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를 선택하면, 무엇을 잃지 않게 될까

얻는 것보다 지켜지는 것들에 대하여

by 담윤

14화



윤리를 선택한다고 해서

눈에 보이는 보상이 따라오지는 않는다.


더 빨라지지도 않고,

더 편해지지도 않고,

더 많이 가지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윤리는

늘 손해처럼 보인다.

특히

무언가를 얻기 위해

경쟁하고 비교하는 세상에서는 더 그렇다.


하지만 이 연재를 쓰면서

나는 질문을 조금 바꾸게 되었다.


윤리를 선택하면

무엇을 얻게 될까가 아니라,

무엇을

끝내 잃지 않게 될까로.


윤리를 선택한 삶은

무언가를 더하지 않는다.

대신

어떤 것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먼저 사라지지 않는 건

말의 일관성이다.


어디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어디에서는 다르게 말해야 하는 상태.

누구에게는 설명하고,

누구에게는 숨겨야 하는 이야기.


윤리를 선택하면

이 분리가 필요 없어진다.

같은 말을

같은 기준으로

계속 사용할 수 있다.


그건

생각보다 큰 안정감이다.


다음으로 사라지지 않는 건

기억의 부담이다.


무엇을 말했는지,

어디까지 말했는지,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계속 관리하지 않아도 된다.


윤리를 어긴 선택은

기억을 요구한다.

윤리를 지킨 선택은

기억을 맡길 필요가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아이 앞에서

침묵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아이에게

“그건 말할 수 없어”

“그건 나중에”

“너는 신경 쓰지 마”


이 말을

습관처럼 쓰지 않아도 된다.


윤리를 선택하면

아이에게

모든 걸 설명해야 하는 건 아니다.

다만

설명을 회피해야 할 이유가

줄어든다.


나는

아이에게

완벽한 엄마로 남고 싶은 게 아니다.

다만

아이 앞에서

말을 고르느라

멈칫거리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 뿐이다.


윤리는

사람을 훌륭하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

사람을

덜 분열되게 만든다.


안과 밖이 다르지 않고,

집 안과 사회가 완전히 갈라지지 않고,

아이에게 쓰는 언어와

어른에게 쓰는 언어가

극단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그 일관성은

눈에 보이는 성취는 아니지만,

삶의 밀도를 바꾼다.


윤리를 선택하면서

나는

어떤 기회를 놓쳤을지도 모른다.

어떤 효율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어도

이것들은

잃지 않았다.


아이에게

같은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자격,

아이의 질문을

피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

그리고

내 선택을

양지에서 말할 수 있는 상태.


윤리는

이득을 주지 않는다.

하지만

이 상태를

지켜준다.


그래서 나는

이제 윤리를

착한 선택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윤리는

내가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남겨두는 선택이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연재의 질문을

한 번 더 정리해보려 한다.


왜 나는

이 모든 시뮬레이션을 거쳐서도

결국 윤리를

버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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