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뒤바뀐 갑을 관계

화를 이겨 내는 법을 배우자

by 샤넬발망


월요일 저녁, 대구에서 가장 번화하다는 범어네거리에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콜이 잡히지 않는다. 대개 이런 경우 난 맥도널드를 찾는다. 스타벅스 등등 고급 브랜드 까페도 좋지만 그냥 맥도널드가 편하다. 단돈 1천원 커피가 그렇게 달콤하고 향기로울 수 없다. 가까운 지인 중에 맥모닝을 참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 몇 번 같이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맥도널드가 난 엄청 편했다.





%EB%A7%A5%EB%8F%84%EB%84%90%EB%93%9C_%EC%82%AC%EC%A7%84.jpg?type=w773





주변 기사님들을 분포를 보니 나 같이 생각하신 분들이 참 많았다. 참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다. 대부분 한 집안의 가장들이다. 가장의 무거운 어깨를 짊어지고 영하 –5C인 날씨에도 나와 몇 만원 더 벌기 위해 추위와 사투를 벌이는 이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 존경을 마음을 표한다.



그렇게 2시간이 흘렀다. 중간에 한 번씩 콜이 뜨긴 했지만, 초보 대리기사인 나에게 너무 빠르게 순식간에 빛의 속도로 없어졌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2시간 대기할 때쯤 동쪽 대구 끝에 있는 어느 아파트가 도착지로 뜨는 것이 아닌가? 수락을 눌렀는데 알고 보니 가격은 너무 낮은데 거리는 멀고 주변에 콜이 전혀 없는 오지였던 것이다. 그래도 뭔가 촉이 왔다. 이분과의 대화는 참 재미있을 것 같은 느낌 아닌 느낌?



차량에 앉자마자 난 습관적으로 차의 키로수를 본다. 차의 연식은 오래되지 않았는데 17만키로. 영업직이거나 아님 차로 출퇴근을 하는 분이다. 출발하자마자 마스크를 쓰고 고개를 뒤로 젖히는 고객을 보며 잠시 실망을 했다. 그래도 마음을 다 잡았다. 그래 한번도 가보지 않은 곳에 한번 가보자. 그런 마음으로 출발을 하는데, 함께 술자리를 했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 그래. 잘 가고 있어, 당구 오랜만에 재미 있더라. 다음에 또 하자~~” 이러면서 전화를 마무리 하는데,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당구 치셨어요? 저랑 같은 세대이시네요. 요즘은 당구장 찾기도 참 힘들던데..”



그렇게 이어진 대화는 당연히 직장 생활 얘기, 40대 중반이 갖고 있는 미래에 대한 고민 등으로 이어졌다.



나보다 2살 어린, 대기업 소속 마트에서 일하는 직원이다. 벌써 입사한지 20년이 되었다는 고객님, 오늘은 직장 동료들과 함께 다른 지점으로 파견 근무 형식으로 도움 주러 나갔다가 일 마치고 저녁 5부터 술을 먹었는데, 하필 1차 횟집 2층이 당구장이었단다. 다들 술이 얼큰히 취하고 당구장을 보며 콜? 콜? 콜? 을 외치며 3차 술값 내기로 당구를 쳤는데 1등과 2등은 술값 공짜, 3등은 당구장비, 4등과 5등은 3차 술값 내기를 했다는 것.



소위 말하면 쫄깃하다고 해야 하나? 나도 대학교 때 당구를 참 많이 좋아했었다. 과 친구들이 각각 수업은 달랐어도 늘 대학로 한 모퉁이에 있는 “준스” 당구장에 모였다. 자장면 내기, 저녁 맥주 값 내기 등, 대학교 때는 그게 큰 돈 이였기에 아주 피 말리는 싸움이었고 항상 긴장감이 돌았다.


그런데 우리 고객님은 3등을 했다. 당구장 비용만 지불했는데 1시간 쳤는데 1.4만원...월급만큼 오르지 않는 것이 또 있었는데 그게 바로 ‘당구장 비용’



고객님에 얘기해주는 유통업의 얘기가 참 흥미로웠다. 코스트코에서 가장 큰 매출은 바로 생수라는 것, 본인이 근무하는 마트에서도 생수 매출은 크다는 것이다. 물에 한번 크게 곤욕을 겪은 사람, 그리고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이 정수기를 믿지 못해 늘 생수를 사 간다는 것이다. 재활용 패트병 처리만 해도 엄청 귀찮을 것 같은데 그게 또 사람마다 생각이 각각 다른 모양이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발전하면서 근로자의 노동인권 수준이 향상되고 ‘공정’ 이라는 주제가 강조되면서 유통업도 이제 큰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마트 납품업체가 乙이었고 마트가 甲이었는데 이제는 예전처럼 갑질 했다가는 뼈도 추스릴 수 없을 정도(고객의 표현에 따르면)로 고강도 조사를 받기 때문에 단가 후려치기, 마트 수익 보전 등 예전에는 관행처럼 이어졌던 것들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



무엇보다 마트 내에 같이 근무는 하지만 납품업체에서 나온 직원들, 예컨대 물건 호객행위 하는 직원, 시식코너를 운영하는 직원들은 마트 직원이 아닌 납품업체에 고용된 직원들인데 이들은 마트에 직접 고용된 직원들의 감시와 감독 그리고 지도를 받는 슈퍼 울트라 乙이었는데 이제는 이들이 오히려 甲이 되어 큰소리를 치니 일이 안돌아간다고 투덜투덜 거렸다.



맞장구는 쳤지만 사실 난 이런 얘기가 불편하다. 왜냐하면 그들도 보호받아야 할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비록 소속은 다르지만 마트 내에서 같이 일하는 직장 동료인데 甲, 乙관계를 나눈다는 사실 자체가 좀 어불성설 아닌가 싶다. 그들도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누군가의 딸이고 누군가의 아들이자 누군가의 아버지다.


참 먹고 살기 힘든 세상, 서로 도우면서 살자고~~~.



그러나 저러나 대구시 끝에 왔더니 대구 시내로 복귀하는 콜도 없고, 결국 버스틑 타고 이동하는데, 왜 그리 서글프던지..무슨 이유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으나 뭔가 찜찜한 이 기분은 뭔지...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