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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풍쟁이 사장님

골프의 달인

by 샤넬발망

출발지는 삼성역 인근의 스크린 골프장,

도착지는 봉천역..

콜이 잡힌 시간은 저녁 8시.


마침 저녁 10시 업무적으로 늦은 미팅이 있어 2시간 안에 삼성역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고민을 하다 수락을 했다. 그냥 느낌이 뭔가 재미있는 얘기 거리가 쏟아질 수 있을 것 같았다.

지인들과 스크린 골프 내기를 하고 20만원을 땄는데 그냥 갈 수 없어 저녁 식사 겸 반주를 한 고객님이다.

나도 내기 골프를 쳐 봐서 알지만, 돈 따고 그냥 집으로 가면 아마도 그 사람은 다시는 친구들과 같이 어울 릴 수 없을 것이다. 실제 내기 골프에서도 돈을 딴 사람이 그늘집과 라운딩 이후 저녁 만찬 비용으로 나간 돈이 골프를 통해 딴 돈 보다 훨 많은 경우가 수두룩하다.


그렇게 남부순환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 쯤,

난 마음이 급했다. 손님을 내려드리고 빨리 삼성역으로 돌아오려면 시간이 촉박했기 때문이다.

차선변경을 이리저리 하며 가다, 한번은 과속 단속카메라가 있는 곳에서 급정거를 하게 되었다.

그제서야 창밖만 바라보던 손님께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기사 양반, 좀 천천히 가도 괜찮아요. 저 급하지 않아요" 라고 말씀 하셨다.


그렇게 고객과 첫 대화가 시작되었다. 중국에서 오랜 시간동안 주재원 근무를 했고, 나이가 60이 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일을 하고 있는 분이셨다. 오늘 갑자기 필드모임이 취소가 되어 스크린만 4게임을 쳤다는데..사실 골프를 아주 좋아하는 사람들도 스크린 게임을 4게임이나 치는것은 매우 힘든일인데 환갑을 넘은 나이임에도 골프에 대한 사랑이 가득했다.


"사장님, 아직까지 경제생활도 하시고, 자녀도 다 키웠는데 홀가분하시겠어요."

"홀가분? 무슨 소리야. 33살 먹은 아들이 맨날 찾아와서 돈 달라고 하는데 미치겠어."

"네? 33살이면 이제 사회생활하고 어느 정도 자리 잡을때 아닌가요? 그런데 여전히 부모 손을 벌리나요?"

"살기 힘들잖어. 서울에 집 사기도 만만치 않고. 이 차 우리 아들이 타던 차야. 내가 새차를 사줬고."

그리고 보니 차가 벌써 20만 km를 넘었다. 연식도 연식이지만 달린 키로수를 보니 곧 폐차장으로 가도 이상하지 않을 자동차였다.


"어쩌겠어. 자식이 힘들다는데 부모가 보템이 되어줘야지. 아마도 대한민국 부모중에 자식이 돈 없다고 징징거릴때 돈 있으면서 못준다고 하는 부모는 한명도 없을껄?"

그렇게 달려, 목적지로 가는데, 분명히 대리 콜 어플상에 나와 있는 아파트가 아닌 다른 곳, 봉천동 고개 위로 더 올라가자고 하신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대리기사님들은 요금을 더 요구하는게 정상이다. 분명히 정해진 목적지보다 더 먼 거리를 가야하니간 상식적으로 요금을 더 내야하는게 맞다.

살짝 나도 짜증이 났다. 콜 앱상에 찍힌 목적지보다 한 10분을 더 이동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체감상)

그렇게 달려 봉천동 고개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어느 빌라 앞에 도착을 했다.


"기사 양반, 대리비 얼마야?"

"네 2만 5천원 입니다. 그런데 사장님, 원래 찍힌 목적지 보다 훨 많이 운행을 했는데..."

사실 별도의 팁이나 추가 요금을 바라고 한 말은 아니였다. 내가 대리를 하는 목적 자체가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고생하는 대리기사님들을 대표해서 아닌건 아니라고 말을 해야 했기 때문에 추가요금 얘기를 꺼냈다.


"에이, 젊은 친구가 왜 그래~. 얼마 더 운전했다고 별 차이 없구만. 여기 2만 5천원 있어요"

그렇게 2만 5천원 받고 봉천동 높은 언덕에서 지하철 역까지 내려오는데만 20분이 소요되었다.

오면서 했던 얘기들이 떠 올랐다.


'골프 내기해서 내가 500만원도 따봤어', '어휴 타당 5천원 짜리해서 누구 코에 붙여', '도박인거 아는데 내가 맨날 이기니깐 허허허'


사실 들을때는 정말 그런가? 하며 열심히 맞장구를 쳐 드렸다. 그러나 터벅터벅 고개를 내려오면서 깨달았다.

그 모든 얘기들이 허풍이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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