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셋을 낳고서야 비로소 내가 보였다

우울증이라는 오진 뒤에 숨어있던, 나의 진짜 이름

by 담윤

사람들은 묻는다.

"어떻게 그렇게 빨리 아셨어요?"

"성인 ADHD인 걸 어떻게 눈치채셨어요?"

내 아이(똘이)의 기질을

어떻게 그리 빨리 알아챘느냐는 질문이다.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한다.

"저는... 1년이나 돌고 돌아서 찾았거든요."

나의 20대 끝자락은

지옥과도 같았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둘째 아이가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떠났다.

채 피지도 못한 아이를 보내고,

내 세상은 무너져 내렸다.

그 무렵,

위로가 필요했던 나에게

비수처럼 날아온 지인의 말.

"......"

사람이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 그 잔인한 말들이

가슴에 대못처럼 박혔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우울증이라는 시커먼 파도가

나를 집어삼키려 했다.

하지만 나는

무너질 수 없었다.

내 뱃속에는

새 생명(셋째)이 자라나고 있었으니까.

약을 먹을 수도 없었다.

슬퍼할 겨를도 없었다.

배 속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

나는 이를 악물고

맨정신으로 그 고통을 버텼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도

싸움은 계속됐다.

백일.

딱 백일만이라도 내 젖을 먹이자.

그게 내가 떠난 둘째에게 못다 한 사랑을

셋째에게 갚는 길이라 믿었다.

매일 밤 울음소리와 함께

찾아오는 우울감을,

나는 젖을 물리며 꾸역꾸역 삼켰다.

그리고 백일이 지난 어느 날.

나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음을 깨달았다.

"단유 할래. 나 이제 병원 갈래."

나는 도망치듯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았다.

"선생님, 저 너무 힘들어요. 그냥 다 놓고 싶어요."

진단명은 역시나 '우울증'.

그렇게 긴 치료가 시작됐다.

그런데 이상했다.

약을 먹고 상담을 하면서

죽고 싶을 만큼 힘들었던

슬픈 감정은 옅어졌는데,

머릿속에 낀 '안개'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짙어지는 것 같았다.

방금 들은 얘기도 까먹고,

글을 읽어도 내용이 머리에 안 들어왔다.

마치 치매가 온 사람처럼

심각한 인지 저하가 계속됐다.

"선생님, 우울한 건 좀 나아졌는데요.

왜 이렇게 머리가 안 돌아갈까요?

자꾸 멍하고, 실수를 해요."

1년 동안

약을 바꾸고, 용량을 늘리고,

조합을 바꿔봐도

그 답답한 '멍함'은 잡히지 않았다.

의사 선생님도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료가 제자리걸음을 걷던 그때,

내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설마... 이게 우울증만의 문제가 아니라면?

나는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선생님...

혹시 제가 ADHD는 아닐까요?"

그 말에 선생님은

잠시 멈칫하더니,

무언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한참 뒤,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아... 제가 뭘 좀 놓친 것 같습니다.

어머님 말씀이 맞을 수도 있겠어요."

다음 진료 때 진행한 검사.

결과는 내 예상대로였다.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우울증이라는 거대한 파도에 가려,

그 밑에 숨어있던 진짜 암초를

1년 만에 찾아낸 것이다.

진단을 받고, 약을 바꿨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선명한 세상'을 만났다.

머릿속을 꽉 채우던 안개가 걷히고,

소음이 뚝 끊겼다.

내가 멍청해진 게 아니었다.

그저 뇌의 스위치가

잠시 꺼져있었을 뿐이었다.

그날 나는 병원을 나오며 다짐했다.

내가 1년이나 빙빙 돌아왔기에,

내 아이만큼은 헤매게 하지 않겠노라고.

엄마가 겪은 시행착오를

너에게는 물려주지 않겠노라고.

그래서 나는

아이의 작은 신호(똘이의 멍한 눈빛)를 보자마자

주저 없이 병원으로 달려갈 수 있었다.

남들은 "너무 빠르다"고 했지만,

나는 알았다.

이건 빠른 게 아니라,

가장 정확한 타이밍이라는 것을.

하늘에 있는 둘째가

나를 병원으로 이끌었고,

1년간의 답답함이 나를 공부하게 만들었다.

그 모든 고통의 시간들이 모여

지금의 나와 내 아이를 구했다.

지금 나는

미지근한 커피를 마시며 생각한다.

그때 내가

"혹시 ADHD 아닐까요?"라고 묻지 않았다면,

나는 여전히 안개 속을 걷고 있었을까.

질문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우리 가족을 지킨

가장 큰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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