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하나의 사회생활 잘하는 비법이다.
대리앱을 켜고 기다리는 시간 동안 뭘 하느냐 이건 대리기사님마다 다르다.
어떤 분은 음악을 듣기도 하고, 어떤 분은 낮을 금액의 콜이라도 잡기 위해 하염없이 앱을 쳐다보고 있다.
오늘은 그냥 좀 늦게 나왔다. 퇴근 후 빈둥빈둥거리다가 10시쯤 혹시나 있을 콜을 잡기 위해 번화가 24시간 까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워낙 좋아하기도 했지만, 책 내용이 재미있어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명문대학에서 산업공학을 가르치는 교수님이 쓴 책인데, 원하는 것을 매 순간 성취해 내는 방법을 차근차근 풀어낸 책인데, 책은 두꺼웠지만 활자는 커서 눈에 쏙~~ 들어왔다. 독자와 저자가 대화하듯 자연스러운 문체 또한 너무나 마음에 들었다.
책에 빠져 있을 무렵, 알림이 떴다. 그런데 보통 좋은 콜은 1초 만에 사라진다. 그런데 이건 한 2초 정도 떠 있었다. 그 말은 똥 콜이라는 말이다. 잡고 나서 보니 그 이유를 알겠다. 번화가에서 아파트촌 주택가로 들어가는 콜이다. 이런 콜은 손님을 모셔들이고 다시 번화가로 나오는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아무도 잡지 않으려고 한다. 물론, 나 같은 초보 빼고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출발지가 지금 내가 있는 고수와 매우 가깝다는 것이다. 한 100미터를 걸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며, 손에 쥐고 있던 담배를 땅으로 던지고 발로 꽁초를 비비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매너는 가지신 분이라 뭔가 말을 걸어도 괜찮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10년이 넘은 소형 승용차였다. 담배냄새와 술 냄새, 그리고 타자마자 한숨.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가장의 일상이 아니겠는가? 거래처 사장님과 접대 자리였다고 한다. 그나마 오늘은 일찍 끝나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블루투스로 연결된 스피커를 통해 90년대 가요를 듣기 시작했다. 아.. 딱 내 나이구나. 외모가 나와 비슷한 나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음악을 듣고 확신을 했다.
이번에는 뭘로 대화를 이어갈까 고민을 하다, 눈앞에 보인 큰 모니터 화면이 보였다. 사실 구형 소형차에는 처음 보는 것이라. 그 물건에 호기심이 생겼다.
나 : 이건 뭔가요? 화면이 상당히 크고 깔끔하네요.
고객 : 아 이거 미러링 모니터라고 하는데 휴대폰과 연동되어서 네비도 나오고 음악도 나오는 것인데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 않아요. 가성비 좋습니다.
나 : 저도 한번 검색해 봐야겠습니다.
이런 대화 속에 대화가 끊어질 때쯤, 내가 갖고 있던 책을 보며 책을 좋아하냐고 고객이 묻는다.
콜을 기다리면서 할 것도 없어 책을 읽는다고 하니, 자기는 회사에서 매번 독서토론회를 하는데 참 그 시간이 힘들다고 한다. 어랏 회사에서? ceo가 관리직을 대상으로 서로 인문학 책을 소개하고 같이 책을 읽고 그 내용용에 대해 대화를 한다는 것인데, 본인은 인문학 보다 과학이나 수리, 수학 같은 책이 더 좋은데 인문학 책을 자꾸 추천하니 읽기가 싫다는 것이다. 아니 그럼 고객님. 인문학 책 말고 과학이나 다른 책을 추천하면 되지 않나요? 다 같은 책인데 꼭 인문학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잖아요...
ceo가 인문학을 좋아한다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인문학이 아닌 과학이나 수리 관련 책을 추천하는 게 어디 쉬겠는가? 고객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만했다. 지하주차장에 들어서니 주차공간이 없었다. 다른 대리 기사들이었으면 매우 난감했을 것이다. 그런데, 난 대화를 더 이어가고 싶어 이중주차 해도 된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꾸역꾸역 주차공간을 찾으며 책 읽기 관해 이야기했다. 어느 순간, 책 읽는 것이 직장생활가 사회생활이 되어 버린 우리 고객님.
아무리 재미있고 즐겁다 한들, 직장이라는 바운드리에 들어오면 모든 것이 스트레스가 되는 모양이다. 회사는 회사일뿐, 나의 노동력을 팔고 그에 대한 대가를 얻는 그곳, 회사는 그 이하, 이상도 아닌데 회사라는 공동체에서 책 읽기 모임조차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에 참 서글프다.
결국 이중 주차를 하고 1층으로 올라온 내내, 책에 대한 얘기는 이어갔다. "어떻게 그렇게 두꺼운 책을 읽을 수 있죠? 대단합니다."라고 말하는 고객님, 10시 넘게까지 이어진 영업술자리 보다 보름에 한번 있는 ceo 주제 독서토론회가 더 스트레스인 듯하여 안타까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