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해서가 아니라, 설명할 수 있는 선택이었기 때문에
15화
이 지점까지 오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었다.
왜 끝까지
윤리를 버리지 않았을까.
효율을 알았고,
통제의 구조도 이해했고,
숨김이 왜 작동하는지도 보았고,
경쟁에서 이기는 방법이
얼마나 명확한지도 이미 알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선택을
끝내 남겨두었을까.
처음에는
아이들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에게 떳떳하고 싶어서,
아이에게 거짓말을 가르치고 싶지 않아서.
그 이유는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이를 핑계로 삼는 순간,
이 선택은
감정의 영역으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나는 윤리를
감정으로 선택한 게 아니었다.
나는
끝까지 시뮬레이션해본 뒤에도
남아 있던 선택을
붙잡고 있었을 뿐이다.
윤리를 버리면
무엇을 얻는지는
이미 충분히 보였다.
빠름,
편함,
유리한 위치,
설명을 줄일 수 있는 자유.
하지만 그 선택은
항상 조건을 달고 있었다.
어디까지 말할 수 있는지,
누구에게는 숨겨야 하는지,
언제는 예외가 되는지.
윤리를 선택하지 않는다는 건
결국
선택마다
기준을 다시 계산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 계산을
계속하고 싶지 않았다.
윤리를 선택한 이유는
착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착해 보일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이었다.
윤리는
나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대신
같은 말을
계속 쓰게 만든다.
아이에게 쓰는 말과
어른에게 쓰는 말이
극단적으로 달라지지 않게 하고,
집 안의 기준과
밖의 기준이
완전히 분리되지 않게 한다.
그 일관성은
눈에 띄는 성과는 아니지만,
삶을 덜 피곤하게 만든다.
윤리를 버리면
설명은 줄어들지만,
관리는 늘어난다.
윤리를 선택하면
설명은 늘어나지만,
관리는 줄어든다.
나는
설명을 선택했다.
설명할 수 있다는 건
항상 옳다는 뜻이 아니다.
다만
숨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내 선택을
양지에서 말할 수 있고,
그 선택을
아이에게도
같은 언어로 설명할 수 있고,
다른 사람에게도
그대로 권할 수 있는 상태.
그게
내가 끝내 내려오지 않은 기준이었다.
그래서 나는
윤리를 선택했다.
착해서도 아니고,
이상적이어서도 아니고,
대가를 몰라서도 아니다.
모든 대가를
한 번쯤 계산해본 뒤에도
남아 있던 선택이었기 때문에.
이 선택은
나를 특별하게 만들지 않는다.
다만
나를
분열되지 않게 만든다.
그리고 그 정도면,
내게는
충분했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선택이
왜 항상 소수의 선택처럼 보이는지,
그리고
그 소수가
어떤 자리에 서게 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