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진다는 증거

18화. 서나린 — 도파민성 관계의 정점

by 담윤



서나린과의 관계는

늘 밝았다.


만나기 전부터 기분이 올라갔고

대화는 빠르게 튀었고

웃음은 쉽게 터졌다.


그 사람과 있으면

나는 잠깐씩

아주 생생해졌다.


마치 전원을 한 단계 올린 것처럼.



서나린은

반응이 빨랐고

표현이 풍부했고

감정의 진폭이 컸다.


내가 말을 던지면

바로 받아쳤고

침묵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 리듬이 좋았다.

아니, 중독적이었다.


나는 그 관계를

“잘 맞는다”라고 불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맞음이 아니라

흥분이었다.



서나린과 함께 있으면

나는 늘 최적화된 상태로 작동했다.


말은 더 재치 있게,

표정은 더 밝게,

반응은 더 빠르게.


그렇게 하면

관계의 온도가 유지됐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상태를 유지하는 비용이었다.


돌아오는 길마다

머리가 멍해졌고

집에 도착하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도파민은 높았고

전압은 급락했다.



이 관계의 핵심은

속도였다.


느리면 재미가 줄었고

간격이 생기면

온도가 식었다.


그래서 나는

연결을 계속 유지하려 애썼다.


연락의 타이밍을 계산하고

대화의 텐션을 관리하고

분위기가 처질 것 같으면

먼저 불을 붙였다.


그건 배려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유지 노동이었다.



서나린은 나를

끌어올렸다.


그리고 동시에

태웠다.


이 관계가 나쁜 건 아니었다.

오히려 강력했다.


문제는

내가 그 강도를

일상처럼 견디려 했다는 점이었다.


도파민형 관계는

축제에는 어울리지만

생활에는 과하다.



결정적인 건

감정의 잔상이다.


서나린과 헤어지고 나면

기분은 한동안 좋았다.


하지만 그 뒤에

빈자리가 왔다.


조용한 일상이

갑자기 심심해졌고

안정적인 관계들이

밋밋하게 느껴졌다.


이건 비교가 아니라

후유증이었다.


강한 자극 뒤에는

항상 무력감이 남는다.



그제야 이해했다.


서나린과의 관계는

나를 앞으로 데려간 게 아니라

위로 튕겨 올렸다가

같은 자리로 떨어뜨리는 구조였다는 걸.


높이 뛰었지만

멀리 가진 않았다.



나는 이 관계를 통해

하나를 배웠다.


강렬함은

깊이의 증거가 아니다.


재미와 친밀감은

같은 축에 있지 않다.


그리고

나에게 필요한 건

항상 더 센 자극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전압이었다.



서나린은

나를 살아 있게 만들었지만

나를 살게 하지는 못했다.


그 차이를 알게 된 순간

나는 이 관계를

미화하지 않게 되었다.


필요했던 경험이었고

끝나야 했던 관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