라고 했더니, 대뜸 "열심히 산 흔적이에요" 라며 말문을 연 할머니.
30대 초반의 나이에 보험업계에 뛰어들어 40년을 버텼다고 한다. 물론 말은 버텼다고는 하지만 듣고 보니 보험설계로 인생역전을 하신 분 같았다. 법인사업자이며 자기 밑에 서류 정리 할 직원을 한명 두고 있는데 월급이 300만원, 그리고 현재 4층 짜리 상가건물을 갖고 있다고 한다.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아마도 기사님이 생각하는 이상으로 제가 많이 번다고 얘기하신다. 그런데 그게 자랑으로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보험업게에서 40년을 살아남은 비결을 물었다.
첫째, 절대 상품을 강요하지 않는 것이라고 한다. 어떤 모임에 자기가 끼게 되면 사람들은 첫 만남에 물건을 팔러 온게 아니냐며 경계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눈빛에서 느껴진다는 것이다. 본인은 그게 너무 부담스러워 어떤 모임을 가던 새로운 사람을 만나던 보험설계사라는 직업에 대해서는 얘기하지만 절대 상품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가지고 있던 보험에 상담을 해도 절대 이건 이걸로 바꿔라. 이건 이게 더 좋다는 말은 하지 않고 이 상품에서 어떤 부분을 추가 했으면 좋겠는데 기존 설계랑 다시 한번 상담을 해라.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얘기할 뿐이라고 한다.
둘째, 방문판매업의 성공 키워드 1순위는 입소문. 사소한 운전자 보험이라도 그 사람에게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운전자 보험 월 3만원, 사실 보험설계사 입장에서는 그리 마진이 큰 보험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손님을 소흘히 했다가는 이 바닥에서 못버틴단다. 꼬리에 꼬리는 무는 영업 방식, 아주 소액의 운전자 보험이지만 이 사람이 데리고 오는 고객은 10명이 넘을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셋째, 컴퓨터에서 내 마진률을 지워라. 본인은 이 물건을 팔때마다 자기에게 얼마의 마진이 떨어지는지 모른단다. 물론, 계좌에 들어온 돈을 보면 알겠지만 물건을 팔 당시에는 전혀 모르게 한다는 것. 내가 이 물건을 팔면서 얼마가 남을 것이다 라고 알게 되는 순간 사람의 욕심은 끝도 없게 된단다. 이는 자칫 고객에게 강매의 느낌을 들게 하며 결국 100이면 100 이런 사람은 결국 계약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이다.
보.험.귀.신
마지막 도착쯤 40년 업계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뭐냐고 물었다. 내 인생 처음 들었던 보험귀신.
보험을 잘 가져가다 갑자기 여러 이유를 들어 보험을 해지 할 경우 이전 보험에서 보장했던 질병이 걸리는 것이다. 그걸 업계에서는 보험귀신이라고 부르는데..
한번은 친한 동생이 자기는 건강한데 매달 나가는 보험료가 부다이 된다며 해지를 한다는 것이다. 딱히 봐도 그렇게 금전적으로 가난한 것 같진 않은데 그냥 자신의 건강을 믿은 탓에 보험을 해지하고 싶었던 모양이었던 것이다. 몇번을 만나 설득해서 겨우겨우 보험을 유지하게 되었는데.
몇달이 지난 후, 친한 여동생이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설계사 할머니의 꾸준한 설득을 통해 보험을 유지했고 그래서 결국 몇천만원에 해당 하는 보험료를 받아 경제적 부담없이 병을 치료했다는 것.
보험일 하면서 그렇게 뿌듯했던 순간이 없다는 것이다.
드뎌, 목적지에 도착 그런데, 어느 상가 앞 편의점 정문에 주차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저기 편의점 정문이라 주차하면...이라고 말끝을 흐리는데, 할머니께서, 괜찮아. 내 건물이고 저 편의점 내 아들이 운영하는 편의점이야. 앞 창문을 통해 상가를 올려다 봤다. 건축법상 엘레베이터가 필요없는 4층 건물.
젊은 친구, 한가지 우물만 파면서 꾸준히 열심히 하다보면 나 처럼 40년 버틸 수 있어. 용기와 희망을 버리지 말어..만원 짜리 2장을 건네면서 나머지는 팁이야 라고 하시는 보험설계사 할머니.
오래 건강하기 사시면서 100세까지 계속 일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