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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간의 연애와 이별

재회 가능성 0%

by 샤넬발망

늦은 오후, 선릉역에서 노량진 콜이 떴다. 출발지는 강남의 고급 유흥주점. 오후 3시까지 영업을 하는 곳이다. 대개 여기서 콜이 잡힌다는 것은 오후 3시까지 술을 먹었다는 의미인데, 가서 보니 그렇게 취하진 않았지만 뭔가 얼굴에 사연이 있어 보였다.

그저께 월급날이라 마음이 뒤숭숭해서 잠을 설치다 새벽 5시에 깨어나 이곳에 도착해서 아침 7시부터 술을 먹었다고 한다. 사실 이 정도만 들으면 술에 환장한? 그리고 술에 미친? 사람처럼 보였다. 일반 술집도 아니고 고급 유흥주점이었기에 충분히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얼굴에 무슨 사연이 가득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연이 무엇인지 몹시 궁금했다.

이럴 때는 고객의 눈치를 살핀다. 의자 뒤로 고개를 젖혀 눈을 감으면 그냥 조용히 가고 싶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창밖을 보며 전자담배를 만지작거리거나, 휴대폰으로 뭔가 계속 검색을 한다거나, 누군가에게 카톡을 보내면 뭔가 대화할 사람이 필요한데 마땅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고객님은 후자였다.

고등학교 때 중국에서 유학한 유학파이며,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에 재직 중인 분이었다. 나이는 36살. 본인 스스로 새벽에 잠이 깨 술 한잔 먹고 싶어서 왔다고 한다. 그 사연이 참 눈물 없으면 들을 수 없었다.

6년을 만난 여자친구가 있었다고 한다. 결혼까지 문제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남자 입장에서는 뭔가 두려웠단다. 그때가 32살. 모아둔 돈도 거의 없고, 누군가와 가정을 꾸리기에는 이루어 놓은 것도 없고, 뭔가 두려운 마음이 들 때였다. 결혼하자는 동갑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고하고 그렇게 헤어졌다고 한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한 통의 전화를 받았는데, 휴대폰에 선명하게 찍힌 그녀의 이름. 그렇게 1시간 동안 근황을 묻고 대화를 하다, 마지막 그녀의 한마디…"나 결혼하는데 그냥 마지막으로 근황이 궁금해서 연락해 봤어. 잘 살아~"

그녀의 전화 통화에 밤새 한숨도 못 자고 뭔가 진정이 되지 않아 새벽에 술을 먹으러 나왔다고 한다.

그의 얼굴은 후회가 가득해 보였다. "그때 헤어지자고 한 게 후회되세요?" "당연히 후회되죠. 남들 다 결혼해서 애 낳고 행복하게 사는데, 그때 한번 틀어지고 나니 결혼이 참 쉽지 않아요. 그 전화 받고 진짜 잠이 안 오더라고요."

그녀와 이별 후 몇 번의 연애를 했지만, 이별 후 그때만큼은 아프지 않다고 한다. 6년 연애 후 이별은 정말 죽을 만큼 아팠는데, 이제는 누군가 만나고 이별을 해도 그렇게 힘들지 않다는 것, 점점 감정이 매말라 가는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대뜸 "기사님, 저 결혼할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다.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결혼 쉽지 않아요. 제 경험상, 저렇게 한번 큰 내홍을 겪고 결혼 시기를 놓친 분들이 대개 결혼을 못 하고 혼자 살더라고요."

내 경험에 비춰 솔직하게 얘기했다.

결혼은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혼할 시기가 되었을 때 그때 내 옆에 있는 사람과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결혼 시기를 놓치면 이것저것 재는 것도 많고 여러 가지 생각할 것들도 많아서 결혼이 더더욱 어려워지기 때문에.

이렇게 후회하고 가슴 아파할 거면, 4년 동안 한번이라도 연락을 했어야 했다. 카톡이나 전화번호 차단도 안 되어 있었다는데, 차단 당해 연락 못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 전화 한 통이 힘들어서... 짠한 러브스토리이긴 하나, 이건 스스로가 판 무덤에 스스로 갇힌 것 같다.

가는 내내 담배만 피웠다. 무슨 위로라도 해주고 싶은데, 마땅한 위로가 생각나지 않았다. 더 좋은 여자 만날거에요. 아직 젊잖아요. 세상에 여자는 많아요. 이 고객에게는 그 어떤 위로도 머리속에 들어오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시간이 약이다. 내가 어찌 노력한다고 바꿔놓을 부분이 없는 것이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나의 추억으로 남게 되는 것이다.

한 며칠은 머리속이 복잡하고 혼란스럽고 술만 생각날 것이다. 그런데, 이럴때 일수록 혼자 있어야 한다. 친구들을 만나 위로를 들으면 그 순간만 시원스럽지 친구들과 헤어지면 다가오는 공허함에 더 힘들 것이다. 바닥을 쳐야 튀어오른다. 그 바닥을 치기 위해서는 조용히 아픔을 감내하며 지내는 것이 정답이다. 어차피 시간이 흐르면 지나갈 추억이니깐.

사랑의 아픔과 후회, 누구나 겪은 아픔이다. 당시에는 죽도록 아프지만 시간이 흐르고 지나면 다 잊혀지는 법, 시간이 약이다 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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