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30년 억울함을 씻어준 1학년 겨울방학의 통지표
"어머님, 똘이 담임입니다.
잠시 통화 괜찮으실까요?"
초등학교 입학식의 설렘이
채 가시기도 전인 3월.
내 핸드폰은
시한폭탄처럼 울려댔다.
그것도 매일 오후 2시만 되면.
"똘이가 오늘 수업 시간에
돌아다녀서요."
"친구 지우개를 뺏어서
장난을 쳤어요."
"집중을 잘 못 하는 것 같아요."
수화기 너머 선생님의 목소리는
친절했지만,
그 내용은 매일 나를 옥죄어왔다.
남들은 "남자애라 그래"
"크면 다 좋아져"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길지 몰라도,
나는 직감했다.
이건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가 아니다.
나를 닮았다면,
이건 '기질'의 문제다.
내가 겪었던 그 억울한 학창 시절.
매일 혼나고, 지적받고,
"너는 왜 그러니"라는 말을
꼬리표처럼 달고 살았던 날들.
내 아이에게만큼은
그 꼬리표를 물려줄 수 없었다.
남편은 "애가 좀 활발한 거지"라며
지켜보자고 했지만,
나는 단호했다.
"아니, 지금 잡아야 해.
내가 겪어봐서 알아.
이건 혼낸다고 되는 게 아니야."
나는 망설임 없이
아이 손을 잡고 병원으로 향했다.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된 시점이었다.
빠른 진단, 그리고 약물 치료.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약을 먹이냐"고
걱정 어린(혹은 비난 섞인)
참견을 하기도 했지만,
나는 내 판단을 믿었다.
아니, '데이터'를 믿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치료를 시작하고 며칠 뒤,
매일 오후 2시마다 울리던
그 공포의 전화벨 소리가
거짓말처럼 뚝 끊겼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오지 않았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을
살면서 그때처럼
절실하게 느껴본 적이 없다.
그 고요함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그리고 시간이 흘러
1학년 2학기 겨울방학식 날.
아이가 받아온
생활통지표를 펼친 순간,
나는 그만 주저앉아 펑펑 울고 말았다.
거기에는 거짓말처럼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학기 초에 비해
교우 관계가 매우 개선되었으며..."
"1학기에 비해 수업 태도가
많이 개선되었으며..."
"사물함, 서랍 등을
깔끔하게 정리하고자 꾸준히 노력한 결과
주변 환경이 많이 정돈됨."
글자 하나하나가
살아서 내 가슴에 박혔다.
그건 단순히
내 아이에 대한 칭찬이 아니었다.
30년 전,
산만하다고, 정리 못 한다고,
노력이 부족하다고 혼만 났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건네는
뒤늦은 사과이자 위로였다.
'거봐, 내 잘못이 아니었어.'
'도움을 받으면 이렇게 잘할 수 있는 아이였어.'
'나도... 이런 칭찬이 듣고 싶었어.'
아이의 통지표를 끌어안고
나는 생각했다.
내가 겪은 30년의 시행착오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엄마가 조금 예민하게,
조금 빠르게 움직인 덕분에
너는 엄마가 걷던
가시밭길을 걷지 않게 되었으니.
이 통지표는
내 인생 최고의 보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