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느리를 쉬게 놔두자.
"여보, 어머니가 친구들끼리 베트남 가신데. 내가 당신에게 돈 20만원 송금할테니 당신이 어머니에게 20만원 드려. 그리고 가서 재미있게 놀고 오라고 전화한통 해"
차에 타자마자 고객과 고객의 와이프와의 통화 내용을 듣게 되었다.
본인의 어머니가 해외 여행을 가는데 굳이 와이프에게 돈을 붙여 그 돈을 와이프가 본인의 어머니에게 주게 하는 상황이었다. 그냥 본인이 주면 될 것을 굳이 며느리가 줘야지 하는 상황. 그리고 본인이 아니라 며느리가 전화를 해야 하는 상황. 아마도 결혼한 사람이라면 이 상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에 늘 중간에서 힘들어 하는 남편 그리고 아들.
이 관계의 중재를 잘 해야만 가정의 평화가 유지된다
다행히 우리 고객님의 와이프 되시는 분은 남편의 부탁을 철저하게 잘 수행했다.
차가 출발하고 10분 남짓, 고객의 어머니로 부터 전화가 왔다. 블루투스 건너로 들리는 소리.
"아들아~XX 엄마가 여행 가서 친구들과 커피한잔 하라고 돈 보냈더라~. 내 친구들에게 자랑할게"
그제서야 허리를 펴는 우리 고객님.
백미러로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가 보고 싶어 본것은 아니지만 나도 모르게 감정이 이입되어 고객이 안심하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하하, 기사님 결혼하셨나요? 어휴, 참 힘드네요. 허허"
"사장님, 충분히 이해합니다. 아무래도 시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 보다는 며느리에게 용돈 받는게 더 좋으시겠죠. 그러고 보니 사장님 참 현명하신분 같아요."
위로 누난만 셋, 그리고 부모님께서 어렵게 얻은 막내 아들이라고 했다. 아들 사랑이 남달라 결혼부터 쉽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 쉰이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고부간의 갈등 때문에 명절때마다 두렵다는 고객님이셨다.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의사소통 중간 매개체로 살아 온 세월만 20여년, 이제는 두 사람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내려놓을만도 한데, 사소한 것 가지고 서로 다투고 나면 며느리는 남편에게 바가지 긁고, 시어머니는 아들에게 며느리에 대한 섭섭함을 토로하고 중간에서 아주 힘들다고 했다.
그래도 젊었을 때는 아내 편을 많이 들었다고 한다. 부모 보다는 같이 함께 한 이불 덥고 자는 와이프가 소중하게 느껴졌는데 어느 순간 어머니가 한번 크게 아프고 난 다음 부터 상황이 역전되었단다. 함께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가 참 안쓰럽게 느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와이프를 달래고 타일러 보았는데 살아온 과정속에 서로 쌓여진 앙금 때문에 쉽게 화해를 못했다는 것. 이제는 두 사람의 관계를 포기했고 고부간의 갈등을 자신의 운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인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한 친구가 생각났다.
결혼을 반대한 부모님과 연을 끊고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선택해 결혼을 한 고교 동창이다. 그 친구는 그 이후 8년간 부모와의 왕래가 없다가 친누나의 중재로 부모와 마주 앉았는데 여전히 와이프를 며느리로 인정하지 않는 부모님에게 실망해 또 단절..그렇게 15년을 부모와 단절한 상태에서 살았다. 물론 부모님에 대한 소식은 간간히 누나로 부터 들었지만 직접 얼굴을 보진 않았다. 중간 중간 부모가 물려줄 재산을 미끼로 고개 숙이고 용서를 구할 것을 아들에게 요구하였으나 이것 마저 거부하였다.
그러던 와중 건강이 악화된 어머니가 결국 두손 두발 들고 내 친구 아들을 먼저 찾았다. 결국 자식이기는 부모는 없었던 것이다. 지금은 아주 화목하게 서로를 인정하며 잘 살고 있다.
이렇게 보면 해피엔딩이지만 그 중간에 일어난 일들은 차마 입으로 담지 못할 것들이 많다.
부모는 일정 부분 자녀를 내려놓아야 한다. 성인이 되었으면 당사자들의 행복을 위해 거리를 둬야한다. "저 놈을 내가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아들의 불행은 시작이다.
나이가 들수록 외로울 수밖에 없다. 나의 얘기가 아니라 내 아들, 내 손자 얘기에 본인의 인생을 건다.
'우리 아들이~~, 우리 딸이~~' 이게 아니라 "내가~~, 우리 남편이~~' 라는 먼저 나와야 하는데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왜 이렇게 된 것일까? 우리 부모님 세대들은 먹고 살기 참 힘든 세대였기 때문이다. 나는 희생하더라도 내 자식은 만큼은 잘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자녀를 위해 본인의 삶을 희생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였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자녀를 내려 놓지 못하는 것이다. 다행히 요즘은 이런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 누군가에게 의지했던 인생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인생이 점차 중요해 지고 있다.
이제 그만 며느리를 내버려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