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화. 나를 오해해온 시간에 대한 이해
회복의 끝에서
가장 늦게 도착한 건
자기 용서였다.
나는 오랫동안
나를 오해한 채로 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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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오해는 단순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나는 꾸준하지 못하다.
나는 관계를 잘 못한다.
나는 버티지 못한다.
그 말들은
설명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판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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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졌던 시기마다
나는 원인을
나의 성격에서 찾았다.
상태가 나빠진 이유도,
관계가 어긋난 이유도,
일상이 무너진 이유도.
모든 걸
‘나라는 사람’으로 묶어버렸다.
그게 가장 빠른 해석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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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회복을 거꾸로 따라오며
나는 알게 됐다.
그 시기들의 나는
나쁜 선택을 한 게 아니라
작동 불가능한 상태에 있었다.
전압이 낮았고,
연결은 끊겼고,
과부하는 이미 임계치를 넘었다.
그 상태에서의 반응을
성격이라고 부른 건
너무 잔인한 단순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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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동안
상태를 평가했고,
기능을 인격으로 바꿔 읽었다.
느리면 무능했고,
피하면 회피형이었고,
버티지 못하면 의지가 약하다고 믿었다.
지금 보면
모두 상태의 언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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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오해해온 시간은
그래서 길었다.
누구보다
내가 나를 가장 오래
잘못 읽었다.
그 오해는
나를 몰아붙였고,
더 빠르게 망가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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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그 시절의 나를
다르게 본다.
잘못된 사람이 아니라
도움 없이 버티던 사람.
설명서도,
완충 장치도,
회복 경로도 없이
그냥 서 있던 사람.
그게
그때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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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는
변명이 아니다.
책임 회피도 아니다.
이해는
정확한 원인을
제자리에 놓는 일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비난이 들어갈 공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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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과거의 선택들을
다시 판결하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그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했다.
틀린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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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해가 생기자
기이하게도
후회가 줄었다.
후회는
항상 오해 위에서 자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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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오해해온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시간을 이해로 덮을 수는 있다.
그렇게 덮인 과거는
더 이상 나를 끌어내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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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과거의 나를
교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 대신
정확히 읽는다.
그리고 말해준다.
그때의 너는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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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까지 오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다음 문장을 말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나를 오해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