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리는 왜 소수가 되는 선택일까?

효율의 시대에 남는 기준들

by 담윤

16화





윤리는

언제나 소수의 선택처럼 보인다.


다수는

굳이 불편한 길을 택하지 않고,

굳이 설명이 필요한 선택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윤리를 선택한 사람은

종종 이상한 사람처럼 보인다.


“왜 그렇게까지 해?”

“너무 피곤하게 사는 거 아니야?”

“그 정도는 다들 넘어가.”


이 말들은

비난이라기보다

현실 감각에 가깝다.

그리고 실제로도

윤리는 비효율적이다.


윤리는

속도를 늦추고,

질문을 늘리고,

선택의 폭을 좁힌다.


그래서 윤리는

경쟁의 판에서

늘 불리하다.


효율이 기준이 된 사회에서는

빠른 사람이 이기고,

유연한 사람이 살아남고,

설명을 줄일수록 능력처럼 보인다.


이 구조 안에서

윤리는

자연스럽게 탈락 후보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리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윤리는

모두를 위한 기준이 아니라,

스스로를 유지하기 위한 기준이기 때문이다.


윤리는

집단을 효율적으로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개인을 분열되지 않게 만든다.


효율은

상황마다

다른 선택을 요구한다.

그래서 사람은

상황마다

다른 얼굴을 쓰게 된다.


윤리는

그 변형을

최소화하려는 선택이다.


그래서 윤리는

다수가 되기 어렵다.

다수가 되려면

상황에 따라

기준을 바꿀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소수’라는 말을

다르게 보게 되었다.


윤리를 선택한 사람이

적어서 소수가 아니라,

윤리를 유지하는 데

에너지가 들기 때문에

소수로 남는다는 것.


윤리는

의지가 아니라

지속성의 문제다.


한 번의 착한 선택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같은 기준을

계속 유지하는 건

아무나 하지 못한다.


그래서 윤리는

눈에 띄는 순간보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더 선명해진다.


그리고 바로 그 지점에서

윤리는

항상 소수가 된다.


나는

윤리를 선택한 사람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다른 계산을 하지 않기로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더 이길 수 있는 계산,

더 숨길 수 있는 계산,

더 유리해질 수 있는 계산.


그 계산을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기로 한 선택.


윤리는

포기의 언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유지의 언어에 가깝다.


무엇을 더 얻을지보다,

무엇을 끝까지 잃지 않을지를

정하는 선택.


그래서 윤리는

소수가 된다.


모두가

같은 속도로 달릴 때,

혼자 속도를 줄이는 선택은

언제나 눈에 띈다.


하지만 그 속도 조절 덕분에

끝까지

자기 언어를 잃지 않는 사람이

남는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소수의 선택이

아이들에게

어떤 기준으로 전달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기준을

강요하지 않고 남길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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