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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생 싱크족 형님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by 샤넬발망

주말 오후 3시나 4시에 콜이 뜨는 경우는 경기도권에서 골프를 치고, 서울로 와서 간단히 식사겸 반주를 하는 경우가 많다. 잠실에서 하월곡동으로 가는 고객님도 아침에 골프를 치고 친구들과 한잔 후 집으로 가는 고객님이셨다.


이런 경우는 대화가 매우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다. 골프 치는 사람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지만, 오전에 공을 치면 한상 후회가 된다. 그때 드라이브 대신 우드를 잡을걸, 그때 피칭 대신 60도 웻지를 잡을걸. 이런 후회들이 밀려오면서 또 공을 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에 골프 얘기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이 고객님도 마찬가지, 대학동기들과의 라운딩이었는데 충청권에 원래 잡았는데 눈이 녹지 아직 녹지 않아 경기도권으로 급히 장소를 바꿨는데 그래서 그런지 공이 너무 맞지 않았다며 투덜거렸다. 물론 신빙성 1도 없는 얘기지만 그래도 그날의 처첨한 스코어를 회피할 뭔가 책임 질 것을 찾다보니 그것이 바로 장소의 변경이었을 것이다.


골프 얘기로 한창 떠들다 보니 와이프 분이 전화가 왔다. 블루투스로 연결된 대화의 일부를 듣게 되었는데 와이프 분이 매우 화가 잔뜩 난 상황이었다. 요지는 이렇게 날씨 좋은 주말 혼자 심심해 죽겠는데 빨리 들어오라는 것.


고객님은 77년생인데 아직 애가 없다고 한다. 가질려고 노력하다 잘 되지 않아 이제는 싱크족을 지내는데 그러다 보니 와이프분이 항상 남편이 빨리 퇴근 하는 것을 바라고 남편만 바라본다는 것이다. 가끔 아내가 나만 찾는다는 것이 좋을때도 있지만 이럴때는 살짝 부담스럽다고 솔직하게 얘기한다.

"사장님, 그럼 같은 취미를 가지면 안되나요? 그럼 아내분이랑 항상 같이 다닐 수 있고, 같은 취미도 즐길 수 있고, 일석이조 인것 같은데요"

"어휴, 전 원래 수상스키 너무 좋아해요. 그런데 아내가 물을 싫어하니 그래서 같이 골프를 시작했는데, 골프 시작하고 3개월 지나니 저는 재미있는데 아내분은 재미없다고 그러네요."

"사장님 그럼, 두분이서 뭐하고 노세요?"

"뭐 와인먹고, 영화보고, 같이 음악듣고..그게 다죠..허허"


그렇게 동부간선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쯤, 또 아내가 전화가 왔다. "오빠 어디야? 왜이리 늦어"

이 얘기를 듣는 순간, 내 마음도 급해졌다. 그랬더니 옆의 사장님이 웃으면서 "괜찮아요. 천천히 가셔도 됩니다. 저렇게 일찍 가도 별로 뭐 할것도 없어요."

"어떻게 만났어요? 이럴거면 연애만 하면 되는거 아닌가요?" 너무 정곡을 찔렀나? 나도 모르게 이런 얘기가 내 입에서 튀어나와 버렸다. 이 질문을 하고 난 다음부터 뭔가 어색한 분위기가 나타날까 조마조마 했다.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어렵게 말을 꺼낸다.


"11년 만났어요. 30대 초반에 만나, 연애를 시작했는데, 제가 원래 사업을 했거든요. 근데 사업이 잘 안되고 망하면서 자연스럽게 결혼도 미뤄졌는데. 사업이 힘들때도 항상 이 친구가 응원해 줬는데 이 친구를 놓치면 안될거 같아서 늦게라도 결혼한거에요. 만약 사업이 성공했으면 아마도 30대에 결혼하고 지금쯤 초등학교 자녀가 있지 않을까요?"

결국 돈 때문에 결혼이 미뤄지고, 결국 자녀까지 포기한 상황.


싱크를 선언하며 가장 큰 어려움은 결국 부모님 설득이었다. 아들 하나 밖에 없는데 그 아들이 대를 이어가지 않겠다고 하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얼마나 섭섭했을까...

항상 부모님에게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그래서 항상 설날이나 추석 명절 연휴에는 부모님 모시고 항상 여행을 간다고 한다. 손자, 손녀가 못하는 효도를 본인이라도 직접 해야겠다는 마음가짐과 함께..

이번 설에도 대만을 갔다왔다면서 대만 여행 얘기에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인사를 하고 가려는데 갑자기 "기사님~~" 이러면서 나를 붙잡는다.

트렁크를 열어 캔커피 2~3개를 주섬주섬 챙겨준다.


와이프가 너무 좋아하는 별다방 캔커피, 그래서 항상 트렁크에 가득 쌓아놓고 어딜 갈때마다 하나씩 꺼내먹는데 나를 주고 싶었다.


"들어가자 마자 사모님에게 미안하다 얘기하시고, 오후에는 와인에 가볍게 넷플릭스 영화한편 보세요."

"어휴, 당연히 그래야죠. 안그랬다간 난리 납니다."

그렇게 캔커피를 마시며 나오는데, 행복이란게 별거 있나. 옆에서 왜 늦냐고 바가지 긁고, 집에서 나를 반겨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행복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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