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이라는 오진 뒤에 숨어있던, 나의 진짜 이름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아셨어요?"
"성인 ADHD인 걸 어떻게 눈치채셨어요?"
내 아이(똘이)의 기질을
어떻게 그리 빨리 알아챘느냐는 질문이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저는... 1년이나 돌고 돌아서 찾았거든요."
나의 20대 끝자락은
지옥과도 같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아이가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떠났다.
채 피지도 못한 아이를 보내고,
내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그 무렵,
위로가 필요했던 나에게
비수처럼 날아온 지인의 말.
"......"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그 잔인한 말들이
가슴에 대못처럼 박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우울증이라는 시커먼 파도가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나는
무너질 수 없었다.
내 뱃속에는
새 생명(셋째)이 자라나고 있었으니까.
약을 먹을 수도 없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배 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나는 이를 악물고
맨정신으로 그 고통을 버텼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도
싸움은 계속됐다.
백일.
딱 백일만이라도 내 젖을 먹이자.
그게 내가 떠난 둘째에게 못다 한 사랑을
셋째에게 갚는 길이라 믿었다.
매일 밤 울음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우울감을,
나는 젖을 물리며 꾸역꾸역 삼켰다.
그리고 백일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음을 깨달았다.
"단유 할래. 나 이제 병원 갈래."
나는 도망치듯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선생님, 저 너무 힘들어요. 그냥 다 놓고 싶어요."
진단명은 역시나 '우울증'.
그렇게 긴 치료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상했다.
약을 먹고 상담을 하면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슬픈 감정은 옅어졌는데,
머릿속에 낀 '안개'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짙어지는 것 같았다.
방금 들은 얘기도 까먹고,
글을 읽어도 내용이 머리에 안 들어왔다.
마치 치매가 온 사람처럼
심각한 인지 저하가 계속됐다.
"선생님, 우울한 건 좀 나아졌는데요.
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갈까요?
자꾸 멍하고, 실수를 해요."
1년 동안
약을 바꾸고, 용량을 늘리고,
조합을 바꿔봐도
그 답답한 '멍함'은 잡히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료가 제자리걸음을 걷던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이게 우울증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선생님...
혹시 제가 ADHD는 아닐까요?"
그 말에 선생님은
잠시 멈칫하더니,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뒤,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아... 제가 뭘 좀 놓친 것 같습니다.
어머님 말씀이 맞을 수도 있겠어요."
다음 진료 때 진행한 검사.
결과는 내 예상대로였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가려,
그 밑에 숨어있던 진짜 암초를
1년 만에 찾아낸 것이다.
진단을 받고, 약을 바꿨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선명한 세상'을 만났다.
머릿속을 꽉 채우던 안개가 걷히고,
소음이 뚝 끊겼다.
내가 멍청해진 게 아니었다.
그저 뇌의 스위치가
잠시 꺼져있었을 뿐이었다.
그날 나는 병원을 나오며 다짐했다.
내가 1년이나 빙빙 돌아왔기에,
내 아이만큼은 헤매게 하지 않겠노라고.
엄마가 겪은 시행착오를
너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노라고.
그래서 나는
아이의 작은 신호(똘이의 멍한 눈빛)를 보자마자
주저 없이 병원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남들은 "너무 빠르다"고 했지만,
나는 알았다.
이건 빠른 게 아니라,
가장 정확한 타이밍이라는 것을.
하늘에 있는 둘째가
나를 병원으로 이끌었고,
1년간의 답답함이 나를 공부하게 만들었다.
그 모든 고통의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와 내 아이를 구했다.
지금 나는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며 생각한다.
그때 내가
"혹시 ADHD 아닐까요?"라고 묻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안개 속을 걷고 있었을까.
질문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우리 가족을 지킨
가장 큰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