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유 불가능한 선택이 남기는 흔적
13화
어떤 선택들은
말할 수는 있다.
숨기지 않고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선택을
아이에게
“너도 그렇게 해도 돼.”라고
말할 수는 없다면,
그 선택은
이미 절반만 공개된 것이다.
나는 이 지점에서
‘말할 수 있음’과
‘권할 수 있음’이
전혀 다른 차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말할 수 있다는 건
사실의 문제다.
이미 일어난 일을
어떻게든 설명할 수는 있다.
하지만 권할 수 있다는 건
기준의 문제다.
그 선택이
앞으로도 반복되어도 괜찮은지,
다른 사람에게도
같이 적용되어도 괜찮은지의 문제다.
그래서
아이에게 말할 수는 있지만
권할 수 없는 선택은
늘 어딘가 불안정하다.
그 선택은
과거에만 머물러야 하고,
현재의 설명으로만 존재해야 하며,
미래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때 아이는
아주 미묘한 차이를 감지한다.
엄마가 말은 하지만,
그 선택을
자랑스럽게 말하지 않는다는 것.
설명은 하지만,
기준으로 삼지는 않는다는 것.
아이들은
이 차이를
생각보다 정확하게 느낀다.
그래서 아이는
그 선택을
‘이해해야 할 일’로 받아들이지 않고,
‘예외로 분류해야 할 일’로 저장한다.
문제는
이 예외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할 수 없는 선택은
늘 예외로 남아야 하기 때문에,
다음 선택에서도
비슷한 예외를 요구한다.
“그때는 괜찮았잖아.”
“그 상황이랑 지금이랑 뭐가 달라?”
이 질문 앞에서
설명은 점점 길어지고,
기준은 점점 흐려진다.
윤리를 어긴 선택이
특히 아이 앞에서
불편해지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이다.
아이에게
기준을 가르치지 못하고,
맥락만 설명하게 되기 때문이다.
맥락은
상황에 따라 바뀌지만,
기준은
반복을 견뎌야 한다.
권할 수 없는 선택은
반복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결국
그 선택은
“그때는 어쩔 수 없었어”라는 말로
정리된다.
이 말은
설명을 끝내는 말이지만,
동시에
기준을 포기하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아이에게
완벽한 기준을 주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아예 기준이 없는 설명을
남기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선택을 할 때
이 질문을
자주 붙잡게 되었다.
이걸
아이에게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아이에게
같이 권할 수 있는가?
이 두 질문에
모두 “그래”라고 답할 수 없다면,
그 선택은
나에게도
불편한 선택일 가능성이 크다.
윤리는
이 질문을
끝까지 남겨둔다.
윤리는
선택을 편하게 만들지 않는다.
대신
선택을
아이의 시간까지
연결시킨다.
그래서 윤리는
언제나
불편한 기준으로 남는다.
하지만 나는
이 불편함이
아이에게
가장 솔직한 언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 회차에서는
이 질문으로 이어가려 한다.
윤리를 선택한 사람은
무엇을 얻는 대신,
무엇을
끝내 잃지 않게 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