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요즘처럼 행복했으면.
오늘 첫번째 콜은 대구에서 화원가는 고객이었다. 화원에서 다시 대구로 들어오는 콜을 지하철 막차 시간까지 기다렸다 콜이 없을 경우 지하철을 타고 대구로 들어 올 생각이었다.
대리 기사 콜이라는게 간절히 기다리면 없다가, 마음을 비우고 콜이 있으면 좋고 없으면 말고 이런 마인드로 있으면 행운같이 콜이 떨어지는 경우가 존재한다.
화원에서 전 직장 동료들과 한잔하시고 대구 성서쪽으로 들어가는 고객님이셨다.
약간 술냄새가 나긴 했으나 명확하게 목적지를 말하고 또한, 지름길을 알려주시는 것을 보니 그리 많이 마시지는 않은 듯 했다.
이런 고객들에게는 인생 선배를 대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간다.
"제 나이가 이제 곧 50인데, 인생이 참 재미없어요. 저에게 한마디 해 주실 수 없으세요?"
"애들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버티는거지. 인생 재미 찾으려고 하면 되나?, 난 요즘이 제일 행복해. 와이프랑 아침마다 운동 다니고, 시간나면 맛있는 맛집 찾으러 다니고, 계속 요즘 같았으면 좋겠어"
정확한 나이는 70세, 60세가 정년이나 정년 이후, 계약직으로 다시 취업해서 이번에 진짜 마지막 정년을 맞이한 고객님이셨다. 일 그만둔지 한 2달이 지났는데, 10년 가량 더 일을 하니 애들은 다 커서 돈 들어갈 곳이 없고 고스란히 10년 모은 돈으로 아내분과 함께 즐기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아내분과 함께 탁구 동호회에 가입해 탁구를 치며, 등산도 함께 하고, 맛집도 돌아다니고 지금이 나의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시간이라고 말하는 고객님에게 인생이 재미없다고 한 내가 얼마나 우스워 보였을까.
"그럼 어르신,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가장 행복한 때는 언제였을까요?"
"음..아들이랑 사위랑 딸이 70세 은퇴할때 은퇴식을 열어준거?, 참 감동받았어."
그러고 보니 고객님에게 자녀에 대해서 묻지 않았다. 보통 이 정도 나이가 되면 자녀 얘기는 무조건 나오는데 재미있게 살고 있는 인생 얘기를 듣다보니 자녀는 과연 어떤 분인지 궁금했다.
"자녀가 어떻게 되세요"
"어, 아들 하나에 딸하나인데, 아들은 저기 xx 중공업에 다니고, 딸은 xx 사관학교 나와서 지금 중령이야"
참 경제적으로 힘든 시절, 아들이 유학을 가고 싶다며 돈을 달라고 했을 때, 부모입장에서 알겠다고 자신있게 얘기했지만 돈이 없어 내심 고민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공부하고 싶다는 아들에게 돈이 없어 못 보내준다는 얘기를 할 수 없는 것. 그래서 어렵게 주변에 돈을 빌려 유학을 보내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못보낸다는 생각 자체를 한 것이 너무 부끄럽다는 것이다. 그렇게 공부를 마치고 우리나라 최고의 기업에 취업을 했으니 말이다.
딸 얘기가 나오자 고객님의 눈은 더 커지고 말은 더 빨라졌다. 목적지에 다가오는데 딸 얘기를 몹시 해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그래서 속도를 늦추며 천천히 신호를 다 받으며 그 얘기를 들었다.
어려운 경제상황을 익히 눈치 챈 첫 딸은 일찍이 사관학교를 목표로 했다고 한다. 늘 전교 5등안에 들었던 수재였고 서울 유명 사립대 정도는 충분히 합격하고도 남을 성적임에도 불구하고 사관학교로 진학을 했다. 학비 무료에 취업까지 보장되었으니 이것만큼 좋은 선택지는 없다고 딸이 아버지를 설득했다고 한다.
사실, 이런 경우 부모의 입장은 어떨까?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는 것을 자녀가 미리 알고 부모를 설득할때 부모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 고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경제적 상황때문에 사관학교 간다고 했을때 마음이 어땠나요?" "어쩌긴...진짜로 돈이 없는데 받아들여야지. 슬퍼할 겨를도 없어. 내심 고맙다는 생각밖에 안했어, 사실 첫딸이 그렇게 대학을 가고 난 다음부터 경제적으로 숨통이 좀 트였으니깐 할말 없지 뭐.."
결과론적으로 사관학교 졸업 후 현재 영관급 장교로 아직도 현역 군생활을 하고 있으니 그때의 선택은 후회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사관학교 진학 후 전역을 했거나 크게 문제가 있었다면 부모 마음은 아마도 찢어지지 않았을까..
그때 내가 좀 더 희생하더라도 다른 대학을 보냈으면 어땠을까? 이런 후회가 죽을때까지 꼬리표 처럼 따라다녔을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주차를 하고, 인사를 건네는데 2만원을 건넨다. 대리비는 1,6만원..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잔돈 천원짜리를 찾으려고 하니 어르신께서 잔돈은 됐다며 가다가 커피나 한잔하라고 하신다. 정년 이후 10년이나 더 경제적 생활을 하셨다는 사실을 모르고 경제적으로 힘들었다는 얘기만 들었다면 아마도 잔돈을 드렸을 것이다. 그런데 정년 이후 10년을 더 일 하셨다니...이 정도 커피값이면 받아도 되지 않을까 싶어 주머니에 2만원을 고스란히 넣었다.
70세까지 고정적인 수입을 받으며 일하기가 어디 쉽나...
젊은 시절 열심히 살았던 덕택이 아니였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