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은 내 손에서 끝내야지.
스타벅스에서 몸을 녹이며 콜을 기다리고 있을 때 쯤,
가까운 곳이 콜이 울렸다. 잡으려고 했으나 이미 누가 낚아챈 상황.
이런게 제일 안타깝다.
그런데 10분 있다가 똑같은 콜이 울렸다. 이번에는 놓치지 않았다. 목적지로 향했다.
얼큰하게 취한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우리의 아버지셨다.
그런데 내가 운전해야 할 차를 보니, 뭔가 구형 봉고 트럭이었다. 타기 전에 잠깐 설마 "스틱" 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아뿔사 진짜 오토기어가 아닌 수동기어였다. 왜 이 콜이 취소되고 다시 떴는지 알거 같았다.
난 운전병 출신이다. 2년 6개월 동안 승용차에서 버스까지 다 운전해 봤다. 당연히 그 당시는 수동기어가 대세였기 때문에 수동기어 차량만 몰았다. 그런데 대리에서 수동기어 차를 만나다니...20년만에 처음으로 수동기어 차량에 앉았다.
반크러치 상태에서 출발을 하며 2단으로 변경하다 한번 시동이 꺼졌다.
"전 모릅니데이~~. 사고나면 기사님이 책임져야 합니데이~~. 전 그만 잘게요~~"
웃으면서 말하는 고객님, 평상시 우리가 보는 아버지 같은 분이라는 말. 취소하고 싶었다.
그래도 몸이 적응한다고, 큰 도로에 진입하고 나서는 시동 꺼짐이 없이 아파트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고객님이 지하 3층 주차장까지 내려가자고 하신다. 우와 수동기어에 그리고 후방카메라가 없는 트럭을 몰고 그렇게 열심히 주차를 하고 내리니 팁 5천원을 더 주셨다. 간만에 몰아본 수동기어 차량도 재미있었지만 그분의 인생 얘기가 더 재미있었기에 내가 5천원을 받아야 하는게 아니다 5천원을 내가 드리고 싶었다.
딸 2명과 아들 1명을 둔 전형적인 가장이다. 늘 자식에게 못해준 걸 후회하는 우리의 아버지같은 분이셨다.
차량의 앞 유리를 교체하는 일을 20년째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워낙 가난하게 자랐기에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았단다. 그래서 창고에 있는 미리 사 놓은 유리 가격만 8천만원, 이 가게에 가면 없는 물건이 없다는 말이 듣고 싶었다고 한다. 버는 돈을 다 재고 쌓는데 쓰다보니 큰 돈을 만지지 못했단다. 그런데 자기는 이게 좋단다. 워낙 없이 살았기에 내 물건 만큼은 가득 쌓인걸 보면 그렇게 흐믓할 수 없다고.
첫째딸은 공인회계사, 그리고 둘째딸은 초등학교 교사, 마지막 아들은 국립대 4년 장학생...
자녀 얘기를 꺼낼때 부터 입가에 미소가 가득했는데 이 고객님이 왜 미소를 띄웠는지 알것 같았다. 그 어디 가서 자녀농사에 대해 말할때 너무 행복하다는 우리 고객님.
자녀가 아버지를 생각해 큰딸은 학비가 무려인 국립대에, 둘째딸은 교육대에 막내는 대구에서 좀 떨어진 국립대에 자녀들도 참 효녀 효자였다.
그런데 갑자기 감정이 울컥했는지, 울음을 보이시며 자식에게 해준게 없어 너무 미안하다는 것이다. 특히, 큰 딸이 회계사 준비를 할때 너무 뒷받침을 못해 큰딸이 고생한거 생각하면 큰 딸 얼굴 볼 면목이 없다는 것이다.
그 울음은 진정 미안함의 눈물이었다. 요즘은 고시공부도 돈 없으면 못하는 시대다. 학원비에 교재비에 그리고 밥값에 특히, 서울에서 수업을 들을 때면 주거비도 꽤 많이든다. 그런 지원을 많이 못해 큰 딸이 고생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부모 입장에서는 억장이 무너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번씩 술을 먹고 가족 단톡방에 "딸아~~미안해" 라는 글을 올리면 딸이 바로 전화해 위로해 준다고 한다. 본인이 고생하는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자녀들이 고생하는건 정말 눈뜨고 보지 못하겠다는 우리 고객님이셨다.
봉고트럭 짐칸에 가득 쌓인 공구들과 유리 파편들 그리고 20만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기록한 오래된 년식의 봉고트럭. 어떤 근무환경인지 짐작이 갔다.
본인이 희생해서라도 자녀만큼은 자기 보다 나은 환경과 그리고 고생시키지 않겠다는 그 다짐.
우리 부모님들의 마음 아닐까 싶다.
오늘은 집에 들어갈 때는 어머니가 좋아하는 귤을 한봉지 사 갖고 들어가야지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