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함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믿었던 가설
12화
이 질문은
처음엔 꽤 단순하게 느껴졌다.
윤리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돈을 벌었다고 해서,
그 사실을 꼭 아이에게 숨겨야 할까.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건 아닐까.
아이에게
“엄마가 이런 선택을 했어.”
“완벽한 선택은 아니었어.”
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충분하지 않을까.
나는 한동안
이 가설을 진지하게 붙잡고 있었다.
윤리의 문제는
숨김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라고,
정직함이 있다면
어느 정도는 상쇄될 수 있다고.
하지만 이 생각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자
쉽게 무너졌다.
문제는
아이에게 말할 수 있느냐가 아니었다.
아이에게 말한 그 이야기를
아이 스스로가
다른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느냐였다.
아이에게
엄마의 선택을 설명할 수는 있어도,
그 이야기를
아이의 친구에게도,
다른 어른에게도
같은 말로 전할 수 없다면
그 솔직함은
완전한 솔직함이 아니다.
그 순간
솔직함은
조건부가 된다.
“이건 우리끼리만 아는 거야.”
“밖에서는 말하지 마.”
“상황이 복잡해서 그래.”
이 말들이
자연스럽게 따라붙는 순간,
솔직함은
이미 다른 성질의 것이 된다.
나는 이 지점에서
내 가설이 틀렸다는 걸 알았다.
윤리적이지 않은 선택은
솔직함으로 덮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공유 범위를
조정해야만 유지되는 선택이었다.
아이에게
사실을 말할 수는 있지만,
그 사실을
아이 스스로가
자유롭게 말할 수 없다면,
그건 솔직함이 아니라
역할 분담에 가깝다.
아이에게
비밀을 맡기는 구조.
그리고 그 구조는
아이에게
의도하지 않은 책임을 준다.
누구 앞에서
어디까지 말해도 되는지,
어떤 질문에는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지.
아이에게
그 판단을 맡기는 순간,
나는 선택의 비용을
아이에게 넘기게 된다.
윤리적이지 않은 돈의 문제는
그래서
돈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 선택이
아이의 말과 침묵을
어떻게 조직하는지의 문제였다.
나는 아이에게
엄마의 선택을
이해시키고 싶었던 게 아니라,
아이를
설명에서 제외시키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하지만 윤리적이지 않은 선택은
아이를
자연스럽게 설명에서 밀어낸다.
“이건 어른들 문제야.”
“너는 신경 쓰지 마.”
“엄마가 알아서 할게.”
이 말들은
아이를 보호하는 말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아이를
사고의 주체에서
조용히 제외시키는 말이기도 하다.
나는
아이에게
모든 걸 말하고 싶은 엄마는 아니다.
하지만
아이에게만
다른 기준을 적용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 질문은
결국 이렇게 바뀌었다.
윤리적이지 않은 돈을 벌었다는 사실이
숨겨야 할 일이냐가 아니라,
그 사실을
아이 혼자만
감당해야 하는 구조가 되느냐의 문제로.
그 지점에서
윤리는 다시
다른 얼굴로 나타났다.
착함도,
도덕적 우월도 아닌,
아이에게
같은 언어를 남길 수 있느냐의 문제로.
다음 회차에서는
이 질문을 더 밀어붙여 보려 한다.
아이에게 말할 수는 있지만,
아이에게
그 선택을
권할 수는 없다면
그건 어떤 선택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