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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군인 가족 이야기

23년 군복무

by 샤넬발망

퇴근 후, 집에서 좀 쉬다 나오려고 아파트에 주차를 하는 순간, 대리 콜이 울렸다. 목적지는 달서구에서 한창 떨어진 화원 지역. 그것도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


보통 이렇게 이른 시간 대리를 부리는 분들은 대낮부터 술을 드신 경우이거나, 아님 딱 한두잔 먹었는데 혹시나 싶어 대리를 부르는 경우이다. 출발지에 도착을 해서 보니 나랑 비슷한 나이대의 가족이었다.

남편과, 아내 그리고 초등학교 5학년 아들, 그리고 10살된 딸.


이렇게 한 가족을 모시고 목적지로 출발했다. 가족 단위를 모시고 갈때는 대리기사 크게 할 말이 없다. 가족간의 이슈나 아님 가족들끼리 서로서로 얘기를 나누다 보니 내가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아내분이 앞좌석에 앉은 남편에게 사탕을 요구했다. 사탕을 집어들은 남편은 나에게도 하나를 건넨다. 이러면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자연스럽게 대화가 시작된다.


"가족끼리 저녁 식사하고 오시나 봐요. 보기 좋아요. 애들은 몇살이에요?"

23년 장기 군복무를 한 남편, 그리고 전역한지 몇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남편 고향은 합천, 아내 고향은 대구, 춘천과 강원도 지역에서 23년간 군복무를 마치고 얼마전에 전역했다는 것이다. 춘천에서 먹었던 닭갈비집 체인이 유일하게 대구 광장코어 인근에 있어서 화원에서 여기까지 온 가족 저녁 식사를 하러 왔다는 것이다.

남편의 나이는 80년생 나랑 동갑이다. 그럼 20살 초반부터 군목부를 했다는 것인데, 운전 중간 고객인 남편을 보며 "나라를 위해 희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멘트를 날리는 남편은 피식 웃고, 아내분은 너무나 고맙다는 인사를 건넨다.


첫째는 벌써 대학생이 되었다고 한다. 빠른 시기에 결혼을 했고 빠른 시기에 자녀를 얻었고, 조금은 이른 나이에 은퇴를 했다. 그래도 경제적으로 군인연금이 있어 괜찮지 않냐고 물었더니, 일시불로 받아 연금의 의미가 없다며 앞으로 그래서 프렌차이저 치킨집을 알아보고 있단다.


갑자기 고객인 남편분이 우리나라 군인 퇴직자 그리고 군인에 대한 처우에 강한 불만을 쏟아 내셨다.

얼마전에 난 기사를 소개해 줬는데, 요즘 군 전역자들 사이에서는 비닐커버로 붙은 전역증 말고 플라스틱 새로운 전역증 발급이 인가라고 한다. 그 이유가 미국 여행을 할때 군 전역증을 보여주면 국립 박물관 등에서 할인을 해 주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나라를 위해 희생한 전역군인에 대한 예우를 다른 나라 군 전역자들에게도 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 미국을 여행하는 군필자들은 전역증이 필수품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군 복부 당시 일부 혜택이 있으나 군 제대후에는 군필자에 대한 예우가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군 전역자의 경우 남녀 평등 문제를 떠나 국가 안보를 위해 자신의 삶 일부를 희생한 사람들인데 이에 대한 예우는 커녕, '군바리' 같은 단어로 비하하는 사회적 풍토가 매우 아쉽다고 했다.


갑자기 주제가 무거워졌길래, 난 화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아내분도 애국자네요. 이 출산률 0.7인 시대에 애를 3명이나 낳아 기르다니, 대단합니다." 라고 했더니 "결혼생활 20년 동안 애 아빠가 퇴근 후 밖에 안나가고 집에만 있으니 애가 셋이 되었네요"라며 웃으며 맞받아 쳐 주셨다.


그런 대화가 오고가며 드뎌 목적지에 도착했다.

통상 직업군인이라 하면 떠 오르는 이미지가 남성미 물씬 풍기며, 강압적이고 가부장적이라 생각했는데, 아내의 부탁에 군말없이 따르고, 아내의 조잘 거림에 같이 맞장구 쳐주고, 아내의 장난기에 웃으며 또 장난으로 받아주고..한마디로 티키타가가 아주 잘되는 부부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 애 3명을 낳았던 것 같다.


이런 가족을 모실 때면 참 부럽다. 뉴스에 부부살인, 가정 파탄 같은 기사만 나와 우리 사회가 뭔가 잘못되어가는 것 같지만 실상 따지고 보면 이런 가족들이 훨 더 많을 거라 생각한다.

프렌차이저 치킨집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서 혹시나 기회가 되면 한번 꼭 들리라고 인사를 건넨다. 아내분께서 대리기사분을 대하는 태도를 보니 꼭 치킨집이 성공할 것 같다. 그리고 꼭 성공했으면 좋겠다. 군인연금을 일시불로 받은 군인가족의 성공 스토리를 꼭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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