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갖고 싶은데 두려워요.
도착지 위치를 보니 남양주 시내도 아니고 남양주에서도 제법 들어가는 곳이다.
이제껏 시내만 돌았는데 이런 야외로 한번 나가보고 싶은 경험을 하고 싶었기에 일명 "똥콜"이지만 수락을 했다. 나와 가까운 거리에 있기에 전화 없이 빠르게 뛰어갔다. 보아하니 어제 참 거하게 마신 것 같다. 정신은 멀쩡한데 비틀거리는 것이 아...가는 도중 일(?)이 벌어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분명 차는 고급 외제 승용차인데 탔더니 담배냄새가 진동을 했다. 작은 쓰레기들이 여기저기 흝어져 있고 건설 자재 관련된 명함이 있는 것을 보니 건설업에 종사하는 분인 듯 했다.
출발을 하려는데 갑자기 가까운 편의점에 좀 가자고 한다. 맞다. 숙취제를 찾았다. 사실 대리기사들은 이런 손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콜 한개라도 더 타려면 시간이 생명인데 이러면 10분이 훅 지나가버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택시처럼 조금 기다린다고 돈을 더 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에 다시 타자마자 나에게 따뜻하 커피를 건넨다. 술냄새, 담배냄새에 나도 구역질이 났지만 이 커피 하나에 마음이 풀린다. 편의점에서 산 1+1 이거나 2+1 커피 하나인데 이런 것 하나에 긴장이 풀리고 사람을 보는 마음이 달라진다.
주말 남양주로 빠지는 길은 으레 막히기 마련이다. 특히 오늘은 영상의 날씨, 야외 나들이 나가기 좋은 날씨이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니 손님이 토를 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주섬주섬 차안에서 비닐을 찾고 있는데, 비닐이 있을리 있나. 가까운 도로에 차를 세웠다. 급히 화장실로 뛰어가는 것을 보니 급했나 보다. 보통 대리기사님이면 편의점 정차에 이런 상황이라면 짜증이 날만 하다. 그런데, 난 이 모습이 인간적으로 보이더라. 방금 전 커피때문일수도 있지만, 나 역시 이런 경우를 숱하게 경험했기에 그 고통을 알기 때문이다. 위에서 꾸역 꾸역 올라오는 그 고통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아닌가. 한 20분을 기다렸나 화장실에서 돌아오는 그 분의 얼굴은 너무 편안해 보였다. 나 역시, 이제는 제대로 운전을 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 같아 마음이 편해졌다. 토하고 싶은데 자꾸 옆에서 말걸면 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는가?
43살 역시나 건설업에 있는 손님이었다. 오랜만에 친구 5명이 뭉쳐 마장동, 장한평을 돌며 거하게 마셨던 것 같다. 가는 내내 사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미안하다고 애원을 하지만 사모님은 화가 풀리지 않은 듯 전화를 받자마자 끊기만 반복했다.
안쓰러워서 내가 한마디 했다. "화가 났을때 자꾸 연락하고 그러면 화가 더 날거 같은데 미안하다고 문자도 하고, 큰 봉변을 당하지 않고 무사하다는 것을 알렸으니 화가 풀릴 때까지 놔 두는 건 어때요?"
내 말을 들었는지 그제서야 휴대폰을 놓고 전자담배를 하나 꺼내 물었다. 한 목음 마시더니 나를 보곤 미안하다면서 바로 담배를 끄려고 했다. 천성이 악한 사람은 아니였다. 최소한의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 분인 것 같았다. 그러니깐 안절부절 전화하며 잘못을 빌지 않았을까.
어차피 긴 거리를 가야하니, 그가 좀 쉬어야 대화가 이뤄질 것 같아 아무말 없이 운전을 했다.
그런데 그가 먼저 말을 걸었다.
"제가 딩크거든요. 아무래도 와이프랑 저 밖에 없으니 제가 많이 의지하고 잘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 뉘앙스가 왠지 원해서 딩크는 아닌 것 같았다. 진심 원해서 딩크라고 하는 사람은 자신이 딩크라고 먼저 얘기하지 않는다. 남이 애가 있냐고 물어보면 당당하게 "저 딩크에요."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물었다. "사장님은 애 갖고 싶으시죠?" 손님이 놀라면서 "얼굴에 티가 나나요?" 라며 머리를 긁적인다.
20대 초반부터 지금의 아내라 결혼해서 살다보니 처음에는 피임을 계속 했단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고 애를 가지려고 하다보니 그게 잘 안되지 않더란다. 그러면서, 그럴바에는 우리 둘이 행복하게 살자면서 딩크를 결정했는데 본인은 그 결정이 잘한 결정인지 조금 후회가 된다는 것이다. 아내도 40대 초반인데 지금 애를 가져 잘 키울 수 있을까? 그런 두려움에 선듯 결정하지 못하는데 자기가 갖고 싶다고 밀어부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그냥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좀 안타까웠다. 요즘은 다들 애기가 들어서지 않아 의학의 힘을 많이 빌린다. 의학의 힘으로 출산을 하는 것은 이제 쉬쉬하는 시대가 아니다. 또한, 낮은 출산율로 인해 정부에서도 많은 지원이 된다. 그리고 40대 초반에 출산하는 경우는 이제는 뉴스거리가 아니다. 출산 나이가 점차 늘어나면서 의학도 점차 발전하고 40대 중후반에 출산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이다.
아기가 주는 행복을 들려주고 싶었다. 새벽에 열이 나서 아이를 업쳐 들고 응급실로 달려갔던 기억들, 처음 우리 아들 걸었을때의 그 감정, 처음으로 "아빠"라고 불렀을때의 그 감흥, 나의 유전자로 만들어낸 최고의 값진 선물이라는 점을 얘기해 줬다. 신호가 걸렸을때 조심스래 나의 아들 사진을 보여주었다. 깜짝 놀라며 "완전 붕어빵이네요"라고 그가 웃었다. 20분 전까지 술이 덜깨 속 아파하며 배를 움켜쥐는 그 모습이 아니였다.
주변에서는 뭐라하는지 물었다. 지금 낳아서 뭐하냐? 애한테는 뭔 죄냐? 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고, 나 처럼 아이가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며 지금이라도 낳아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반반이라고 한다. 진짜 반반이냐 물었더니 "사실 아이가 주는 행복은 그 어느 것에 비하지 못할 만큼 크다는 사람이 많긴 하죠." 라고 허허 웃는다.
도착 지점이 다가 올 때쯤, 조심스럽게 50대 이후의 삶을 한번 생각해 보는게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물론 둘만의 사랑이 지극해서 서로 끝까지 사랑할 수도 있지만 그 사랑에 자녀가 있으면 더 배가 되고, 애완동물로 채워 줄 수 있는건 한계가 있지 않냐며 두분이서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아내에게 애를 낳기 위해 노력하자는 말은 하지 않을 것 같았다. 평생 자기가 가져가 야할 후회로 묻어야 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았다.
우리 부부도 어렵게 아들을 얻었다. 첫째 아기는 4주 심장이 뛰지 않았다. 두번째 아들은 인공수정을 거쳐 낳았다. 물론, 키우면서 쉬운게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경제적 문제도 무시 못할 부분인 것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주는 행복은 그 어느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출산은 비교우위의 문제가 아니다. 나의 행복을 위한 것도 아니다. 부부를 이어주는 연결 다리인 것이며 진정한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속의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생각한다. 어쩔 수 없이 딩크가 된 경우, 그리고 확고한 신념으로 딩크가 된 경우가 아닌 딩크로 결정했다 그 결정에 조금의 후회가 든다면 과감하게 생각의 틀을 깨 보는 것이 어떨까 싶다.
파킹을 하고 내리는데, 주섬주섬 지갑을 찾더니 1만원짜리 한장을 건네며 너무 대화 고마웠다며 천마산역까지 택시타고 가라고 한다. 이럴때 참 묘한 감정이 느껴진다. 손님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 가족의 사랑과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껴 오히려 내가 더 고마운데, 이렇게 나에게 고맙다며 팁을 건네는 손님은 잊혀지지가 않는다.
광역도시버스가 워낙 잘 된 탓에 잠실환승센터까지 꿀잠을 자며 30분 안에 도착했다. 받은 팁 만원에 조금 더 보테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 치킨 한마리를 샀다. 오늘은 여기까지, 우리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