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직 수평 문화의 시작
일요일 오후에 무슨 대리 콜이 있느냐 의문을 품을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많다. 그중 가장 많은 것이 바로 예식장과 장례식장, 하객들과 조문객들이 저마다 축하의 의미와 위로의 의미로 한잔씩 하고 대리운전을 통해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베테랑 대리기사들은 주말 오후에 예식장과 장례식장에 주로 몰려있다.
나도 삼성동 예식장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삼성동에서 압구정 아파트까지 거리를 짧았지만 돈을 버는 목적이 아니기에 바로 수락을 눌렀다. 목적지는 그 유명한 압구정현대아파트...
차문을 열어 보니 3명의 고객이 있었다. 복직을 보니 누가 봐도 결혼식 하객임이 분명했다. 여성은 한껏 멋을 부렸고, 남성 둘은 말끔한 정장...
이렇게 고객이 여러 명일 때는 뭔가 말 걸기가 쉽지 않다. 셋이서 자기들끼리 얘기를 주고받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고객들도 그랬다. 신부가 어쩌니 저쩌니 신혼여행이 어쩌니 저쩌니.. 그런데 참 이상한 게, 서로를 부를 때 당근님, 카이사르 님, 레이 님 이렇게 이름이 아닌 별칭으로 호명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내심 '무슨 동호회 사람이 결혼을 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다. 보통 친목동호회에서 만나면 이름 대신 닉네임을 부르는 것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일행이 압구정역에서 내리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기 직전, 조심스레 고객에게 물었다. "동호회 분이 결혼하시나요?" "하하, 아뇨, 예전 직장 동료예요."
예전 직장이 스타트업인데, 대표부터 해서 모든 직원이 이름이 아닌 닉네임으로 서로를 불렀다는 것, 이게 수평문화를 지향하는 미국의 스타일인데 그걸 본인들도 따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자연스럽게 당근님, ~~ 님 같이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름이 아니라 닉네임을 부르면 수평문화가 되는 것일까? 수평문화가 되면 조직의 효율성은 높아지는 것일까? 삼성 같은 대기업에서도 수직적 문화를 탈피하고 수평문화를 만들기 위해 사원, 대리, 과장, 차장 등의 직급을 없애고 매니저, 에디터 같은 직급을 만들어서 부르게 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조직의 수평문화는 우선 윗분들의 권위의식부터 없애는 것이 우선이지 부르는 호칭이 바뀐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 친구의 얘기가 떠 올랐다. 친구네 회사에서 부서 워크숍에 있었는데 워크숍이 끝나고 난 다음, 68년생 임원급인 분이 갑자기 팀장 빼고 팀원들만 남으라는 것이다. 무슨 일인가 싶어 들어봤더니, 에티튜드를 얘기한다. 쌍팔년도적 그놈의 에티튜드. 주위를 둘러보니 20~30대 주니어 직원들은 다들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며 아무도 반응을 안 한다. MZ세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분이다. 에티튜드를 얘기하기 전에 젊은 직원들이 원하는 직장은 무엇이고 조직문화는 무엇인지 먼저 파악을 했어야지 일말의 호응이라도 해주지.
과거 신입직원이 들어오면 선배 직원을 멘토라 하고, 신입직원을 멘티라 하여 선배가 후배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일이나 기타 회사의 암묵적인 룰, 그리고 직장인의 태도에 대해 가르친 적이 있었다. 이게 10년 전 얘기다. 지금은 다르다. 임원급이 멘티가 되고 신입직원이 멘토가 되는 세상이다. 임원급 멘티는 신입직원을 멘토로 생각하고 MZ 세대들의 생각을 배우고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이상향을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조직이 서로 융화되고 최고의 조직력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에티튜드를 얘기하는 조직, 이름 대신 닉네임을 얘기하도록 한 스타트업.. 내가 보기엔 둘 다 크게 성공했을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