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 마음 내가 잘 알지.
저녁 11시 넘었을 무렵, 우리 집과는 15키로 떨어진 곳, 순간 고민했다.
오늘은 여기서 접고 대중교통이 살아 있을때 집으로 가야하나, 아님 집근처라도 가는 콜을 잡아야 하나
순간의 선택이 찰라였다. 그래 마지막 지하철 운행 시간까지만 기다렸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자라는 심정으로 지하철 역 플랫폼안에서 콜을 기다렸다.
그때 마침 목적지가 "두류동"인 곳이 떴다. 이럴때 참 희열을 느낀다. 나의 판단이 맞았고 기다린 보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집과는 걸어서 20분 거리의 목적지. 가벼운 발걸음으로 출발지에 도착했다.
나보다 4살 어린 초등 6학년과 초등 3학년 아들을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직장인 논공에서 일 마치고 대구시내로 들어와 한잔하고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한다.
"아니 근무지랑 집이랑 너무 먼데요? 아침에 차 엄청 막히는 구간인데.."
"기사님, 역시 대리기사를 하셔서 그런지 너무 잘 아네요. 원래는 논공 바로 옆 옥포에 살았는데 1달 전에 이쪽으로 이사 왔어요."
직장 근처에 있을때 보다 지금 1시간 먼저 일어나야 하는데,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그게 말이 1시간이지 누적으로 쌓이다 보니 엄청 피곤하다며 길에서 버리는 시간이 너무 아깝다고 한다.
속으로 이분 서울 생각을 하지 않아 길에서 버리는 시간의 의미를 잘 모르는구나 생각했다. 대구니깐 그래도 이 정도이지 아마 이분은 서울에 살았으면 절대 못사는 도시라며 욕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왜 이리로 이사 오셨어요? 가까운 직장 놔두고, 애들 교육때문인가요? 그런데 이쪽도 애들 교육과는 거리가 먼 곳인데.."
"제가 원래 이곳 토박이에요. 이곳에서 한 20년 대학때까지 살았는데 부친집이 재개발 들어가면서 아파트 하나 분양 받았는데 부친께서 저한테 이 집을 증여해 주어서요.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어휴, 사장님, 축하드려야 되나요? 아니면 부럽다고 해야하나요? 그래도 아버지한테 참 잘해야겠어요"
"하하, 아버지 보다는 형한테 잘해야죠"
부모님을 모시고 사는 형이 있는데 원래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고 있기 때문에 형이 가져가야 하는데 동생에게 양보했다고 한다. 형이 아직 결혼을 안했고, 결혼 생각이 없어서 동생에게 이 아파트를 양보한 것이다.
주변에 쥐꼬리만한 재산 때문에 자식이 원수가 되는 부자관계도 많이 봤고, 부모가 물려준 재산 때문에 형제, 자매에서 서로 남남이 되는 관계도 많이 봤는데 이렇게 훈훈한 형제관계는 근래에 처음 봤다.
자녀 2명에 외벌이 하고 있는 남동생을 위해 형이 쿨하게 양보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동생 입장에서는 형이 너무 고마울 수밖에...
아파트와 형 얘기가 한창일때 같이 술자리를 한 동료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장님, xxx 과장님한테 술 한잔 얻어먹어도 괜찮아요. 800만원 벌었다고 하잖아요. 저는 1290만원 손절했어도 10만원 술 샀잖아요. 더 얻어먹어도 됩니다."
원래 오늘 누군가 사려고 예정되어 있었는데 누군가 돈을 크게 벌어 대신 술값을 계산했던 모양이다. 또 이런걸 놓칠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무슨일인가요?"
이상하게 회사 직원들이 자기 회사 주식에 투자를 많이 한다는 것인데, 얼마전 유력 대통령 후보 한명의 테마주에 이 회사 주식이 엮어 엄청난 상승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직원들 여러명이 투자를 했는데 유일하게 손해본 사람이 자기 밖에 없다는 것이다. 낮은 금액에 매입을 해서 기다리고 있는데 하필 그때가 아파트 잔금을 치러야 할 때라서 어쩔 수 없이 울며겨자먹기로 1290만원의 손절을 하고 팔았는데, 하필 자기가 팔자마자 상한가를 쳤다는 것.
뭐 이런 경우는 주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겪는 것 아닐까 싶다.
"니가 팔아야 주식이 오른다니깐!!" 이런 우스개 소리도 있지 않는가.
그래서 열 받은 김에 1290만원 손실인데 10만원 술 살테니 1300만원 채우자는 심정으로 손절한 날 술을 샀다는 것이다. 자기는 손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샀는데, 800만원이나 이익을 낸 직원이 아무것도 안하고 있으니 오늘 정도의 술값은 충분히 낼만 하다는 것, 그리고 앞으로 몇번을 더 사야한다는 것이다.
나도 주식을 투자하는 입장에서 이 고객님의 심정을 100% 이해한다. 내가 사는 주식만 오르지 않고, 그리고 하필 내가 팔고 나면 상한가를 치는 이 미친 머피의 법칙. 월급쟁이 입장에서 1300만원 손절하게 되면 사실 멘탈이 나간다. 잔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팔 수 밖에 없었다고 자신의 손절을 합리화 하겠지만 그 쓰린 마음은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나도 겪어본 일이라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었다. 난 1300만원이 아니라 훨씬 더 많았다고....
돈독한 형제애에서 1300만원 주식 손절까지 이 고객님과 함께한 30분에 우리 인생의 희노애락이 있었다.
아파트 앞 편의점에 잠시 세워달라고 한다. 주식 얘기에 속이 탔는지 집에서 한잔 더 먹고 자야겠다며 소주를 좀 사야겠다고 한다. 1분 1초가 아까운 대리기사이지만 난 충분히 몇십 분이고 기다려 주고 싶었다. 그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아니깐 말이다.
지하주차장에 차를 주하고 하고 내리는데 까만 봉지에서 주섬주섬 캔커피 2개를 건네준다. 하나만 하면 충분하다고 했더니 원플러스 원으로 샀다고 하면서 두개를 내밀었다. 그래! 이런건 받아주어야 한다.
우리는 주식 손절의 동지니깐, 동지의 마음을 거역할 수 없으니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