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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시작

대한민국 탈출의 시작

by 샤넬발망

토요일 낮시간, 까페에서 책을 읽으며 대리 앱을 켜고 기다렸다. 기다리다 보면 늘 예상치 못한 콜이 잡히긴 하니깐 말이다. 앱을 켜고 30분이 지났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명품 호텔 삼성역의 중심에 있는 서울파르나스 호텔에서 마포 대흥동으로 가는 콜이 떴다. 가격도 참 좋았다. 콜을 잡고 뛰기 시작했다. 거리는 약 1.8km 뛰었다 걸었다를 반복하다 500미터를 남겨두고 고객에서 전화를 걸었는데, 어떤 여성 고객분이 받았는데 목소리가 너무 멀쩡했다. 정확한 딕션으로 지하 3층으로 가면 남성분이 한분 계실 텐데 그분을 모셔다 주면 됩니다라고 말한다. 아, 술 취한 남성을 모셔다 주라는 의미구나 라고 생각하고 출발지에 도착, 그런데 고객 남성분도 술냄새 하나도 나지 않고 너무나 멀쩡한 모습으로 나를 맞이해 주셨다.


BMW 고급차량인데 딱 타자마자 백미러가 부서져 있어 너덜너덜 움직이고 있었다. 이거 뭐지?라고 하던 찰나, 남성 고객분이 사정 설명을 한다. 이 차량의 주인은 와이프의 고객분인데 어제저녁을 함께 먹고 대리를 불렀는데 대리기사분이 백미러를 만지다가 파손을 시켰고, 와이프가 차량 주인을 대신해 남편에게 이 차량을 공업사에 가져갈 것을 맡겼는데 아무래도 보험문제 때문에 대리기사를 불렀다는 것이다.

결국, 처음에 전화를 받았던 여성 고객과 차에 앉아 있는 남성은 서로 부부, 이 차량의 소유는 와이프의 고객차량인 것이다. 보험 문제 때문에 대리기사를 불렀다는 점에서 매우 현명한 판단이라고 엄지를 치켜세웠더니 혹시 모를 리스크를 대비하는 건데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참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시는 분 같았다.


얼핏 봐도 40대 초중반, 그런데 패션이 남다르다, 40대 패션이라고 하기에는 좀 세련되어 보였다. 야구모자에 바지는 요즘 유행하는 와이드핏이었고 점퍼 또한 비행점퍼로 한껏 멋을 내고 있었다. 토요일 대낮 차가 막힐 수밖에 없다. 당연히 대화를 안 하려고 안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역시나 하는 일은 패션 관련 일이었다. 아내는 금융 투자업을 하고 있는데 이 차의 주인이 요즘 공을 들이고 있는 투자자라고 했다. 5살 된 딸이 있으며 현재 용산에서 거주 중인 고객이었다. 자연스레 대화의 주제는 요즘 먹고사는 문제와 육아문제다. 나와 상황이 비슷했다. 부부가 모두 지방 시골에서 올라와 맞벌이를 하는데 애를 봐줄 사람을 찾는 게 항상 문제라는 점과 물가가 너무 올라 딸 하나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이 상상이상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것, 미성년자르 자녀를 키우는 40대 맞벌이 부부는 모두가 공감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문제는 바로 자녀 교육 문제.


그는 단호하게 미국이나 기타 영어권 국가로 탈출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저출산 국가에 앞으로 노령인구는 늘어나고 내 딸이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 확신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아내는 어차피 외국에서 일을 하다 한국으로 들어왔기에 적응하는데 문제가 없었고, 본인 또한 인터넷으로 패션 도매업을 이어가면 먹고사는 문제는 해결될 것이며, 자녀는 지옥 같은 대한민국 입시 전쟁에서 버틸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자녀에게 쏟아부을 교육비로 해외에서 가족과 함께 있는 시간을 택하겠다는 것이다.


내 월급 빼고는 모든 것이 오르는 인플레이션 세상,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 자체가 어느덧 사치가 되어버린 세상 40대 가장이라면 항상 고민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다. 그도 나도 경제적 자유가 있다면 하나 더 낳고 싶다며 서로 맞장구를 치면서 목적지 도착을 했다.


자동차 공업사에 도착하고 그가 먼저 내렸다. 난 휴대폰을 찾기 위해 10초 정도 뒤늦게 내려 인사를 건네려고 하는데 그가 보이지 않는다. 순간 기다려야 하나 그냥 가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 그가 편의점에서 캔커피 하나를 들고 뛰어온다. 너무 대화가 재미있었다면서 토요일에도 이렇게 투잡으로 일하는 것에 본인도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내가 오히려 고마웠다. 아.. 모든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이 똑같구나 나만 힘들지 않구나 따뜻한 위로를 받았기 때문이다.


아참, 차 백밀러를 고장 낸 대리기사님은 어떻게 되었냐고? 차주가 쿨하게 괜찮다고 했단다. 고의로 파손한 것도 아니고 실수인데 그냥 괜찮다면서 오히려 걱정하는 대리기사를 위로했다고 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겠지만 "곳간에서 인심 난다 "는 속담도 있듯, 경제적 여유가 크면 다른 사람에게 베풀 마음도 생각은 것이 맞는 듯하다. 아마 이 차량의 소유주분께서는 이렇게 평소에도 베풀면서 살았기에 지금의 부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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