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만약 내가 윤리를 버린다면, 나는 어떻게 될까?
이 질문은
상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현실적인 질문이다.
윤리를 버린다는 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겠다는 뜻이 아니다.
폭력적이 되거나,
잔인해지거나,
아무것도 믿지 않게 되는 것도 아니다.
윤리를 버린 삶은
대부분 이렇게 시작한다.
“이번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지금은 어쩔 수 없잖아.”
이 말들은
윤리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저 잠시 미뤄둘 뿐이다.
그래서 나는
윤리를 버린 삶을
극단으로 상상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가장 흔한 모습으로 떠올려봤다.
조금 더 계산적인 사람.
조금 덜 설명하는 사람.
조금 더 빠르게 결정하는 사람.
그 정도면
충분히 윤리를 버린 상태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면
분명 편해질 것이다.
결정은 단순해지고,
사람을 대할 때
굳이 모든 감정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관계는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 된다.
이 사람에게는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이 상황에서는
어떤 표정이 가장 효율적인지,
굳이 정직하지 않아도 되는 지점은 어디인지.
이 모든 것이
경험으로 축적된다.
나는 아마
꽤 잘 적응했을 것이다.
윤리를 버리는 데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하지 않다.
반복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그 반복은
대개 성공으로 보상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윤리를 버린 선택은
하나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선택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 속였으면
다음에도 같은 이야기를 유지해야 하고,
한 번 책임을 미뤘으면
그 구조를 계속 관리해야 한다.
윤리를 버린 삶에서
가장 먼저 늘어나는 건
자유가 아니라 관리다.
말의 관리,
표정의 관리,
관계의 관리,
기억의 관리.
처음에는
이 정도쯤이야 싶다.
효율을 얻었으니까.
하지만 어느 순간
이 질문이 떠오른다.
“나는 지금
어디까지 내려와 있는 걸까.”
윤리를 버린 삶에는
명확한 경계선이 없다.
그래서 멈추기도 어렵다.
어디까지가
괜찮은 선택이고,
어디부터가
돌아오기 어려운 선택인지
누가 정해주지 않는다.
그래서 기준은
늘 상황에 맞게
조정된다.
그리고 그 조정은
대개 아래로 향한다.
이 지점에서
나는 스스로에게
아주 솔직한 질문을 던져봤다.
이렇게 살아가는 내가
아이들 앞에서
어떤 말을 하게 될까.
“엄마는 어른이라서 그래.”
“이건 사회생활이야.”
“너는 아직 몰라도 돼.”
이 말들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순간을
상상해봤다.
윤리를 버린 삶이
나를 가장 불편하게 만든 지점은
그 부분이었다.
윤리를 버린 내가
아이에게
정직하지 못해지는 게 아니라,
아이에게
정직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는 점.
그때 깨달았다.
윤리를 버리는 선택은
나 혼자만의 선택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걸.
그 선택은
내 말의 범위를 바꾸고,
아이에게 허용되는 질문의 범위를
조용히 줄여버린다.
윤리를 버린 삶은
분명 효율적이다.
하지만 그 효율은
언제나
다음 선택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다음 선택에는
이전보다
조금 더 많은 침묵이 필요하다.
이 시뮬레이션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다음 회차에서는
윤리를 버린 선택이
왜 그렇게 자연스럽게
사람을 통제의 방향으로
이끄는지 살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