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제목 ‘회문74’가 무엇인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나의 고향 전북 순창군 구림면에는 회문산이 있습니다. 거기에서 회문을 따왔습니다. ‘74’란 1974년도에 초등학교를 졸업했다는 뜻입니다. 구림면에는 초등학교가 네 개가 있습니다. 구림초, 금천초, 월정초, 율북초를 졸업한 학생들은 구림중학교로 진학을 합니다. 그런데 그때 졸업생 중 절반 정도만이 진학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비싼 공납금 때문에 진학을 못합니다. 우리는 구림중학교 5회 졸업생입니다. 구림중 5회와 회문74는 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림중학교 5회’라 칭하지 않은 이유는 구림중학교에 진학을 하지 못한 졸업생을 위해 그렇게 명명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초등학교만 졸업한 학생들을 위한 배려라고나 할까요.
지난주 토요일은 회문74 정기총회가 열렸습니다. 장소는 신당역 주변 파티엔프렌즈이고 시간은 12시였습니다. 참석인원은 26명입니다. 나는 20년~23년까지 회장을 역임했습니다. 그래서 그날 4년동안 회장 역임의 수고로 감사장과 함께 10만원을 받았습니다.
2부의 행사로 남산타워를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남산타워를 가기위해 대중교통인 전철과 버스를 이용했습니다. 몇십년만에 남산타워를 구경했습니다.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그때는 남산을 걸어서 힘겹게 올라갔으며 물론 타워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했습니다. 서울 시내를 바라보니 모두가 눈으로 빨려들어왔습니다. 서울 시내와 경계인 산들이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남산타워에서 바라본 서울 시내는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시각 국회앞에서는 대통령 직무정지 촉구 탄핵 집회에 주최측 추산 100만명, 경찰 추산 15만명이 여의도를 꽉 메웠는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는 국회 지붕만 희미하게 보이지 시민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나는 거기서 우리나라의 평화와 안녕을 빌었습니다. 남산타워는 리모델링을 해서 매우 넓었고 신비로운 네온 불빛으로 인해 매혹적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즐거운 추억을 남기기 위해 단체사진과 개별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두 파트로 헤어졌습니다. 한 파트는 버스에 탑승했고 한 파트는 도보로 남산을 내려왔습니다. 나는 날씨가 추워 버스를 타고 하산하였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내려올 동안 남대문 시장 구경을 하였습니다. 남대문시장에서 옷값은 매우 쌌습니다. 티 하나에 5~6천원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올해 2월에 발리여행 가서 옷을 산 기억을 소환했습니다. 여름 면티와 바지를 8천원 정도에 사면서 매우 만족했었습니다. 그러나 남대문시장이 더 쌌기에 ‘이건 뭐지?’ 하며 은근히 속이 상했습니다.
우리가 3부 행사로 간곳은 갈비집이었습니다. 물론 거기서 삽겹살과 소주로 마지막 담소를 나눴습니다. 나와 같은 탁자를 쓴 여자 동창들은 맥주를 즐겼습니다. 여자 동창들과 남자동창들은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술을 먹으며 얘기와 농담을 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아이들처럼 스스럼없이 아무런 말이나 하면서 잔을 부딪치며 술잔을 비워갔습니다. 여자들도 나이가 들면서 동성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진 것 같습니다. 이제는 남녀 동창들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이 오히려 부자연스러울 정도가 되었으니 한편으로는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펐습니다.
남자 여자 불문하고 친구로 다가온 것은 좋았지만 남성성과 여성성이 사라진 것은 서글펐습니다.
(24. 12. 13)