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을증과 자살
토요일 낮 12시가 넘은 시각,
출발지가 삼성동 유흥주점으로 나왔다. 얼렁 콜을 수락하고 목적지에 도착해 고객에서 전화를 드렸다.
"지금 바로 앞에 도착했습니다."
"아 죄송한데, 지금 술이 좀 남았는데 조금 기다려 주실래요? 기다리는 비용 제가 지불하겠습니다. 들어오셔서 기다리시죠."
10초 정도 고민했다. 뭔가 사연이 있는 고객인건 맞는데, 얘기를 듣고 싶었으나 같은 술자리가 아닌 주점 안에서 기다리라는 것이 신경이 쓰였으며, 또한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만약 집에 가는 길이 짧았으면 그냥 미안하다며 콜 취소를 요청했을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대략 50분이나 가야하는 곳이 목적지였다. 그래서 일단 무슨 사연인지 가면서 듣기로 하고 기다리겠다고 대답하고 유흥주점 안으로 들어갔다.
유흥주점 안은 매우 화려했다. 입구에 들어가니 화려하게 화장을 한 30대 중반의 여성의 안내에 따라 텅빈 방안으로 들어갔다. 한 10분이 지났을 쯤 방으로 안내했던 여성이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선 "같이 술한잔 하자는데 괜찮으신가요?"라고 묻는다. 이런 경험은 흔하지 않기에 알겠다고 대답하고 고객에 있는 방으로 가서 고객과 마주하였다.
야구 모자에 후드티에 그리고 조거팬치를 입은 40대 초반 남성이었다.
테이블에는 누가봐도 고급스런 양주가 있었으며, 여성 분 2명과 함께 셋이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 같은데, 딱 1시간 후에 출발하시죠. 제가 기다린 비용은 지불하겠습니다."
"네, 뭐 저야 상관없는데 저도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 당황스럽긴 하네요. 그래도 재미있습니다."
그렇게 이어진 술자리에서 난생 처음 보는 나를 앞에 두고 살아온 인생에 대해 얘기하는 고객. 누군가에게 뭔가 개인적인 얘기를 늘어놓고 싶었나 보다.
일찍 사업에 성공해 100억대의 자산을 이뤘다고 한다. 지금 40대 초반인데 20대 초반부터 사업을 시작해 현금과 부동산만 100억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날 "이렇게 사는 것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더니 우울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유흥주점에 들락날락 거리면서 술을 마셨고 집에 들어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당연히 가정에 소흘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혼 요구를 받았다고 한다. 합의이혼을 하면서, 자녀의 교육을 생각해 갖고 있던 부동산 중 하나인 대치동 30평대 아파트와 현금 10억을 재산분할로 전 와이프에게 주고 혼자 된지 지금 5년이 되었단다.
그러는 동안 전 와이프는 재혼을 했고 현재 대치동에서 재혼한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단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아들이 보고 싶다고 연락이 올때마다 강남으로 넘어와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낸 뒤 헤어지는데 그 공허함에 집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술집에 들러 술을 먹는다는 것이다. 마침 금요일 아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집에 들여보내 주는데 아들이 집에 들어가기 싫다고 하는 바람에 한바탕 전 와이프랑 난리가 났던 모양이다. 학원 스케줄이 다 잡혀 있는 상황에서 계획이 어긋나게 되면 면접교섭권이라는 것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다툼이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현재 보유중인 자산과 재산분할 액수 등은 일반적인 서민들의 모습과는 매우 거리가 먼 고객이었다. 특히, 술집에서 나와 계산을 할 때 보니 술값이 상당했다. 일반 월급쟁이 한달 월급에 가까운 금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시불로 결제하는 모습에서 정말 많은 자산을 갖고 있는 듯 했다.
유흥주점에서 나와 차를 타고 가는데, 창밖을 바라보며 고객이 대뜸 나에게 묻는다.
"혹시 기사님은 죽고 싶다는 생각 해 본 적 있나요?."
"그런 생각 다들 한번씩 하지 않나요? 특히나 너무 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하잖아요."
"그럼 진짜 실행에 옮긴적 있나요?"
"네?, 어휴...그런 무서운 말씀을..."
"전 한번 있어요. 이혼 후 너무 힘들어서 수면제 먹고 차안에 연탄 피운 적 있어요. 눈 떠보니 대학병원 응급실이더군요. 그 이후, 사업 그만두고 지금은 그냥 아버지 회사에서 월급받으며 한량처럼 지내요.하하"
사실, 자살 시도 얘기를 듣고 등에서 식은땀이 났다. 내가 이제껏 했던 얘기들이 이 고객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내가 무슨말을 했던가 되짚어 보았다. 내가 뭔가 실수 한게 없나? 괜히 내가 그 얘기를 했나? 정신적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어줍잖은 조언을 해서 더 악화시키는건 아닌가? 이런 걱정이 들었다.
신호가 걸렸을 때쯤, 갑자기 뒷자석에서 불쑥 고객이 자신의 휴대폰을 보여주었다. 쿠팡 배달 입금표였다. 가끔씩 쿠팡배달을 하며 힘든 것을 잊고 있으며 삶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걸 본 순간 마음이 놓였다. 정신적 아픔을 겪고 있지만 이것을 이겨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착지에 다가올 무렵 내가 물었다.
"주말 뭐하세요? 날씨 너무 좋은데."
"일단, 강아지랑 산책할 예정이고요. 저녁에는 또 술 먹으로 나가야죠. 근데 보셨잖아요. 저 술 많이 안먹어요. 수다만 떠는 거에요. 그거라도 해야 잠이 오거든요."
"안 외로우세요? 재혼이나 아님 다른 연인을 만나는건 어때요?"
"전혀요. 지금이 너무 좋아요. 그리고 연애 이제 안해요. 누군가에 감정소모하기 싫어요. 제 행복을 위해 아이까지 포기하며 이혼했는데 또 다른 누군가에게 얽매이긴 싫습니다."
단호하게 말하는 그에게 확고한 신념이 있는 듯 했다.
주차장 주차 후,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나 자신도 살짝 당황스러웠다.
경제적 씀씀이에 놀랐고, 자살 시도 경험, 그리고 그가 어떻게 이를 버티고 있는지에 대한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매우 생소한 것들이었다.
같은 나이대의 자녀를 둔 부모 입장에서 자녀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 자녀에 대한 미안함.
그 모든 것들이 감정이입이 되면서 진정 그가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비록 고통스럽지만 5년이 지나고, 10년이 지났을때 과거를 되돌아 보면 "씨익~~~", 웃을 수 있는 추억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