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진다는 증거

19화. 윤태하 — 생각이 들리는 사람

by 담윤





윤태하는

멀어질 사람도 아니고

가까워질 사람도 아니다.


이미 한 자리에 있다.


남편의 가장 오래된 친구라는 이유로,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앞으로도 계속 마주칠 사람.


그래서 더 중요했다.

이 사람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윤태하와 있으면

관계가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서지도 않는다.


대신 정지한 채 유지된다.


그는

내 일상에 끼어들지도 않고

내 생각을 방해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와 나눈 대화는

집에 와서도 끝나지 않는다.


감정은 남지 않는데

생각만 남는다.



윤태하의 말은

항상 반 박자 늦다.


즉각적인 반응도 없고

감정적인 결론도 없다.


그래서 그의 말은

대화 중보다

대화가 끝난 뒤에 작동한다.


그 사람을 만나고 나면

나는 혼자 있는 시간에

자꾸 문장을 되새긴다.


아, 그 말은 이런 뜻이었구나.

저 질문은 나를 향한 게 아니었구나.


윤태하는

감정을 건드리지 않고

사고만 건드리는 타입이다.



이 관계에서

나는 특별히 조심하지 않아도 된다.


잘 보이려고 애쓸 필요도 없고

분위기를 띄울 책임도 없다.


윤태하는

대화의 온도를

항상 중간에 둔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그래서 나는

이 사람 앞에서

‘어떤 나’가 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건

이 사람이 내 삶에

계속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이 관계를

의미로 소비하지 않기로 했다.


해석하지도,

확대하지도,

특별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윤태하는

나에게 깨달음을 주는 인물도 아니고

상처를 남긴 인물도 아니다.


그는

내 생각이 제 속도로 흘러가게 두는 사람이다.



이건 안정형과도 다르고

도파민형과도 다르다.


윤태하와의 관계는

충전도 아니고 소모도 아니다.


정렬에 가깝다.


흐트러진 생각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상태.


그래서 이 관계는

없어지면 허전하겠지만

있다고 해서 흔들리지는 않는다.



나는 이 사람을

정리할 필요도,

정의할 필요도 없다.


그저

같은 공간에 놓여 있는

하나의 기준점처럼 두면 된다.


붙잡지 않아도 멀어지지 않고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관계.


윤태하는

그런 사람이다.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면

자연스럽게 대비가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